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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ul 01. 2022

더 많이 들을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읽기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참사. 이만큼 무겁고도 극단을 달리는 사건이 있을까. 솔직히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 관련 기사를 보게 되면 정치인들의 비방전이나 갈라 치기 혹은 지저분한 댓글이 거의 반자동으로 떠올라 자세히 읽어보려고 한 적이 없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고 나서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폭력적인 진영논리와 비윤리적 언론 때문에 겪었을 고통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왜 생존자를 보지 못했을까.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뿐이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이기에 연구에 뒤따르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안고 이 책을 써낸 김승섭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저자는 “생존장병의 목소리와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한국사회가 어떠한 곳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천안함 생존장병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도 천안함 사건만큼 진보와 보수 진영이 대립하는 정치적 사건이 되어버렸는데, 저자는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의 공통점을 말한다. “첫째는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런 여론과 정부의 태도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으니, 지금까지 생존장병들의 고통을 무시한 셈이었다. 나는 왜 무시했고, 누구는 왜 조롱하는 것일까? 저자는 “상대 진영에 대한 모욕과 혐오는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확증편향과 함께 진행”된다고 말한다.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결론이 있을 때 그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구하고 그런 정보를 더 타당하다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한층 심화시키며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확증편향의 핵심 과정 중 하나는 자신이 속한 그룹에 호의적이거나 유리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확증편향에 갇히면 “역사는 후퇴할 수 있고 한국사회는 더 위험해질 수” 있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처럼 “한국 사회의 부패와 무능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대한 희생을 겪고도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바꾸지 못해 발생한 미래입니다.”  


저자는 확증편향 해결책을 찾는 여러 논문의 실험을 살펴보며 그 결과들이 크게 효과가 없었다는 데 주목한다. 이것은 확증편향을 해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려 준다. 저자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몇 가지 제안을 던진다. “첫째는 우리 모두가 확증편향과 정치적 양극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확증편향은 무의식에 깊게 뿌리박고 있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시스템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시스템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때 훨씬 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만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에서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은 “피상적 접촉을 넘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밀도 있는 만남”이라고 밝혔다. 고든 올포트의 연구에서 김승섭 교수님은 중요한 조건들을 찾았다. “하나는 접촉하는 양쪽의 참여자가 동등한 위치여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접촉이 정치적, 제도적으로 지지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참여자가 불평등한 권력관계 위에 서 있고, 그 갈등을 정치적 리더가 외면하거나 조장하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사람들 사이의 접촉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근에 공감을 다루는 많은 책을 읽었다. 내 기억으론 모든 책들이 타인과 다른 집단에게 마음을 여는 데 대면접촉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맺음을 했는데, 나는 그 결론이 답답했다.


잦은 접촉이 있다고 하여 내가 부모님과 겪는 정치적 대립(세월호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보는 시각 차이)이나 나의 소수자에 대한 편견 같은 것들이 해소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책은 책일 뿐 것인가 생각하며 공감에 관한 책을 리뷰할 때면 마음 한편이 찔렸다. 그런데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다. 공동의 목표, 동등한 위치, 정치적 및 제도적 지지의 부재가 문제다. 나와 부모님 사이는 동등하지 않은 데다가 서로에게 지지가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매체로만 보는 소수자나 생존자는 매체의 프레임을 통과하기에 공감이 어려울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렇게 공감이 어려운 것인가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책으로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애써주신 김승섭 교수님께 또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생존자의 목소리를 직접 더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곳에서 들릴 수 있도록 열심히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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