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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Jan 14. 2021

가족을 환대합니다

팬데믹 시대, 현명하게 시간과 공간 사용하기


사피엔스 스튜디오였나 tvn 방송물을 편집해서 내보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공간에 관한 영상을 봤다. 인터뷰에서 최호근 교수님이 "내 공간을 배타적인 사유 공간(...)에 한정하게 되면 그걸 넓히는 건 힘에 부치죠"라고 하신 말씀을 듣자마자 머리를 정말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내가 어떤 벽에 막혀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수님과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나는 내 시간과 내 공간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의 성격은 소유 혹은 독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교수님은 그 반대다. 정확한 반대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해보자면 공유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포용이나 수용 같은 단어를 생각해봤으나, 인터뷰에서 교수님이 "어디에 가서 그 기억 속의 내 삶의 일부로 간직하면 된 거고요"라고 덧붙이신 말씀을 바탕으로 하면 내 것도 아닌 장소에 타인을 받아들여준다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통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음, 나중에 조용할 때 할래. 혼자 있을 때 할래.'라고 생각하고 미뤄둔다. 내 공간과 시간이 없어서 일을 못했다고 핑계를 댄다. 이게 바로 배타적인 공간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힘에 부치는다는 뜻이 아닌가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환대'라는 말을 떠올렸다. 나는 '배타성'이란 단어의 유사어로 독점을 꼽고 싶다. 그 이유는 차단한다, 경계 짓다, 집착하다 등의 단어 등이 생각났는데 그 속에서 독점하겠다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서이다.


독점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용, 사랑, 공유, 무심, 이런 단어가 생각났다. 내가 원하는 느낌의 단어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단어는 '공유하되 취향이 있음'라는 의미가 있어야 했다. 비록 내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주체라는 느낌이 분명했으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취향을 공유함'과는 분명히 다른 무엇을 원했다. 고민 끝에 떠오른 단어가 환대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하는 일에 기꺼이 초대하고 나눌 수 있는.... 나의 취향은 언제 어디서나 그대로 있으며 좋아하는 장소나 시간 등 나의 추억에 상대방을 초대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환대를 거둬들일 수도 있는.... 그런 느낌의 '환대'가 떠올랐다.


팬데믹 시대, 가정주부로서 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많이 받았다. 나는 어떻게 가족을 환대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일에 가족을 초대하는 것이다. 굉장히 단순하고 급진적인 듯 한 생각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중에 내 시간이 없고 저쩌고를 하소연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으나.... 일단 나는 언제 생길지 모르는 내 시간과 공간을 기다리며 미루는 습관을 버리는 게 급하다. 


주방일, 요리, 청소, 책 읽기 등 모든 것들을 독점적으로 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아이들과 신랑을 끌어당기면 된다. 같이 청소하고 요리하고 정리하면서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시간과 일을 나누는 거다. 그리고 읽은 책, 본 영화, 단상 등을 수준에 맞게 나눈다. 지금까지 내 식대로 만들어가는 집  혹은 내 식대로 못 만들어 답답한 집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집이라는 장소를 나누면서 시간과 기억을 서로 엮어가는 거다. 공유하되 취향 혹은 개성은 쌓아간다. 일을 해나간다. 


쓰고 보니 굉장히 단순한데, 이게 왜 이렇게 못했을까 생각하니 어릴 적부터 연습이 안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사족 같은 말을 덧붙이게 된다. 흠. 뭔가 부끄러워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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