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가 글자보다 좋았다. 노래가 말보다 좋았다. 피아노가 타자기보다 훨얼씬 좋았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살아가려니 조금 덜 좋은 거라도 밥벌이로 연결되는 걸 먼저 하다 보니 더 많이 하게 되고 결국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다. 후회는 없다.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시간을 조금 써도 되는 지금, 미스터리로 남은 궁금증을 배움을 통해 하나씩 풀어가기로 했다. From Mystery to Mastery!
앞으로 13주간 연습할 독일 Ahlborn사 제작 오르간. 61건반이 2단 (그레이트와 스웰) 발페달이 32건 건반위쪽의 스탑을 누르지 않으면 아무소리도 나지 않는다.
첫 목표는 파이프오르간. 수업은 전자 오르간으로 받지만 발을 쓰는 페달도 있고 음색을 결정하는 스탑 그리고 주요 건반과 스웰을 갖춘 2단 짜리 건반이니 여기서 잘 연습하면 몇 년 후에는 혹 교회나, 무려 공연장에 붙어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을 꾸는 중이다.
사실 파이프 오르간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전 1993년 당황스러운 순간을 경험하며 잠재의식 깊이 오르간 배우기가 To Do List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1991년 회사에 들어가서 첫 승진을 한 것이 1993년, 업무에 필요한 트레이닝과 향후 파트너로 일할 기관들 방문을 위해 3주간 호주 출장을 다녀왔다. 호주의 6개 주의 하나인 퀸즐랜드주 주도 브리즈번도 방문하였는데 당시 아시아와의 교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문화예술계 주요 기관 방문의 일환으로 퀸즐랜드 문화 센터 (Queensland Cultural Centre)에도 공식방문하였다 그곳의 여러 문화 공간 중 음악당에 갔을 때 안내하시는 분이 백 스테이지를 통해서 파이프 오르간까지 보여주었다. 파이프 오르간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고 파이프 오르간 의자에 앉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한번 쳐보겠느냐고 했을 때, 평소 같으면 짧은 곡이라도 시도해보았을것을 파이프 오르간의 규모와 위용에 주눅이 들어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옆으로 저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간단한 시연을 해주셨고 그 웅장한 소리에 비해 조작법(?)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아 언젠가 꼭 배워보리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집 근처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13주 오르간 기초과정이 회당 2만 원 이하의 가격에 학생을 모집하고 아이들과 상의한 뒤 (두 아이 모두 처음에는 전에도 뭐 배우려다 못했잖아, 너무 비싼 거 아니야 했지만 이내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하면서 용기를 준다) 아직 자리가 있는지 문의를 하고 수업 시작 바로 전날까지 등록을 미루다가 한번 들어보고 결정하지 하고 첫 수업에 참석하였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말 지하 2층 강의실은 추웠지만 나 포함 5명의 수강생 모두 각자의 이유와 사명을 가지고 여기까지 참 어렵게 왔구나 생각하니 귀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운전하면 7분 걸으면 30분 거리지만 나머지 분들은 최소 한 시간 거리에서 심지어 춘천, 안산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니 더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은 인원이지만 열정적으로 또 자상하게 지도해 주시는 교수님의 강의 또한 좋았다.
배우려고 처음 마음 먹은지 약 30년이 지나 시작하는 수업. 진짜 열심히 해야지. 완전 기초니까 잘 정리해 두면 오르간이 궁금한 누군가에게 혹 도움이 될지도! 파이프 오르간이 피아노나 신세 사이저와 다른 것은 음색을 만드는 Stop을 누르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Setting은 Memory가 가능한데 S라고 쓴 버튼을 누르고 음색을 Setting 한 후 다시 S를 누르면 된다. 지울 때는 C (또는 숫자 0)로 Cancel 하면 된다.
오르간의 대략의 명칭을 말하면 건반을 Manual 또는 Keyboard, 발 쪽에 있는 건반은 발 페달 (Pedal) 그리고 소리를 결정하는 스탑 (Stop)이 있다. 스탑의 구조로 소리 섞기가 가능하고 이러한 음색 섞기를 Registration이라고 한다. Tone은 독일어나 영어로 악기 소리 (예를 들어 Flute)가 위에 쓰여있고 아래는 숫자가 쓰여있는데 예를 들어 16, 8, 4,2인데 이는 Feet 즉 파이프의 길이를 나타내며 pitch를 결정한다. 긴 파이프는 32 Feet도 있다고 하니 약 9.8m.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악기의 설치는 꼭 건축 초기 설계단계부터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오르간의 경우 피아노의 88 건반과는 달리 한 줄에 5개의 옥타브가 있고 중심이 되는 건반줄은 Great (2단 건반의 경우 아래단) 그 위의 건반은 Swell이라고 한다. 스탑 (Stop)은 순관 (Flue계열)과 설관 (Trumphet계열)로 나뉘는데 순관은 다시 Principal, Flute, String 등 3가지 음색 계열로 나뉘고 Reed를 사용하는 설관은 Trumphet, Oboe, Tuba 등의 음색을 낸다고 한다.
처음으로 받은 악보는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 D 단조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이런 대곡을 직접 쳐볼 수 있다니 두려움 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또 바로 앞순서로 지도를 받으신 분이 이런 렛슨은 처음 이라고 하셨는데 초견에 꽤 잘 연주하셨다. 손가락 운지법과 발 페달 밟는 것을 빼면 다른 건반악기와 큰 차이도 없어 보였다. (무지한자의 용감함) 드디어 내차례. 긴 오르간 의자에 앉아 보는 것도 정말 어색하고 발로 건반을 누르는 것도 이상했지만 가장 놀란건 너무나 가벼운 터치에도 정말 큰 음이 난다는 것이다. 물론 강사님이 곡에 맞게 Stop을 거의 다 눌러놓으신 것도 있지만 작고 부드러운 터치에도 세팅에 따라 포르테가 가능하며 가장 중요한건 이어 연주하는 레가토 효과를 위해 어떻게 손가락을 잘 연결하느냐 어떻게 악보에 맞는 운지법을 구현하느냐가 연주의 급을 결정하는 가장 큰 차이 처럼 느껴졌다.
어쨌던 오리엔테이션 이후 강의 첫시간에 앉아 처음 악보 받은 거 치고는 만족도가 놓은 소리가 나온다 싶었다. (물론 몇주후에 오늘 촬영한 영상을 본다면 한심하겠지만..) 그레이트 건반에서 D 마이너로 시작하여 12마디를 연습할 것을 숙제로 받고 첫 수업은 잘 마무리 되었다. 일주일에 3시간은 이곳 대학교 평생교육원 오르간으로 연습 할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 수업 외 한번이라도 와서 연습을 해야지 다짐 해 본다. 춘천이나 안산에서도 강의를 들으로 오시는데 차로 7분 거리에 사는 나는 정말 환경에 감사하며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그리고 토카타와 푸가 D 단조.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꼭 너를 멋지게 연주해 주마!
32개의 발페달. 발의 앞꿈치와 뒷꿈치를 이용하여 연주한다. 의자에 앉을때는 끝에 걸터앉은 후 밀듯이 가운데로 와야 한다. 아니면 발이 페달을 눌러 원치않는 소리가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