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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주얼페이지 Nov 22. 2021

필사를 하는 이유

의도를 생각하기

오랜만에 필사를 하고 있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에서 기록해둘 만한 문장이나 내용들을 옮겨 적는 중인데, 오랜만에 필사를 해보니 예전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필사를 손가락과 팔목이 시큰시큰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했었다. 책을 다 살 수는 없으니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다시 읽고 싶은 부분만 정리해서 복사본을 만들었다. 점차 복사본의 부피나 시간과 비용이 부담이 되었다. 복사에서 필사로 옮겼다. 처음 읽을 땐 띠지를 붙였고 두 번째 읽으면서 띠지를 떼어내면서 해당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책 욕심이 많아서 지금이나 그때나 도서관에 가면 대출권수를 꼭꼭 채워 빌려오는데, 대체로 2주 안에 혹은 연장해서 3주~4주 안에 5~10권 정도를 필사한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필사를 했던 이유, 그리고 필사를 중단했던 이유는 돌이켜보면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집착에서 벗어났느냐? 반은 맞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반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느 날 현타가 왔다. 이렇게 기를 쓰고 옮겨 쓰는 이유가 뭘까? 사실 자발적으로 이 질문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고, 몇 년 전 독서운동 공동체라고 해야 하나,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필사 강의를 듣고 강사가 펴낸 책을 읽은 후, 필사를 하는 방법을 따르면서 필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즈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필사를 하면 문장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주워 들었다. 베껴 쓸 좋은 문장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좋은 문장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좋은 글을 찾는 방법을 얻기 위해서 필사 강의를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감을 잡지 못했다. 맹목적으로 베껴쓰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것처럼, 다시 보지도 않을 필사 노트만 써대던 시절이었다. 필사를 하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이런 문장도 어디선가 본 듯한데, 나는 영 재미를 보지 못했다. 내가 스스로 찾기보다는 자기 계발서의 작가가 중요하다고 밑줄 그은 부분과 필사 강사가 '찍어준' 좋은 문장 사이에서 헤맸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아이들 키우면서 필사를 할 시간은 부족했고, 필사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글은 그냥 손이 나가는 대로 썼고,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도 멀어졌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면서 모닝 저널을 쓴 이후로 자기 계발서가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는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나름 묵직한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을 조금 더 더 깊고 넓게 하게 됐다. 의도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맹목적인 집착에서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는 오랜만에 간 도서관에서 온라인 서점 홍보에서 많이 본 책 표지 사진에 눈길이 가서 빌리게 됐다. 역시나 다 읽고 나니 습관은 함부로 못 버린다고, 형형색색 띠지가 책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필사 분량이 하루 이틀 정도 틈틈이 쓰면 감당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왜 내가 필사를 하고 있는지 계속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가진 책이라도 한 번 읽으면 다시 읽지 않는 게 보통이다. 특히나 자기 계발서라면 더욱 그렇다. 책 내용을 내게 막 밀어 넣어서 확 변하겠다는 집착과 미련을 떨쳐내는 마음을 가진 덕분에 책 둘레의 띠지가 사뿐해졌다. 그러고 나서 띠지를 걷어낼 때마다 이 문장을 왜 필사하고 싶은지 이유를 찾았다. 내가 찾은 이유들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문장이 아름다워서.  둘째, 실천해봐야 할 것인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생각할 때 가이드가 되는 것. 셋째. 행위나 현상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설명해줘서 내가 배운 것들, 기억하고 싶은데 잘 외워지지 않는 것. 예를 들면 요즘 계속 생각나는 단어는 <사피엔스>에서 자기 예언의 현실화였나? 이 말이 계속 생각나는데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아서 책을 계속 들여다보는데, 마침 이 책에서 또 그 말이 나와서 옮겨 적었다.


자기 계발서이지만 그래서 내가 옮겨 적은 것들은 이러하다.  


이 필사 노트를 얼마나 수시로 들여다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의도가 있었으니 의도에 맞는 어떤 특정 상황을 마주하거나 책에서 어떤 맥락을 만나면 이 노트가 떠오르지 않을까. 지난주 필사를 시작하고 벌써 두 번째 펼쳐본 문장은 "나 자신에게 프로젝트나 과제에 대해 끝까지 얘기해주면 집중력이 높아진다."이다. 하루치 계획을 세우거나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면, 이 문장이 떠올라서 노트를 다시 꺼내 읽게 된다. 나는 이런 이유로 필사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필사를 왜 하는 것일까? SNS에 필사 인증 사진이 많이 보이는데 그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서 필사를 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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