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의 두 달은 아무런 일정도, 계획도 없는 자유 그 자체였고 그저 눈 뜨면 밥 먹고 마당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집 앞 개울에 나가 물놀이를 하다가 출출하면 킥보드로 근처 구멍가게까지 질주해 캐드버리 초콜릿 하나를 사 먹는 것이 우리 하루의 전부였다. 그렇게 두 달이 끝날 무렵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비행기에 타지 않을 것이고 난 여기서 살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책 없이 행동하는 게 이렇게 설렐 줄이야.
결국 엄마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고 뉴질랜드 아줌마는 현지 대사관에 학생비자를 정식으로 신청했다. 내 여권에는 또 다른 비자가 붙었고, 이번에는 2개월이 아니라 2년짜리였다. 여권에 그저 종이 한 장이 더 붙었을 뿐인데 2년이라는 시간이 더 허락된다니.
아줌마는 내 나이와 학년이 애매해서 뉴질랜드에서는 중학교인 Intermediate School에 입학시켜줬고 동생은 길 건너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일처리가 끝났고 나는 몇 주 새 여행객에서 유학생이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동생의 의견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뉴질랜드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담임선생님이 내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줄 알고 "Which day did you arrive? 무슨 요일에 도착했니?"라고 물어보셨는데, 그동안 계산할 때 필요한 영어만 써본 나로서는 뉴질랜드 영어를 처음 제대로 접해보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뉴질랜드는 억양이 특히 센 편인데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day를 die라고 들어서 언제 죽었냐는 말을 나한테 왜 하는 건지 너무 의아했더랬다. 왜 그동안 영어는 미국식 영어가 전부라고 생각했을까. 정말 무지했다.
그 후로 한 달 넘게 정말 하나도 못 알아듣고 벙어리로 살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표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미국인이 제주도에 떨어진 느낌이랄까. 나름 영어영재반 출신에 영어 자신감 빼면 시체였는데, 그때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 마디도 못하는 내게 그곳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줬다. 내가 말을 하든 안 하든,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내게 계속 말을 걸어주고 몸짓, 손짓에 그림까지 동원해 대화를 시도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나를 바로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줬고 매주 다른 아이의 집에서 모여 나에게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를 하나하나 다 가르쳐주며 그들의 일상에 기꺼이 초대했다. 선생님들도 내가 모르면 알 때까지 설명하고 기다려줬고, 못 하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따로 시간을 내어 지도해주었다.
학교에서는, 외국인이 거의 없어 존재하지 않았던 ESL반(English as Second Language - 외국인 전용 영어반)이 나 때문에 신설되었다. ESL반에 학생이라고는 나 한 명뿐이었는데도 학교는 그 비용을 감당하며 전담 선생님을 배치해 나를 배려했다(물론 외국인으로서의 학비는 뉴질랜드 아이들의 열 배는 더 비쌌기에 가능했을 수도). 그때 나는 선생님들에게 영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원어민이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끄럽고, 힘들고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게 내 가장 큰 자산이 된 것을 보면 헛된 경험은 없는 것 같다.
뉴질랜드의 학교에는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이 한 반으로 구성되어있었고 중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숙제가 없었다. 처음에는 옳다구나 하고 탱자탱자 놀았는데 알고 보니 중간, 기말 등으로 제출 기한이 정해져 있고 숙제의 진도는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는 엄마는 전화로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셨지만 그때마다 나는 “여기는 숙제가 없어! 공부할 게 없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10장짜리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제출 당일날 알게 된 걸까.
숙제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미진한 내 영어실력을 탓해야 하나 싶었지만, 한국에서처럼 각 과목의 문제를 풀 학습지가 숙제가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쓰는 게 숙제라는 것이 생소했던, 그저 문화의 차이라고 피력하고 싶다.
그렇다. 그곳에서는 사지선다, 오지선다 형태의 문제를 푸는 것은 숙제로 내지 않았다. 그렇게 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은 학교 수업에서 짚고 넘어갔고, 집에서는 나 스스로 내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 숙제였다. 태어나 13년을 살며 단 한 번도 리포트라는 것을 작성해 본 적이 없거니와, 그것도 10장 분량을 써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영어로는 더더욱...
처음 한 학기 정도는 담임선생님도 많이 배려해주셔서 한두 장 써가는 것으로 그쳤는데, 둘째 학기 정도 되니 선생님이 이것보다 더 자세히 써야 한다고 압박(?)을 주셨다. 더 조사하고 고민 해오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학기가 되니 (뉴질랜드는 4학기제다) 그때부터는 학점으로 압박을 주시며 내 리포트 길이와 비례할 정도의 피드백을 손수 적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글쓰기가 영 나아지지 않는다 싶으셨는지 마지막 학기인 4학기째에는 방과 후에 따로 불러서 리포트의 짜임과 논리적 글쓰기, 쉽게 읽히는 글의 형태 등에 대해 굉장히 열심히 가르쳐 주셨다. 물론 그때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때서야 처음으로 글에는 종류가 있고 숙제로 제출해야 하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주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담긴 설득의 글 (Persuasive Essay)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하루는 어떤 남자아이가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책에 나오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푸는 방법을 제시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나와서 풀이를 해달라고 했고 풀이 과정을 다 같이 지켜보았다.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그 방법도 좋지만 다수에게 설명하기에는 선생님의 방법이 더 쉽다고 말했고 아이는 자신의 방법도 쉽다고 주장했다. 그때 선생님이 던진 말 한마디-
“밋첼, 이번 학기 너의 리포트는 너의 풀이 방법이 수업에 적용되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와 그걸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써보는 것이 좋겠다.”
학기 말에 밋첼은 자신이 도서관에서 찾아본 자료들에 대한 각주가 몇 장씩 달려있는 두툼한 리포트를 제출했고 선생님은 그 리포트에 담긴 설명을 토대로 새로운 풀이 방법을 반 전체에게 쉽게 설명해주었다. 만 나이로 12살, 고작 6학년 나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도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를 갖고 타인을 설득시킬 수 있다니.
만약 우리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도중에 반기를 든 것부터가 혼날 일이고 그에 대한 리포트 10장을 써야 했다면 설득문이 아니라 반성문을 써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리포트 쓰는 게 죽어도 싫었지만 교육에 몸담고 있는 어른이 된 지금, 과연 어떤 방식이 더 교육적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면 나는 단연 리포트를 채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