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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Oct 22. 2022

요리 똥손은 김밥도 못 말아

솔직히말해줘. 맛없다고.


아이의 소풍날에 남편이 등산을 가겠다고 한다. 큰일 났다! 늘 그랬듯이 유부초밥에 문어 소시지 도시락을 싸주려고 했는데, 남편 도시락이 문제다. 볶음밥에 미역국을 넣어 주려고 했더니, 남편은 김밥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난 김밥 쌀 줄 모르는데! 이제껏 살면서 딱 한 번 김밥 말아봤다. 품앗이에서 재료를 나눠 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만든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맛도 없고 손도 많이 가는 게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김밥은 사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거야!” 애들한테도 단단히 일러둬서 소풍 때 김밥 싸 달라고 요구하는 법이 없었는데, 간 큰 남편은 김밥을 내놓으란다. 내가 안 싸주면 전날 김밥집에서 미리 사두겠다고 그러는데, 전날 사둔 김밥을 산 정상에서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나 싶어서, 할 수 없이 만들기로 했다. 아휴ㅜㅜ

단무지, 햄, 오이, 어묵, 당근, 계란, 밥, 김을 준비해서 한 줄을 말았다. 등산가방 챙기던 남편이 옆에 와서 한 줄을 가져가서 자른 후 먹어보더니 표정이 좋지 않다. ‘왜? 맛이 어때?’ ‘간이 부족해.’ 늘 남편이 내 요리에 하는 말이라서 넘겨 들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품앗이 엄마들이 김밥 할 땐 밥에도 소금 간을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밥에 소금을 툭툭 쳤다. 다시 한 줄 말아서 남편에게 줬더니 뭔가 마지못해 먹는 표정이다. 아유, 정말 화도 나고 후련하기도 하고. 이제 김밥 싸 달라고 말할 일 없겠구나.

남편과 아이 도시락에 넣고, 아침에 먹을 수 있게 8줄을 말았다. 너무 지쳤다. 전날 재료 사러 가기 전부터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돌리고, 옆구리 안 터지게 혹은 헐렁하지 않게 잘 말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잠들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눕고 싶은 마음뿐. 소풍 가방을 챙기고 있으니 아이가 방에서 나온다.

아이가 일어나서 식탁 위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씹는 움직임이 갈수록 느려지더니 삼키는 걸 보는 게 슬로 모션 보는 기분이다. 에휴, 얘한테도 실패다. 내가 먹어봐도 건강한 맛.ㅋㅋ아 눈물ㅠㅠㅋㅋ

아이가 먼저 집에 왔다. 도시락통이 무겁다. “밥 안 먹었어?” “친구들이랑 노느라 시간이 없어서, 애들이랑 도시락 나눠 먹느라 다 못 먹었어.”

늦게 도착한 남편 가방도 무겁다. “너무 힘들어서 밥을 못 먹겠더라.”

나도 안다고. 그냥 맛없다고 말해줘. 다음부터 김밥 쌀 일 없어서 나도 좋아.




그래프 부연 설명.


김밥 말 때 옆에서 혹은 본인이 먹느라 계속 줄어들다가, 배가 부르면 그때 이후로 만드는 만큼 양이 늘어나잖아요? 근데 제 김밥은 만들면 만드는 대로 정직하게 양이 늘어나더라고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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