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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진 Aug 30. 2017

미술관은 왜 사진 촬영을 허용했을까

미술관과 마케팅

요즘 전시를 보러 가면 '사진 금지' 보다 가능하다는 안내가 자주 보인다. 심지어 전시 내용을 SNS에 올리고 전시명을 '#'태그하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준다는 이벤트도 연다. 최근 많은 전시장이 관객의 사진 촬영을 허하거나 장려하는 분위기다. 내셔널 갤러리 뮤지엄, 휘트니 뮤지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등 해외 미술관들도 일찌감치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해 두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전시장에서, 사람들은 전시의 내용이나 자신이 등장하는 '인증샷'을 SNS에 열정적으로 올리고, 인터넷 상에서는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약간의 폐해가 있다면 전시 관람이 아니라 사진 찍으러 온 것 같은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지만. 



줄 서서 입장하는 미술관 

대림 미술관은 2015년 약 46만 명, 2016년 약 8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국립현대미술관 관람객과 엇비슷한데, 미술관 규모의 차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20대 사이에서 대림미술관은 '출첵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꼭 방문해야 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통의동에 위치한 대림미술관, 젊은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를 위주로 하는 '구슬모아 당구장', 해외 기획전시가 자주 열리는 'D 뮤지엄'. 대림미술관이 운영하는 3개의 공간 모두 전시가 열리는 주말에는 줄 선 관객들로 북적이는 걸 볼 수 있다. 유명 아티스트의 콘서트장이 아니고서야 미술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을 서는 미술관이 과연 국내에 얼마나 될까? 




사진 촬영 허가만이 비결일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사진 촬영을 금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작품과 전시 기획의 저작권 침해 둘째, 촬영할 때 터지는 플래시에 의한 작품 손상 셋째, 작품 감상 분위기 저해 등이다. 실제로 깐깐한 작가의 경우, 사전에 사진 촬영 단속을 갤러리에 당부하기도 하고 혹여나 인터넷에 작품 이미지가 올라가면 어떻게 해서든 내리도록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아무리 뒤져도 작품 이미지를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림미술관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이 스스로 전시를 추천하고 자유롭게 즐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그토록 미술관에서 외치던 '대중의 문화 예술 향유'를 제대로 실현한 선례가 되었다. 덩달아 국공립 미술관도 사진 촬영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고는 있지만 사진 촬영을 허가하는 것만이 관객 유치의 비결일까?




'경험'에 투자하는 Z세대

1990년대에 태어난 '포스트 밀레니엄' 세대인 'Z세대'는 인구의 비율도 높을뿐더러 이전 세대와 뚜렷한 차이점으로 트렌드를 이끌고 있어 마케팅 업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세대다. Z세대는 경제 호황을 누려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IMF를 겪었고, 경제 침체 중인 오늘날 취업 전선에 내몰려 있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 가서 성공' 혹은 '열심히 모아서 집 장만' 같은 이전 세대의 가이드는 이미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잘 발굴해 스타가 되거나 사업가로 성공한 '켄달 제너' 나 '지드래곤' 같은 인물이 이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모델이다. 나중보다 지금에 투자하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험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다. '욜로'와도 연결되어서, 취업 준비를 혹은 회사를 관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SNS에 공유된 장소 (맛집, 여행지 등)에도 민감하다. 스스로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곳이 줄을 서는 유료 미술관이라도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더 이상 교양이나 감상만을 가지고 미술관으로 불러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MOMA PS1 Warm up Party  c.ps1 museum




그런 '경험'을 잘 만들어 가는 것

뉴욕의 PS1 뮤지엄은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년 여름 미술관 앞마당에서 'Warm Up Party'를 개최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DJ를 초청하기도 하고 퍼포먼스를 펼친다. 주로 20~30대 관객들로 꽉 차곤 하는데, 이들은 이후에도 미술관의 충성 관객이 되어준다. 대림미술관에서도 예전부터 이와 비슷하게 아티스트 콘서트 및 문화 강연을 열고 있다. 



미술은 다양한 장르와 무궁무진한 융합이 가능한 분야다. 


광고, 패션, 디자인, 과학, 음악 등 장르와 통하고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단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취사 나열하거나 포토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의미를 갖는 장을 만들고 초대하는 것이 '좋은 경험'을 미술관의 브랜드 인지도로 연결시켜 준다. 대림미술관의 경우도 사진 촬영 허용이라는 장치를 두긴 했지만,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 라이언 맥긴리,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칼 라거펠트, 가구 디자이너 핀 율 등 이전에 미술 전시에서 만날 수 없던 인물들을 소개했고, 그들의 작업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분명 있었다. 사진 촬영은 그런 경험을 증폭시키는 하나의 관객 '액션' 중 하나다. 




Whitney Museum  c.이소진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제는 미술관이 국민을 계몽하던 시대와는 달라야 한다”며 “체험 프로그램으로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면서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MMCA(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나이키와 협업하여 미술관에서 요가, 러닝 등을 하고 전시까지 관람하는 이벤트  <에코 판타지, 트레이닝 클럽>을 진행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작가와 관람객들이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먹고 마시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를 연다. 관객수는 해당 전시를 평가하고 추후 이뤄질 전시 예산 편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미술관이 관객수와 홍보에 신경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디어가 주도하는 이미지 스펙터클의 시대에서 미술도 거대한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다. 다만, 겉치레에 치중해 알맹이 없는 전시들이 생겨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관객들은 좋은 마케팅에 즉각 반응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좋은 전시를 분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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