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트파이 판매왕

그 나라의 아이들이 기부하는 방법

by 새록

한국에서는 모금행사라고 하면 빈 상자를 들고 지하철역이나 횡단보도 근처를 배회하며 기부를 부탁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곳에서의 모금행사는 달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직접 모금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돈을 가져와 기부를 하면 그 돈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돈인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기부의 의미도 퇴색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그저 전달자일 뿐, 직접 기부하는 당사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경제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기부문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매 학기마다 직접 모금활동을 기획하도록 했고, 아이들은 투표로 선정된 활동을 통해 가족, 이웃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했다. 그중 나는 미트파이 판매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아마 그게 내 첫 모금활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쌀쌀한 가을, 겨울이 되면 뜨끈한 고기나 치즈가 가득 들어있는 파이를 자주 먹는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당시 모금활동으로 미트파이를 판매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전교생이 각자의 동네에서 미트파이를 팔고 돈을 학교로 가져오기로 했었다.

우선 학교가 파이를 싼 값에 공급받고(여기서 업체의 1차 기부가 이뤄진다), 학생들은 팔 수 있는 개수만큼 파이를 집으로 가져가서 동네를 돌며 판매한다. 수익금은 전부 학교로 가져와서 모은 다음 자선단체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일단 다섯 개만 받아서 집에 왔다. 다섯 개 정도면 다 못 팔더라도 내 돈 내고 먹을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날 오후, 나와 동생은 가장 안면이 있던 옆집의 문부터 두드렸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떨리던지!

딸깍.

“Hey girls, what’s up? 안녕 얘들아, 무슨 일이니?”

“Hi, Ma’am. Delicious meat pies to help the people in need!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맛있는 미트파이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세요!”

“Wow, good on you! I’ll take two. 우와, 기특하네. 난 두 개 살게.”

언제나 천사 같던 옆집 아주머니는 역시나 두 개를 사주셨다! 12년 인생의 첫 세일즈 성과였다.

그렇게 왼쪽 집, 오른쪽 집을 시작으로 동네에 파이를 들고 돌아다니며 모금을 했다. 골목을 채 나설 필요도 없이 우리 집 라인에서 다섯 개가 다 팔려버렸다! 물론, 내 능력이라기보단 뉴질랜드에서는 워낙 모금활동이 일상이 되어있어서였지만.

다음날에는 학교에 가서 파이 다섯 개를 판 돈을 제출하고 당당히 10개의 파이를 받아왔다. 파이 상자가 10개쯤 되니 다 들고 다니기는 힘들어서 킥보드 위에 조심조심 파이를 싣고 골목골목 다니며 이웃들의 문을 두드렸고, 부재중이었던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이를 팔 수 있었다.

셋째 날에는 파이를 20개 받아왔고, 그다음 날에는 30개를 받아왔다. 일주일 동안 나랑 동생은 킥보드에 파이를 싣고 한참을 걸어 더 먼 골목까지 가서 팔았다. 샀던 집은 또 사주지 않으니까.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신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잘 팔아서 팔린 게 아니라 그곳의 기부문화 덕분이었지만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때가 내 판매왕 싹을 틔운 순간이었나 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가르쳐주려고 했던 기부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학기, 두 학기 경험치가 쌓이면서 내가 직접 노력한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배웠다. 그저 ‘이 정도는 없이 살아도 살지’ 싶은 물건이나 돈을 건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 열과 성을 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진짜 기부라는 것을.

다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인데 얼마나 다르겠어 싶지만 한국과 뉴질랜드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양식과 생각하는 방식은 아주 다르다. 한 가정에서의 차이가 한 동네의 차이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의 도시, 나라로 번져 그들만의 사회적인 통념과 기준을 만들어내는데, 뉴질랜드의 사회적 통념은 담장 없는 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웃끼리 거리낌 없이 현관문을 두드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열린 문화, 그리고 그것을 악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도덕 수준 등이 선순환을 이루었고 덕분에 나에게 미트파이 판매왕이라는 추억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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