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수업이 제일 좋아?” 라고 친구들이 물으면 망설임 없이 나의 대답은 ”난 생물 수업이 젤 좋아!”였다. 생물 과목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허리까지 닿을 듯 검고 풍성한 긴 생머리에 시원한 걸크러쉬의 목소리를 가진 인기 있던 생물 선생님이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내가 나도 좋았다. 생물 선생님은 “ 너는 어쩌면 그렇게 볼이 빨갛게 귀엽니? 정말 사랑스럽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 나도 볼빨간 내 모습과 생물 수업이 유난히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십니까? “라는 난해한 이상의 ”날개“안에 담긴 글귀가 마음을 둥둥 울리던 까칠한 사춘기 시절이었음에도 그저 한 타임 생물 수업 시간에는 마음이 무장해제가 되었더랬다. 무엇을 해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알 수 없는 막연한 객기로 퉁퉁거리고 짜증내고 난 후에는 나 자신도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다시 이상의 글귀 ‘박제가 된 천재를 아십니까’를 주문처럼 반복해서 되 뇌이며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볼빨갛던 사춘기 때는 몰랐던 것들이 쉰이 된 내 모습 속에서는 다 이해되는 것 같아서 글귀를 주문처럼 외우지 않아도 작은 소리로 한번 소리 내어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스르르 위로가 스몄다. 유렉카 엄청난 것을 깨달은 것도 아닌데 대단한 것을 깨달은 철학자처럼 피식 웃음이 났다. 꿈 많던 사춘기 땐 음악도 좋아했었는데 싶어서 핸드폰을 들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침대 위 이불과 베개를 정리하였다. 거울 앞에 마주 서서 헝클어진 머리 다시 곱게 빗으며 생물 선생님이 사랑스럽다 해주신 것처럼 “나에게 너는 충분히 사랑스러워 다시 할 수 있어. 꿈이 있쟎아” 하고 셀프 격려로 말해 본다.
볼빨간 사춘기 시절 행복으로 기록된 생물수업의 추억처럼, 볼빨간 쉰춘기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셀프 칭찬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나다움의 인생 후반기 시작을 용기 있게 한다. 나는야 ! 볼빨간 쉰춘기.“그래 다시 해보자. 잘 할 수 있어. 충분히 사랑스러운 나니까” 오늘 다시 볼빨간 쉰춘기 나의 겨드랑이도 날개가 날 듯 가려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