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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Mar 21. 2021

벚꽃 단상

딸아이와  벚꽃이 언제 필까 내기를 했다

Cherry blossom is both single and double, the former variety coming to perfection about the 7th of April, followed a few days later by the double.


6170.- CHERRY BLOSSOMS, TOKYO, JAPAN (George Rose 1903)


"벚꽃은 홑꽃과 겹꽃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홑꽃잎 벚꽃은 4월 7일 즈음에 그리고 수일 후에는 겹벚꽃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조지 로스  스테레오 카드 번호 6170,  일본 동경의 벚꽃


                                ***      


2월에 이사 오고 딸아이가 쓸 방에서 가장 눈에 든 것은 창문밖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벚나무.  3월 초가 되자 마른 가지에 생기가 돈다. 꽃망울이 언제 피어날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저녁 바람이 아직 쌀쌀할 때 우린 창밖 벚나무의 개화시기를 놓고 서로의 예상 날짜를 이야기하다 급기야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3월 28일, 딸은 4월 3일. 상금은 7만 원. 벚꽃을 기다리는  또 다른 재미!


신도시에 살 때 아파트 단지와 단지를 연결하는 긴 인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이 빽빽이 벚나무였다.  4월 집에서 내려다보면 만개한 벚꽃이 긴 구름다리를 만들어 놓은 듯 예뻤다.  막내가 유치원 때 즈음 직장상사 오브라이언 박사가 한국 동네를 보고 싶다고 해서 토요일에 오신 적이 있다.  같이 식사를 하고 한 바퀴 산책을 하는데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잡으러 딸아이가 막 뛰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한참 즐거워했다. 나도 호주 손님도  딸과 함께 벚꽃을 잡으며 봄날 오후를 즐겼다.  


10대와 20대를 보낸 남산 자락의 벚꽃은 정말 기품 있고도 화려하다. 남산 도서관 앞을 지나 지금은 N타워로 불리는 남산 타워까지 가는 2-30분 산책 길을 오르다 보면 오래된 벚나무들이 피워낸 젊고 아름다운 꽃들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또 벚나무 뒤의 소나무들은 언제나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을 떠 올리게 할 만큼 당당하게 산을 지킨다.  산을 오르며  스치게 되는 사람들의 얼굴은 벚꽃처럼 활짝 피어서 콧노래나 휘파람 소리가 좀 크게 들려도 누구 하나 머쓱해하거나 눈살 지프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의 인생 벚꽃길은 단연 경주 보문단지. 처음에는 출장으로 나중에는 가족 여행으로 몇 차례 방문한 경주.  당시 경주 힐튼에서는 투숙객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주었는데 4월 벚꽃이 필 때 아트 선재미술관 (2013년 우양미술관으로 명칭 변경) 한 바퀴 돌고 보문호수 따라 자전거를 달리면 정말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  그때 만난 벚꽃은 겨울 동안 지친 마음에 활기를 주고 다가울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게 하는 특별한 선물이였다.


나는 이 선물을 다시 100퍼센트 만끽하고 싶어 첫 벚꽃이 피기 전에 이삿짐 정리도 다 하고 겨울옷과 이불도 압축해서 수납하고 어쨌든 여유 있는 벚꽃시즌을 맞기 위해 마음이 분주하다.  4월 전에 꽃이 핀다면 딸과의 내기에서는 내가 이기는 것이지만 되도록이면 늦게 피어서 오래오래 이 봄날의 기적을 기다리고 또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벚꽃 개화시기가 매년 빨라지는 것 같다.  이삿짐 정리하며 오랜만에 들여다본  스테레오 사진 중 1903년 일본의 벚꽃놀이를 담은 것이 있는데 사진 뒤 설명을 보면


"동경의 경우 홑 벚꽃은 4월 7일 그리고 겹벚꽃은 그 며칠 뒤에 절정을 이룬다 "고 쓰여있다.  '남자 중 최고는 무사, 꽃 중 최고는 벚꽃' (The cherry is first among flowers, as the warrior is the first among men)'이라고도 쓰여있다.



조지 로스가 1903년 일본 동경에서 촬영한 벚꽃놀이

그러면 우리나라의 개화시기는 언제 즘이었을까?  1947년에 초판 한글 학회 지은 큰 사전 3권은 벚나무를 이렇게 설명한다.


    벚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 산과 들에 저절로 나는데 관상용으로 심기도 함. 키가 6-9m. 다갈색의 나무 (중략) 청명절에 담홍색 혹은 흰빛의 오판 화가 피고 암자색의 핵과인 버찌가 콩알만큼씩 하게 열림.


한글 학회 지은 큰사전 3권


청명절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춘분과 곡우 사이, 음력 2월 23일 올해는 양력 4월 4일. 그렇다면 70여 년 전이나 올해나 4월이 벚꽃의 계절임에는 변함이 없다. 다행이다.  그리고 벚나무는 대한민국 산과 들에 저절로 나는 키가 6-9m 되는 토종식물이라 것도 다행이다.  


한글 학회 큰사전의 설명처럼 만약 올해도 벚꽃이 청명절에 핀다면 모녀의 벚꽃 개화 시기에 관한 내기는 4월 3일을 예견한 딸의 승이 된다.  7만 원의 거금이 걸려있지만  벚꽃시즌의 설렘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곧 펼쳐질 봄의 마법을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 미처 못끝낸 집안과 주변정리를 알뜰히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겨우내 쌓인 유리창 먼지도 말끔히 닦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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