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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Mar 18. 2022

사진 자르는 게 뭐 큰일이라고.

<황금가지> 읽기

아이의 유치원에 제출할 서류에 내 사진이 필요했다.  3*4 크기의 사진을 붙여야 했는데, 고작 이 한 칸을 채우려고 단정하게 꾸미고 사진관에 가서 돈 들여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과 외장하드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하, 역시 내 사진은 없다. 아이들 사진과 남편과 아이들을 같이 찍은 사진뿐이다. 내 사진이 있다 한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시간 가까이 뒤지다가 겨우 사진을 찾았다. 사진 크기는 손바닥만 한데 내 얼굴은 손톱만 하다. 에게, 이걸 어떻게 쓸 수 있지? 사진 파일을 이메일과 카톡으로 이리저리 전송하면서 노트북과 패드, 핸드폰에 깔린 사진 편집 어플에서 내 얼굴을 원하는 크기로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기계치인 내게 어려운 작업이어서 포기하고, 사진을 크게 프린트하기로 했다. 그것도 내 맘대로 안돼서 손에 들어온 건 결국 손톱만 한 내 얼굴이었다.  


전신사진이라서 어깨 높이에서 내 얼굴을 잘라야 했다. 편집 어플에서는 사진을 휙휙 잘랐는데, 이상하게도 손에 든 사진에서 내 몸을 직접 오린다는 게 왠지 께름칙했다. 사진이 뭐라고….


영혼을 뺏길까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프레이저가 쓴 <황금가지>에 등장하는 원시 부족민들은 영혼에 집착했다. 그들은 프레이저가 ‘공감 주술’이라고 부르는, 모방이나 접촉을 통해 물체가 어떤 사람의 신체나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사고관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 손톱, 먹다 남은 음식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하여 조심스럽게 다뤘다. 악감정이 있는 누군가가 그 물건을 손에 넣어 주술을 걸면 병이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이름에 주술을 걸어서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명과 별명으로 이름을 부르거나, 누군가(어린아이)의 삼촌 혹은 아버지 같은 식으로 불렀다.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양반집에서 어린아이들을 개똥이 같은 더러운 이름으로 불러서 악귀의 접근을 막고자 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림자나 거울, 초상화 같은 물건도 원시부족들은 경계를 했다. 물건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영혼으로 간주하여 바닥에 비친 그림자에 주술을 걸 수 있다고 믿었다. 또는 자신이 거울이나 초상화에 비친 결과로 영혼을 뺏기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사진기에도 그 믿음은 이어졌다. 밀림의 한 부족은 유럽인들이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복사해서 가져가면 그 사람의 목숨 일부분이 초상에 딸려간다”라고 믿었다.    


이 원시 부족민들과 유럽의 오래된 풍습에 대해 읽으면서 우습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고 별 수 없었다. 한낱 종이 쪼가리인 사진에 마치 내 영혼이 있는 것처럼, 혹은 미래의 나에게 영향이 끼치진 않을까, 원시 부족민처럼 순간 두려움에 떨며 주저했다.


프레이저는 종교의 시대를 넘어 과학의 시대가 되더라도 “주술은 대다수 인류의 정신적 구조와 기질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종교가 그것을 반대하고 금지할 수는 있어도 근절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머리로는 상관이 없다는 걸 아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이 보기에 미개해 보이고 인관관계의 오류가 분명하지만, 그들의 터부는 그 세계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남은 음식을 함부로 처리하지 않아서 식중독이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지 않은 것은 자신의 부족과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거울이나 초상화는 그들에게 희귀하거나 사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무의식에서 아주 깊은 곳에 그들을 위한 보호장치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내가 결과론적으로 또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토록 오랜 세월을 인류와 함께 하는 터부라면 어떻게든 인정을 하긴 해야 할 거 같은데, 이 역시 마음이 앞설 뿐, 머리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과학의 세계에서 무의식을 본다는 게 어려운 것일까?


아무튼 내 사진을 자를 때 나는 왜 움찔했나? 모르겠다. 무엇이 나의 어떤 것을 보호하려고 한 것일까? 궁금하다. 영혼이 ‘나 이 아래 깊숙한 곳에 있어~’라며 신호를 보낸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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