얼마만의 기차여행인가, 1년은 훌쩍 넘겼고 17개월 만에 KTX 예약을 시도했다. 코로나라 여행 갈 일이 없으니 코레일톡 앱을 지운 지가 꽤 되었고 회원번호 찾아 활성화시키는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불편함과 걱정을 뒤로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치열하게 보낸 5월 마무리를 딸과 함께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하고 싶어 5월의 마지막 이틀을 부산에서 보내기로 했다.
새로 생긴 좋은 숙소도 많지만 이번 5월 부산 여행에는 꼭 묵고 싶은 곳이 있다. 1992년 첫 출장지인 부산에 대사님을 단독으로 모시고 내려갔던 웨스틴 조선 비치. 지금은 부산 웨스틴 조선이다. 영문명도 Westin Chosun Beach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The Westin Josun Busan. 예약을 위해 호텔 멤버십 가입을 하고 예약을 하려는데 계속 메리어트로 넘어가서 알아보니 웨스틴과 메리어트가 합쳐졌고 호텔의 이름은 The Westin Josun, 예약 등 통합관리는 메리어트가 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 1박이라 바다 전망도 꽤 저렴하게 구해졌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다음 달 강의 시작하기 직전에 마침 하루 휴강이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 기차를 함께 탔다. 1박이라 작은 배낭 하나에 수영복과 최소한의 옷가지, 세안 도구만 챙겼다. 정말 간편했다. 부산역에 내려서도 택시 대신 1003번 버스를 이용했다. 동백섬 입구에 내리니 호텔까지 걸어서 5분, 총 소요시간 50분 내외. 앞으로도 버스를 이용해야지 하면서도 우리가 부산에 갈 때마다 세차를 깨끗하게 하시고 집에 미리 김치찌개랑 미역국 멸치 볶음 등을 준비해 놓으시고 부산역 기차 트렉 앞까지 마중을 나오셨던 아이들의 독일 이모 생각이 간절했다.
1992년 첫 부상 출장 이후 1, 2년에 한 번씩은 부산에 일로 갔었다. 호주 영화, 식품 등을 홍보하거나, 호주에서 예술가, 행정가, 교육계 인사들이 한국 방문 때 시간이 허락하면 서울 다음으로 부산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 특히 부산 유엔 기념 공원 (UNMCK,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에는 300여분의 호주 참전 용사가 잠들어 계시고 그로 인해 호주 인사 방문도 잦았다. 업무로 한국과 호주의 식물원 교류를 진행할 때 Sydney Botanical Garden과 인연을 맺은 한택식물원은 이후 검 트리 (gum tree)라고도 불리는 호주 토종 유칼립투스 나무로 구성된 작은 호주 정원을 호주 참전 용사님들의 묘역 근처에 조성하였다.
1996년 부산 국제 영화제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가 시작되면서 거의 매년 2-5편의 호주 영화가 소개되었고, 이때 영화 소개를 위해 방한한 호주 영화감독, 배우, 스텝들이 부산 국제 영화제 참석자들과 효율적으로 네트워킹을 하도록 Australian Event를 준비하는 일도 하게 되면서 부산은 주로 10월에 방문하곤 하였다. 호주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4년. 당시 호주 멜버른 수족관과 연계가 되었던 부산 아쿠아리움에서 파티를 한 것인데 하이라이트는 아쿠아리움 메인 홀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개막을 알리고 그에 맞추어 행사를 알리는 베너를 수족관 안에서 펼치는 것이다. 거대한 상어와 가오리와 함께 유유히 수영을 하며 물속에서 부드럽게 베너가 펼쳐질 때 박수가 쏟아졌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아침 호주 파티가 'Talk of the town'이라며 좋아들 해주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이번, 2021년 5월 부산 방문은 지금은 조금 old fashion이지만 부산 최초의 특급 호텔이며 2005 APEC Summit때 미국 대통령의 숙소였던 부산 웨스틴 조선에서의 1박. 한눈에 해운대 모래사장의 C 커브를 볼 수 있는 커다란 통창이 있는 해안 전망 방에서 창문에 딱 붙어 바다를 보고, 다음날엔 일찍 일어나, 수건 하나 챙겨나가 모래에 깔고 해가 뜨는 것을 천천히 기다릴 것이다.
해운대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은 조금 복잡하다는 것이다. 공사도 여기저기 진행 중이고 6월 개장을 앞두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수영을 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해변에서도 마스크를 다들 잘 쓰고 있었다. 6층의 전망 좋은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동백섬으로 바로 갔다. 아이가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부산에 오면 둘이서 깔깔 거리며 과자랑 컵라면을 먹던 비밀의 장소에도 갔다. 재작년에 찾아왔을 때 보다 훨씬 젊어진 모습의 주인 할머니가 반갑고도 쿨하게 맞아 주신다. 생수 한 병을 사서 등대도 보고 누리마루도 다시갔다. 아무에게도 연락 안 하고 둘이서 조용히 쉬려 했는데 동백섬 산책을 하니 친한 후배 생각이 났다. 전화를 하니 내가 꼭 부산에 올 것 같았단다. 독일 이모 (나의 둘째 언니)가 사시던 아파트 주민이기도 한 동생 내외를 저녁때 만나 애정 하는 곰탕도 먹고 4층 정원 산책도 했다. 수국이 예쁘게 심긴 정원에서 바다를 보는 눈높이는 정말 코스타 세레나 (Costa Serena)크루즈 선상에 서있는 것 같았다. 후배는 함께 간 딸의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며 좋은 샴페인을준비해주었다.
다음날 새벽. 기대한 것처럼 5시가 좀 지나자 눈이 떠졌다. 몸은 무거웠지만이순간해운대 일출을 오래 보고 싶다. 빠르게 밝아지는 수평선을 창을 통해 보기가 아까워 핸드폰이랑 큰 수건 한 장 챙겨 모래사장으로 나갔다. 벌써 수영하시는 분들 또 해녀로 보이는 세분도 물에서 나오고 계셨다. 갈매기는 한 마리도 못 보고, 까치, 까마귀, 참새, 비둘기가 주로 보였다. 초고층 엘시티가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달맞이 고개를 번갈아 찍어며 처음에는 좀 흉물스럽나 싶었던 고층건물도 자꾸 보니 이게 해운대의 일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늦게 까지 각종 소음이 멈추지 않던 해운대 해변은 새벽이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우아하고 기품 있게 해를 올려 보내고 있었다.
조식은 뷔페 대신 어제 가려다 사람이 너무 많아 못 간 1층 로비 파노라마 라운지에서 했다. 미국식 아침 식사를 시켰는데 오렌지 주스도 생과일 즙 낸 것이고 커피 맛도 일품, 아스파라거스, 버섯 등 구운 채소와 스크램블 에그와 화이트 소시지도 적당한 온도에 맛있게 서빙되었다. 디저트로 베이커리에서 단팥빵 하나를 사서 나누어 먹고 1시간도 넘게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겼다. 수영장에 갔다가 달맞이고개까지 걸어볼 생각으로 산책을 나섰는데 햇볕이 너무 강해서 어지러웠다. 그늘에서 좀 쉬려고 해운대 수족관 지하상가 쪽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황폐해서 깜짝 놀랐다. 여름이 되면 정상화가 될지, 조금 안타까웠다. 그래도 페스트 푸드 점에서 생수를 한병 사서 다시 일어나 달맞이 고개로 향하는데 힘이 나지 않았다. 오늘 3시까지 시간이 있다고 한 친한 언니께 톡을 드리니 바로 근처에 계시다면서 수족관으로 데리러 오셨다. 역시 Asking is important! (일단 물어보고 본다).도움이 필요했던 순간 그 장소에 계신게 신기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던 프*언니. 근사한 곳을 가고 싶다는 딸의 말에 달맞이에서 가장 고기가 맛있다는 규우정 으로 안내해 주셨다. 원기가 회복되는, 여름을 당당하게 맞을 수 있게 할 만한 실한 보양식을 감사히 들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수원을 정차하는 기차라 3시간 19분 만에 서울역 도착. 해운대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지만 역시 집에 오니 맘이 놓이고 귀가길 꽃들도 무척 반겨주는듯 하다.
2006년, 반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자동차 열쇠를 해운대 바닷물에 빠뜨리고 당황해하는 아빠에게 '바닷물을 다 빼버려요' 했던 에피소드를 브런치 글로 썼을 때 코로나를 뚫고 꼭 부산에 가겠다고 했는데 그 글을 쓴 지 꼭 50일 만에 진짜 해운대 모래를 밟게 되었다. 그 글을 쓰던 4월만 해도 이렇게 빨리 부산에 가고 싶은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질 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글로 쓰고 마음을 모으면 이렇게 갑자기 온 세상이 도와서 꿈이 이루어지나보다. 해운대 그리고 웨스틴 조선 비치의 기억, 아니 추억 또 하나 맘에 담고 6월을 맞는다. 여름을 맞는다.
View from an ocean room, 6th floor, Westin Josun Busan, 30 Ma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