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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ul 22. 2020

내가 쓰고 싶은 책

책을 펴낸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필집이다. 요즘 쓰는 글들을 모아서 바로 책으로 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런데 브런치에 작가들이 쓰는 글과 내 글을 비교해보면 그다지 참신하지도 않고 통찰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무엇보다도 표현력 자체가 부족해서 힘들겠다 싶다. 무슨 책을 쓸 수 있을까?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나의 강점과 약점을 채우고 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나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을까? 정보를 나눌 것인가, 생각을 나눌 것인가? 앞서가는 정보, 무엇을 갖고 있나? 나의 생각은 독창적인가? 정리가 잘 되어 있는가? 재밌는가? 통찰력이 있는가?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정보나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있긴 할까? 


음, 질문을 던지고 보니 막막해진다. 안 그래도 막연한 책 쓰기가 더욱 멀어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자유의 기술』 풀이 책을 쓰는 것이다. 거의 반년째 읽고 있는 이 책, 인생 책이 되었다. '철학적 사고란 이런 것이다'를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궁금해하던 행동의 근원에 대해 파고 들어서 많은 배움을 전해주었다. 작가는 가설을 세우고 의심을 하여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가설이나 통설의 오류를 찾아내는 방법으로 주장을 펼친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사례와 통계로 근거를 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 던져서 답을 찾는다. 이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현상의 원인을 찾는 철학적 방법이 정말 재미있다. 


이 책 덕분인지 요즘은 어떤 책을 보더라도 혹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자유의 기술』의 작가라면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받은 영향대로 생각을 하다 보면 명쾌하게 답은 나오지 않고, 알쏭달쏭한 질문만 더 많이 생긴다. 그게 재미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하다. 


내가 풀이 책을 쓴다면 『자유의 기술』에서 나오는 여러 유형의 부자유한 사람들과 의지대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나누는 사람들에 관한 사례집으로 쓰고 싶다. 예를 들면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의지의 자유를 경험했는지, 혹은 강요당해서 행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해 쓰는 것이다. 나 자신과 신문 지면상의 인물들,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 들의 의지와 자유의 경험에 관해 쓰고 싶다. 


아직 다 읽지 못했고, 다 읽은 후에도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지 걱정되는 책이지만, 끝없이 욕심이 나는 책이다. 『자유의 기술』을 더 잘 읽고 싶은 마음에 풀이 책에 욕심을 품는다. 풀이 책을 쓰고 나면 진정 자유로운 사람, 의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 같은 기대감도 있다. 이슬아 작가가 인용한 정혜윤 작가의 말처럼 글 따라 사람이 가게끔 하는 책을 쓰고 싶다. 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내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감동까지는 안 되겠지만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술전시 리뷰집을 쓰고 싶다. 매년 전시회 몇 회 이상 방문을 목표로 삼지만 지방에서 유아 두 명을 키우는 나로선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으니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작품 감상을 하고 싶다. 창작 시기 불문하고 좋은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작품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감상문을 쓰고 싶다. 책장 속에 꽂혀만 있는 전공책들을 꺼내어 참고하면서 기억 속에만 있는 나의 지식을 끄집어내고 싶다. 


서울에 자주 갈 순 없겠지만 김해나 창원, 부산 정도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갈 수 있지 않을까. 한 달에 한 번씩 전시 감상문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모은 12편 정도의 글을 연감처럼 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선 운전(평일에 가는 게 편할 수도 있으니)과 경비(교통비와 입장료, 간식이나 식사비, 도록), 시간(감상 시간 및 공부시간, 글 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년에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내면 가능한 일이 될 수 있겠다. 아, 이 생각을 하니 지금 내가 하는 공부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행위가 전시 리뷰집을 쓰는 데 든든한 뒷받침이 되겠다. 기대가 된다. 전시 리뷰집이 세상에 나온다면 이 책은 어떤 의미가 될까? 이 책 역시 나 자신과 누군가에게 영감과 지혜를 주는 데 쓰임이 있을 거 같은데, 의미 있는 쓰임일까?    


한편, 정보를 편집해서 책을 펴낸다면? 내가 남들보다 잘 아는 정보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정리하고 싶은 주장은 어떤 것이 있나? 이 생각을 하니 예전에 논문 쓸 때가 생각난다. 현장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가설을 설정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철이 지났거나 현실성이 없거나, 탁상공론 같은 가설만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 교수님은 현장을 안 겪어봐서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게 문제라고 하셨었다. 실효성이 없는 글을 쓸 순 없어서 헤매다가 첫애를 임신하고서 논문 쓰기는 중단됐다. 그때 생각을 하니, 정보나 지식을 편집한 책을 쓰는 것은 난 안 하는 게 좋겠다. 이런 건 잘 아는 사람이 쓰고, 나는 배우는 걸로 만족하련다. 


내가 쓰고 싶은 두 권의 책이 세상에서 아니 시장에서 어떤 가치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재미와 지혜, 영감을 쌓으면서 나를 찾는 일이 될 터이니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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