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주얼페이지 Apr 27. 2020

새벽 4:30, 나를 지키는 시간

미라클 라이프의 시작

올해 초부터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그 당시 애들이 며칠째 밤에 늦게 잤다. 다른 부모들처럼 애들을 재워놓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운동을 하고, 핸드폰도 만져야 하고, 책을 봐야 하는데 애들이 자러 가는 시간 자체가 늦고, 잠이 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니 내 욕구를 채울 수가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오면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였다. 거의 잠들었다가 다시 깨서 나와 시계를 보면 짜증이 났다.



운동과 책 읽기, 둘 다 만족시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운동은 포기하고 책을 봤다. 그러다 보면 훌쩍 1시가 되었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금방 잠이 안 왔다. 1시 반에 잠들면 다행이었고, 하도 잠이 안 와서 시계 확인을 하면 2 시인 날도 많았다. 아침은 당연히 피곤했다. 딸의 일어나란 짜증 섞인 말에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기 일쑤였던 나날이었다.  



결심을 했다.


운동을 며칠째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여전히 애들은 잘 생각이 없이 딴짓을 하고 있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변해있던 그날 밤, 오늘도 운동은 물 건너갔다 싶은 좌절의 밤이었다. 갑자기 결심이 들어섰다. '너넨 알아서 자라. 나는 잔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봐야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생각이 머리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4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내 단호한 의지가 아이들에게 전해졌는지 아이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불을 끄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아이들이 오늘 밤은 일찍 잘지 몰라' 같은 행운을 기대하는 대신 다음날 아침의 이른 기상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다음 날 새벽 알람 소리에 깼다. 순간 다시 자고 싶은 유혹이 매우 컸지만 방을 나왔다. 일어났긴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확언을 흉내 내 보고,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깰 때까지 책상에 앉아있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깼을 땐 기분이 상쾌했다.



그리고 그날은 초저녁부터 피곤했다. 늦게 자고 새벽에 일어났으니 당연했다. 수면시간 6~7시간 확보를 하려면 언제 자야 하는지 계산을 했다. 9시 반에서 늦어도 10시 반 사이에는 자야 했다. 서둘렀다. 속 편하게 잠을 잤다. 이튿날도 4시 반 기상. 그렇게 미라클 모닝이 내 삶으로 들어왔다.



미라클모닝 시간에 내가 하는 것들


미라클 모닝 시간에 나는 확언과 일기 쓰기, 운동을 한다. 시간이 바쁘게 흘러간다. 지켜야 하는 나의 소중한 일상이 있어서 행복하다. 확언하기는 재밌고 일기 쓰기는 내 생각을 가꿀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1시간 가량 모닝 저널을 쓰고 나면 마음이 살짝 느슨해지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그때가 바로 운동을 할 시간이다.


이젠 시간이 있는데 운동을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 애들을 재우고 나서 운동을 할 땐 너무 늦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데, 미라클 모닝 습관을 갖고 나니 운동을 안 할 핑계를 찾는 게 더 어렵다.





미라클모닝을 하는 이유

이전에 미라클 모닝이란 걸 알게 된 후, 몇 번 시도를 했었다. 그때마다 큰 애가 깨서 나를 찾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때마다 나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꼈고 슬펐다. '엄마로서 사는 삶에서는 나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자유는 없는 것인가, 나의 시간은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미라클 모닝은 포기하고 살던 대로 살아왔다.



이번은 다르다. 미라클 모닝을 한 지 2주 정도 됐으려나, 미라클 모닝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됐을 즈음이었다. 새벽에 여섯 살 큰 애가 연속으로 며칠 동안 깨서 나를 찾고 엄마가 없다며 소리 지르고 떼를 썼다.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잠자리에 같이 누워 있으면 '미라클 모닝을 포기하면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았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두려움을 느꼈다.



며칠 후 나는 미라클 모닝을 하던 도중, 잠에서 깬 딸을 재다가 같이 잠이 들고 말았다. 딸이 일어나자고 깨워서 일어났더니 슬프고 또 슬프고 너무 슬펐다. 거실로 나가는 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엄마는 엄마가 제일 소중해. 써니가 써니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장 사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처럼, 엄마는 엄마가 제일 소중해. 엄마는 엄마를 돌볼 시간이 필요해. 운동하고 책 읽는 게 정말 중요해. 자다가 깨서 엄마가 없으면 엄마 옆에서 자던지 책을 보던지 다시 방에 가서 잠을 자. 엄마 방해하지 마."

딸은 대답이 없었다. 체념 반, 간절함 반이 섞인 나의 말이 딸에게는 어떻게 전해졌을까.


 

그날 이후로도 딸은 가끔씩 새벽에 깬다. 나를 부르면 방에 들어가서 "엄마 공부하고 올게, 자고 있어"라고 말하고 다시 나온다. 뒤척이는 소리가 나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어제 새벽엔 웃기지만 뭔가 짠한 일이 있었다. 거실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써니가 깼다. 나를 빤히 보더니 소변을 누러 화장실로 바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아서 하는 말이 "엄마, 나 엄마랑 운동하러 나온 거 아니야, 나 오줌 누러 나온 거야." 내 눈치 보는 딸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의 시간을 지켜주려 애쓰는 딸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어쩌면 나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지만, 중요한 건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눈뜨고 잠을 잘 때까지 시간을 관리하게 되다 보니 내가 비로소 주인이 된 기분이 든다. 주변의 불필요하거나 부족한 것들-감정과 물건, 사람 들에 대해 덜 신경 쓰고 삶이 간단해졌다. 확언을 하고 난 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시간관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만들어가는 삶을 산다. 남편과 부모님 혹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 신경을 쓰긴 하지만 내게 중요한 말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독이 오르진 않는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것, '성장과 행복, 자유' 같은 기운을 얻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미라클 모닝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내적 에너지를 채우고, 체력을 키우고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의 미라클 모닝을 준비하고 기대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변곡점을 통해 나는 내가 중심에 놓여 있는 삶을 살게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