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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Sep 07. 2019

건강염려증의 기원(1)

예민하고 유별나고 까탈스러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건강염려증을 앓고있다. 이 병에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첫째, 무언가 입으로 들어가기전 그것에 유해한 요소가 있는지 확인한다. 가공품의 경우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성물질 중 피해야할 것이 포함되었는지도 본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 사고 후 해산물 섭취를 서서히 줄여나가다가 요즘은 거의 먹지 않는다. 대학 때는 시험이 끝나면 수산시장에서 광어를 한 판씩 떼다 먹고 고등어, 삼치, 갈치구이에 백반을 좋아하며 회/초밥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먹던 나였는데 말이다.


둘째, 먹기에 적절한 시간인지를 따진다. 앞에건 그렇다 쳐도 '먹기에 적절한 시간'이라니 이게 웬 황당하고 뜬구름잡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들어보시라. 예를 들어 늦은 저녁에는 소화가 어려워 자칫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니 먹기를 피하고, 이른 아침에는 산성이 강한 것들 혹은 진한 카페인이 든 음식은 위를 쓰리게 하니 피한다는 말이다.


셋째, 몸의 사소한 증상에 사소하지 않게 반응한다. 역류성 식도염 증상에 식도암을 의심하고 편도선염 증상에 편도암을 의심하고 장염 증상에 대장암을 의심하는 식이다. 이 증상에는 네x버 지식인의 태양신, 물신 등 여러 '신'님들이 크게 한 몫 해주신다.


넷째, 눈에 안보이는 것이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한다. 미세먼지 좀 마셔도 안 죽는 거, 안다. 아는데 조금이라도 바깥 공기가 들어오는 카페, 식당 같은 공간에선 휴대용 공기청정기가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한 여름에도 미세먼지 수치가 높으면 마스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에 대해서도 의심이 많아 잡다한 지식을 쌓아왔다. 예를 들어 폴리스틸렌은 절대 전자렌지에 돌리지 않는다. 그나마 열에 안전하다는 폴리프로필렌이라 하더라도 음식에서 나오는 기름때문에 180-200도를 넘어설 수 있고 따라서 용기가 국부적으로 녹을 수도 있다. 그 말인 즉슨 음식이 환경호르몬 범벅이 될 수도 있다는 뜻. 해서 이런 용기에는 기름기가 전혀 없는 미리 해둔 쌀밥 정도만 데운다.


회덮밥과 해물뚝배기를 걱정없이 먹었던 행복했던 나날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라는 별명을 붙여놨다.


이따위 별명을 100% 인정할 순 없지만 ’병에 걸리지 않는 안정된 삶’을 갈망하는 것은 맞다.

최후의 인간은 현재 자신이 가진 소소한 즐거움과 존재의 안락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는 약간의 따뜻함과, 약간의 이웃들을 원하고, 적당한 양의 일을 하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돈을 벌고, 병에 걸리지 않고, 기분 좋아질 만큼의 적당한 쾌락을 누리고자 한다.

잘 정리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caujun/60090713357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무던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지가 놀랍다. 한 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나는 왜 무던하게 살지 못하는 가에 대하여 고민도 하고.


평소와 같이 '이걸 먹으면 뭐가 좋네, 저건 먹으면 안되네' 하며 줄줄이 늘어놓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건강염려증에 대한 조롱파티를 열던 어느날, 한 마음씨 따뜻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진아는 어쩌면 몸이 약해서 더 신경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골골댔다.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폐렴을 앓았고, 편도가 상대적으로 비대해 자주 부었다. 게다가 비염도 있어서 잦은 감기증상은 기본이요, 학생 때는 시험시즌이 끝나고 나면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탓인지 항상 편도염으로부터 동반되는 몸살을 앓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잇몸이 상시 부어있어서 치아가 미세하게 흔들거리는 상태였고 구내염은 일상이었다.


수능 100일을 남긴 시점에는 악명높 유행했던 신종플루에도 감염이 됐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죽을듯한 두통은 처음 느껴봤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체념하고 가마니마냥 가만히 누워만 있게 만든, 머리통이 뽀개질듯한 통증을 잊을 수 없다. 그 해는 신종플루에 대한 마땅한 백신이 전무한 상태였고, 어렵사리 타미플루가 국내에 들어와 처음으로 보급된 때였다. 그래서 당시에 아빠는 딸이 1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일상에서 아픈 일은 줄어들었는데 여행만 가면 아프기 일쑤였다. 뮌헨에서는 편도선염으로 골골대고, 하노이에서는 8일 중 4일을 고열과 오한으로 시달리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출국 직전 이틀을 고열과 오한을 동반한 장염으로 귀국행 비행기를 못탈뻔했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번지르르한 레스토랑(La Poma)에서 이걸 먹고 다음날 정말 너무 너무 아팠다. 같이 먹었는데 왜 나만 아파?


그래! 어쩌면 한 인간의 습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은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방향으로 형성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건강염려증에 대하여 단지 '잔소리'라거나 '유별난다'라고 혹평했을 때, '너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거다', '진아는 우리 장례식에 다 올거야, 제일 늦게 죽을테니까'하며 농담을 던질 때-물론 귓등으로도 안듣는다만-가끔은 스스로도 인정했다. 내가 기우가 심하긴 하지 라면서.


그러나 30년 언저리 되는 짧은 인생 역사를 돌이켜볼 때, 나는 학습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내가 21세기 인류의 평균 연령만치는 살겠구나~'라고. 그 덕에 어릴 때 자주 겪었던 증상들을 이제는 훨씬 덜 겪는다. 익숙한 증상의 전조가 느껴지면 온갖 예방책들을 가동해 더 아파지는 것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대체 왜 그렇게 태어난건데?

그렇다면 이 시점에 더욱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몸이 약하게 태어났는가? 유전,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약한 형질인가? 글쎄- 아닌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몇 십년간 병원신세를 진 적이 없으시고 피를 나눈 나의 자매는 건강한데다가 무던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았는가?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으로 영향을 받았다기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다.


이 의문에 대하여 우연히 학생시절 읽었던 책이 한 권 떠올랐다. 바로, '퍼펙트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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