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신다' 라는 인식을 지우고 ‘함께 한다’라는 마음으로
때는 바야흐로 2014년 선선한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가을.
내가 그토록 바라던 해외 교환학생 면접에 최종 합격하면서 유럽의 '폴란드'라는 곳에서 한 학기 살게 되었다. 합격 통지를 받고선 엄마한테 다짜고짜 말했다.
"엄마, 나 드디어 첫 해외!! 그것도 유럽 가! 흠……. 엄마도 한 번 가볼래?"
“너는 무슨 친구한테 할법한 제안을 나한테 하니?”
라고 받아치는 엄마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걸 본 건 비밀로 해야겠지?
그렇게 엄마는 태어나서 52년 만에, 나는 23년 만에 두 모녀가 첫 해외여행에 도전하게 되었다.
엄마랑 나는 서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여행'이다.
어렸을 적, 없는 살림에도 엄마는 항상 가족들을 데리고 피크닉을 다니실 정도로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콧바람을 쇠는 걸 좋아하셨다.
하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엄마는 전업주부로 나는 학생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사느라 함께 여행을 못했다. 특히 해외여행은 구름 너머에 있는 단어였다. 사실 무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첫 해외를 가게 되었고 장학금도 받게 되면서 이왕 유럽 땅을 밟는 김에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싶었다. 함께 교환학생에 합격한 친구들도 삼삼오오 친구들이나 남자(여자)친구와의 여행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문득 우리엄마도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남들은 보통 친한 친구들과 혹은 연인들과 가는 유럽을 나는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다.
보통 내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자녀들은 부모님과 여행가는 걸 선호하지 않기도 하다. (친구들과 또는 연인과 가는 게 제일 재밌지!) 왜냐하면 '즐기지 못하고' '모셔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거다.
말하자면, ‘여행’이 아닌 ‘효도관광’이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고쳐먹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 또한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살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양쪽 모두 취향과 태도를 존중하며 배려해야 한다.
부모님과도 친구처럼 연인처럼 얼마든지 그렇게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진정 부모님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자녀와 '친구'처럼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여행 방식은 '초저가 배낭여행'이었다.
사실 첫 해외여행에 내가 오롯이 엄마를 위해 경비를 내고 싶었기에 학생인 내가 받은 장학금과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서 할 수 있는 여행으론 호화로운 여행은 깔끔히 포기하고 오히려 친구처럼 찐 고생도 하며 여행을 해보자 결정했다.
52살과 23살이 서로 배낭 하나씩 메고 캐리어 하나씩 끌고 오롯이 발품을 팔아 유럽의 5개국 8개 도시를 누벼보자고! 경비는 250만원!
먼저 나는 스카이스캐너에서 가장 저렴한 러시아 항공권을 구매하였다. 그것도 모스크바에서 13시간 정도 경유한 뒤 최종 우리의 목적지인 로마로 향하는 항공권이었다. 그 다음 우리의 숙소는 2인 기준 10만원 안팎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숙소들로만 예매했다.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유스호스텔, 캠핑장 등. 그리고 교통수단도 택시는 최대한 지양하고 대중교통 패스를 사서 버스, 지하철, 기차로만 계획하였다. 먹는 것도 럭셔리한 레스토랑 보다는 주로 길거리 먹방, 샌드위치, 직접 마트에서 장보며 요리해 먹었다. 베트남 쌀과 김을 사서 초 간단 김밥을 만들어 끼니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물론, 속이 느끼하면 한식당에 가서 플렉스도 하고 현지 식당에서 가끔 만찬을 즐기기도 하였다.)
러시아(모스크바)를 시작으로 - 이탈리아(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 오스트리아(빈, 잘츠부르크) - 독일(뮌헨) - 체코(프라하) 까지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주 간의 여행이 나는 폴란드로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무사히 막을 내렸다.
우리의 여행기는 한 마디로 "잊을 수 없는 완전 신나는 고행!"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진짜 하루에 오만보도 넘게 걸었을 두 다리에게 감사할 지경이다. 우린 정말이지 찐 고생했고 그만큼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추억들을 많이 쌓고 왔다. 엄마는 지금도 한번 씩 나를 놀리며 말한다.
"네가 그때 너무 굶겼어~~"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은 언제나 환한 웃음뿐이다.
엄마는 두고두고 자신의 첫 배낭여행을 잊지 못하고 꺼내본다. 행복한 고생이었다고. 잊을만 하면 내게 그 추억들을 꺼내보시곤 한다. 엄마의 젊었을 때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배낭여행. 딸과의 14일 간의 낯선 땅에서의 탐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기에 두려운 마음보다 행복만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다고.
<함께 하기 Tip>
부모님의 체력이 나보다 안 좋을 거란 ‘편견은 버리자!’
직접 배낭여행을 해보니 부모님이 나보다 더 잘 걷고 뛰신다.
‘모신다.' 라는 인식을 지우고 ‘함께 한다’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가끔은 부모님과 '찐' 배낭여행을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