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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un 04. 2020

영원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나의 행복 탐구일지 2

'행복하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아름답다'는 말이 떠오른다. 왜 그럴까?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만들고 생각할 때 행복한 걸까? 아니면 거울에 비친 내가 아름다워 보일 때 행복할까? 언제 나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나는 대학교에서 두 개의 전공을 공부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고민 끝에 편입을 해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어릴 적에 그림을 조금 배우다가 그만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렇지만 늦깎이로 그림을 배우기엔 재능도 부족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 보였다. 그래서 관련 공부로 미술사를 선택했다.  


미술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던 까닭 중 하나가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다. 첫째로 그림 그려서 뭐 먹고 살 거냐, 두 번째로 그림 배우려면 돈 많이 들어서 안된다고 하셨다. 시작부터 끝까지 돈이었다. 내가 자란 소도시에서 미술학원을 제외하고선 미술 해서 밥 벌어먹고사는 사람을 못 봤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나같이 그림에 무식한 사람들도, 돈이 없어도 그림을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앞으로 전시 관람이 소수가 향유하는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될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한다는 게 어쩐지 좀 '있어 bility'했다.  


일단 공부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림을 보면 어느 시대 작품이고 어떤 스타일로 그렸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스스로 너무 신기했다. 책에서나 보던 그림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과제를 하면서 내 생각과 주장이 들어간 감상문을 쓰는 게 근사했다. 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지역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고전 그림을 떠올려보는 것도 즐거웠다. 화실에 나가서 그림을 배웠다. 인체 소묘나 원근법, 색 원리 등을 공부하면서 그림을 보게 되니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쑥쑥 올랐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변화가 명확히 보이니 너무 즐거웠다. 행복했다. 미술사 공부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는 미술사를 공부한다면서도 현대미술이 싫었다. 시대상황을 작품을 통해 읽고 작가의 생각을 해석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땐 '생각이란 게 뭔데?' 하던 시절이라서, 스토리가 드러나지 않는 작품을 보는 게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눈에 현대 미술작품은 못생기거나 징그럽거나 잔혹했다. 더 고전 미술로 파고들었다. 매끈하고 우아하고 화려하면서도 이야기나 기법의 공식이 있는 고전 미술이 좋았다.  


아름다운 것만을 보고 싶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책에서 배운 시대의 특징과 기법들을 그대로 흡수해서 내가 생각한 것처럼 아름답다고 여겼다. 아름다움은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가들의 섬세한 붓질을 캔버스 가까이서 본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화려한 색에 감탄했다. 경이로움을 느꼈지만, 머리로 배워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했을 뿐이었다. 나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난다. 책이나 미술관의 그림들은 분명 감탄을 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좋아했던 바로크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 중 내가 특히 사랑했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단순한 반사작용, 그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행복하다는 것은 찰나의 감정인가 보다.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게 있을까? 다이아몬드 말고. 음....... 있다. 나는 왜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미술공부를 다시 하고 싶었던 걸까? 미술에 미련이 남았던 이유는 내가 도화지에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매일의 노력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떠올렸고, 그렇게 아름다움을 쫓는 게 행복했었음을 무의식적으로 찾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진로선택과 취업의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내가 행복했던 경험을 찾은 게 아닐까.


미술사 공부를 할 땐 작품을 읽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작품을 볼 때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비록 나만의 아름다운 작품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나만의 아름다운 경험을 찾았다. 내가 주체가 되어 구체적인 아름다움을 만들면서 행복을 맛봤다. 영원한 아름다움은 노력하는 모습이다. 노력으로 빚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행복의 주체가 아닌가 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집콕을 하는 기간 동안 매일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 밥상이 어제보다 좋아 보일 때 식탁이 아름다워 보였고, 나의 노력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최근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취미를 갖게 됐는데, 앱의 기능을 슥슥 활용을 하거나 선이나 색이 마음에 들 때면 행복하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잘하고 있고, 내일의 나는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는 걸 느낄 때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과정에서 행복해야 함을 모르고 살았다. 결과나 목표에 집중하다 보니 행복과 떨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결과물을 볼 때 행복한 게 아니라 과정이 아름다울 때 행복하다. 화가들의 작품 역시 그들의 삶과 스토리와 결합하니 아름다웠고, 그들의 열정 어린 가슴에서 태어난 작품을 볼 때 행복하다. 고흐의 미술작품도 고흐의 치열한 생을 알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노력하는 과정이 없는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고, 행복 역시 부재하다.  


기록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물이 불만스러워도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것, 혹은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단한 작가나 예술가가 되진 못하겠지만, 즐거움과 배움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어쩌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기록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노력하기 위해서 기록하거나..... 나의 모든 과정은 아름답고 행복한 여정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일상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름다움은 한 단어로 노력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그리고 노력은 행복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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