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의자 위에서 어느 정도 축을 이루어 회전할 수 있다. 그러나 높고 낮은 쪽의 페달음들을 연주하기 위해 앞 또는 뒤로 미끄러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신체 자세는 편안하고 긴장되지 않아야 한다. 혹시 나중에라도 학생이 과장된 팔과 팔꿈치 운동 등의 나쁜 습관을 보이면 교사는 얼른 교정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엄격하게 옳바른 자세를 강조하면 학생에게 불편함을 주고 음악을 만들어 가는 기교와 예술성을 박탈할 수도 있다."
고태은 편저, 오르간기초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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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오르간슈즈를 구매했다. 오르간에 관심을 가지고 몇 번 배워볼까 생각은 했지만 발로 연주해야 한다는 점이 늘 맘에 걸렸고 전용 신발을 사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올겐화라고도 하고 오르간 전용 신발이라고 하는 이 단화 한 켤레를 신어보는데 30년이 걸렸다. 아니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30년, 사실상 평생 처음 신어 보는 것이니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평생교육원 오르간 강좌를 신청하고 3주째 되는 날까지 양말로 연습했다. 강사 교수님도 새벽기도 반주 때는 가끔 양말로 연주하신다고 해서, 비싼 올겐화 왜 사나 싶어서, 그렇게 3주를 버티다가 양말은 페달에서 너무 미끄러져서 4주 차 수업때는 아이가 발레학원 할 때 사준 발레슈즈를 가지고 수업에 갔다. 위쪽 모양도 비슷하고 바닥에 가죽이 덧대어 있으니 미끄럼이 덜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렇게 오르간슈즈 대신, 양말, 그다음에는 궁여지책으로 발레화를 챙겼다.
그 토요일에는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오전반에 갔는데 두 분의 수강생 분들 한분은 이미 오르간을 배우신 경험이 있고 다른 한분은 현악기 전공자로 피아노, 드럼 등 여러 악기를 섭렵하고 파이프 오르간을 직접 연주해 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셔서 음악성도 뛰어나시고 당연히 두 분 모두 오르간슈즈도 신고 있었다. 간단한 강의가 끝나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레슨을 받는데 처음분은 거의 전공자 수준으로 바흐를 연주하셨고 두 번째 분도 음악 전공자 시라 그런지 찬송가도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도 무난히 잘 연주하셨다. 그리고 오르간의 특징 중의 하나인 발 페달 연주가 무엇보다 편안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발 페달 연주는 앞굽과 뒷굽을 다 이용해야 하고 특히 빠르게 연주하거나 레가토로 붙여서 연주할 때는 앞굽과 뒷굽을 적절히 잘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페달 연주에 최적화된 전문 슈즈는 기본이었던 것이다. 발레화를 신고 오르간 발 페달을 연주하려 했던 건 어찌 보면 스케이트장 얼음판을 축구화를 신고 타려고 한 것과 같이 참 무지한 발상이었다. 그래도 강사님도 다른 수강생분들도 성숙하셔서 (아니면 관심이 없으셔서?) 올겐화를 준비 못한 점이나 발레슈즈를 신고 발 페달을 밟는 것에 관해 아무 말씀 없으셨다.
현악기 연주할 때 올림 활, 내림 활이 있고 악보에 / 등으로 표기하는 것처럼 파이프 오르간 발 페달에서 발의 앞굽 그리고 뒷굽 또 오른발 왼발을 구분하는 표기 법이 있다. V자를 거꾸로 쓴 것 같은 캐럿 (Caret)이라고 불리는 삿갓모양의 ^ 표시가 발의 앞굽으로 연주하라는 것이고 이응 즉 ㅇ 모양은 발의 뒷굽으로 연주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발 페달 악보의 윗편에 표기는 오른발, 아래편에 표기하면 왼발로 연주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앞굽과 뒷굽 모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용 슈즈의 착용은 필수이다.
오르간 전용 슈즈. 뒷면이 스웨이드와 나무굽으로 되어 있어 오르간 페달 연주에 최적화 되어있다.
오르간 슈즈는 주로 양가죽으로 만들고 바닥에 스웨이드가 그리고 뒷굽은 나무 통굽으로 되어있어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고 그 자리에 정확하게 가져다 놓으면 소리가 난다. 아무리 쾅쾅 쳐도 살살 쳐도 같은 세기의 소리를 내는 오르간 매뉴얼 건반과 마찬가지다. 아직 많이 낯설지만 어딘지 듬직하면서도 매우 예민한, 퍼내도 퍼내도 새로운 소리가 나올듯한 이 오르간이란 악기 좀 매력 있다.
이제 오르간슈즈도 있고 기본적인 악보 보는법에 대한 것도 배웠으니 연습할 일만 남았다. 바흐 토카타와 푸가 D 단조 처음 20마디 정도를 외워보려고 한다. '3도음정차이를 두고 양손이 아주 빠르게'의 Prestissimo 부분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프레스티시모를 지나 푸가 바로 전까지는 연주해 보고 싶다.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요리도 예술도 장비발 이라고 하던데.. 3주간이나 양말로 발 페달을 연주할 때, 또 스케이트장에 축구화를 가져간 학생처럼 올겐화 대신 발레화를 가져갔을 때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강의에만 집중해 주시고 과제곡의 한마디만 맞게 연주해도 "예스 예에스!"를 연발하며 발 페달과 왼손이 엉켜서 같은 실수를 여러 차례 반복해도 누구나 처음에는 그렇다며 안심시켜 주신 강사님과 작은 성과에도 함께 박수 쳐주시는 동기생 덕이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 덕에 '포기'를 포기하는 혜택을 보고 나니 무언가 처음 배울 때 힘들고 주눅 들어 시작도 못해 본 여러 경우들이 떠오른다. 오르간 연주 자세도 그렇다. 학생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또 예방하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다. 하지만 옳은 것만 강압적으로 강조한다면,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결국 학생의 의지를 저하시키고 예술성을 펼칠 자신감을 박탈하게 된다. 못해도 틀려도 시도하는 것만으로 칭찬받는 분위기, 모든 배우는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배우는 이의 성장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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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이모의 다섯번째 브런치
에필로그
3월1일 첫글을 쓸때 1주일에 한편만 해보자 느긋했다. 두편을 쓰고나니 쓸게 없었고 세편째 쓰니 구지 이런것까지 써야하나ᆢ지니이모의 네번째 브런치 '벚꽃단상'을 올리고 나서는 구지? 내가? 왜? 라는 생각으로 글쓰기가 참 어려웠다.
하지만 미룰수록 안써서 편한거보다 쓰느라 불편했던것이 불편하면서도 뭔가 뿌듯했던 느낌이 더 그리워졌다. 이래저래 한달에 5편 올림으로 1주 1브런치의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목표달성을 한샘이다
멋진작품과 세자리수 구독자를 보유하신 선배 브런쳐분들이 격려하듯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작가님 글에 반해서 쓴 짧은 댓글에 정성스래 답을 주시는 선배 브런치 작가님들 덕에 갈길은 멀어도 안가는거 보다 잘하고 있는거야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