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놀이에서 배운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니 둘째가 종이집과 종이인형을 갖고 와서 역할놀이를 하자고 했다. 내가 저녁밥을 차리는 동안 아이가 만든 것이었다. 색종이를 접어서 세모 지붕을 만들고, 네모 모양으로 오려서 활짝 문을 열어 둔 집과 아주 조그맣게 그려서 오린 엄마와 아이 인형을 하나씩 나눠 가졌다.
“엄마는 아기 해, 나는 엄마 할게. 자 엄마가 시작해.” 하원 버스에서 내려 놀이터로 가는 상황으로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둘째가 떼쓰는 걸 떠올리면서, 역할에 충실하게 떼를 쓰고 우는 모습을 과장해서 연기했다. 둘째는 신이 나서 깔깔깔 웃었다.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소리 지르고 떼를 쓰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달아났다.
“아이구, 엄마 자막(‘대사’를 뜻하겠지) 못 들어주겠어.” 큰 애는 귀를 막고 도망가는 시늉을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기에 빠져 든 나는 더욱 큰소리로 울었다. 종이인형은 아예 바닥에 던져두고 손을 막 흔들면서 내 말 들어달라며 떼를 썼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둘째가 나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는 와중에 첫째가 난입했다.
커다란 종이 인형을 들고 끼어들었다. 놀이 흐름을 이어가고 싶었기에 ‘우와, 거인이 나타났다! 엄마 도망가요!’ 말하면서 집 안으로 인형을 넣었다. 첫째가 조금 설정을 만들어서, 인형극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지만, 첫째는 막무가내로 큰 종이인형을 집 안으로 구겨 넣으려고 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더 이상 이어갈 만한 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로 놀이가 끝났는데,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큰 애한테 “규칙 안에서 놀아야지.”라고 말한 건 생각난다.
규칙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어제 놀이의 규칙은 인형의 캐릭터였다. 거인 인형을 갖고 왔다면, 그에 걸맞은 이야기를 생각해서 끼어들어야 하는데, 무작정 들어가서 기존 캐릭터들을 무시해버리고, 큰 애는 자기 존재감만 과시하려고 했다. 규칙이라는 말이 곧바로 나온 것과 내가 한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큰 애가 놀이를 할 때 제멋대로 규칙을 잘 무너뜨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 놀이는 어제처럼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괴물 놀이나 역할놀이를 할 때 분위기가 고조되는 타이밍에 갑자기 규칙을 변경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제 멋대로 구는 아이에게 실망하거나,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면서 설득하다가 구멍 난 풍선에 피시식 바람 빠지듯, 흥이 나가 버린다.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안된 딸은 화를 내고, 계속 놀아 달라고 조르고, 난 피곤해지고, 이후에 같이 놀자고 하면 또 그럴 것 같아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궁리부터 한다.
이래서 규칙이 중요하다. 규칙이 있을 때 역설적으로 더 자유롭고, 창의성이 생긴다는 사실은 이제 많이들 알 것이다. 규칙이 무너지면 상호 신뢰가 바닥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이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도 없어진다. 의심하게 되고, 내 것을 먼저 챙기고 싶고, 인정만 받고 싶어 한다.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계와 예절을 지킬 때 더 높은 발전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된다.
한편 기존의 규칙이 어색해서 따르는 게 쑥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어제 큰 아이는 역할놀이가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음에도, 자신도 함께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제 딴에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종이로 만든’ 인형을 갖고 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런 마음도 읽고 받아줄 수 있는 배려심과 포용 능력도 규칙을 강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어제의 나, 좀 더 노력해보지 그랬니,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