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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Mar 10. 2022

오늘 내가 "오른쪽 핵어"에 주목한 이유



스티븐 핑커가 쓴 <언어 본능>의 201쪽에 “영어 단어의 핵어는 그 단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형태소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핵어’는 단어나 문장 속에서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가 최고점의 마디까지 ‘삼투되어’ 올라”오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면  the fox in socks라는 명사구는 여우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구를 활용한 문장은 The fox in socks is here처럼 동사를 단수형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여우가 이 문장의 핵어가 된다. 영어 단어에서는 -able, -ate, -ize 등과 같은 수많은 접미사가 동사를 형용사를 만들기도 한다. 동사를 명사로 변환시키는 -er이나 형용사를 명사로 변환시키는 -ness도 있다.


“하나의 특별한 요소인 핵어”가 “덩어리 전체의 의미를 결정한다.”




영어단어의 핵어는 그 단어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형태소다.


세상의 또 다른 오른쪽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1890년에 쓴 <황금가지>가 생각났다. 프레이저는 문화 진화의 방향을 주술, 종교, 과학 순으로 설명한다. 주술의 시대에 자연과 대등한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한 원시인들은 춤이나 의식을 통해서 자연의 힘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사람이 바람을 담아서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자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인류 가운데 좀 더 생각이 깊은 일부 사람이 주술 본연의 허위성과 무익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자연에 관한 더 진실한 이론과 자연자원을 활용하는 더 성과 있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면서 주술의 시대로부터 서서히 걸어 나왔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론한다.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는 인식”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력”과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고 종교가 널리 퍼져도 주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주술은 대다수 인류의 정신적 구조와 기질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그것을 반대하고 금지할 수는 있어도 근절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를 프레이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수 본능을 지닌 미개인은 철학적 급진성을 지닌 이론적 회의론자가 제기하는 주장, 곧 해가 뜨고 봄이 오는 것은 그날, 그해의 의식을 정해진 때에 거행한 직접적인 결과가 결코 아니며, 어쩌다 의식을 빼먹거나 아예 전혀 치르지 않더라도 해는 뜨고 나무는 꽃을 피울 것이라는 미묘한 주장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회의 어린 주장은 믿음을 파괴할 뿐 아니라 경험과도 명백히 어긋나는 공허한 망상으로 간주되어 다른 사람들의 경멸과 노여움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말도 영어처럼 단어나 문장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말이 핵어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공부’라는 어근에 -를 이라는 조사를 붙여 목적어로 쓸 수도 있고, 본용언에 -하다 같은 보조동사를 붙여 상태가 되도록 만들 수도 있다. 보조동사로는 피동, 진행, 종결, 시행, 사동, 의도, 강세, 보유, 봉사, 성취, 당위, 불능 등을 나타낼 수 있다. -고 싶다 처럼 보조형용사가 의미를 보충하기도 한다. 보조형용사는 상태, 희망, 불능, 추측, 부정, 시인하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말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형태소가 핵어가 된다. 오른쪽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프레이저는 원시사회에서 고인류가 주술의 오류를 깨닫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으로 영민한 정신능력이 필요했다.”라고 말한다. ‘보통 이상으로 영민한 정신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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