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기유학이 망설여지는 단 하나의 사건

굳이 빨리 어른이 될 필요가 있을까?

by 새록

여자아이가 12살이 쯤 되면 몸에 변화가 올 시기인데, 나 역시도 그랬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 아니면 마주하기 부끄러워 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 시기에 내 몸에 일어날 변화에 대해 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두 달로 계획하고 떠난 어학연수가 끝을 알 수 없는 유학이 되어버린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팬티에 비친 검붉은 무언가에 깜짝 놀라 속옷을 후다닥 빨아서 널어놓았다.


‘나 죽는 건가?’


속옷만큼은 직접 빨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대로 나는 속옷을 직접 손빨래했었고, 속옷을 빨아서 널어놓는 것은 일상적이었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말하고 싶지 않은, 왠지 께름칙한 기분.


그 주 토요일에 엄마와 통화할 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근데, 나 팬티에 피가 묻어 나왔어. 나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지구 반대편에서 받은 전화기에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아마 엄마도 나를 키우며 언젠가는 마주할 이런 상황을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셨겠지만 10시간을 넘게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딸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셨을 것 같다.


얼마 후 커다란 상자에 각종 위생용품과 어른이 입을법한 속옷들이 소포로 도착했다. 나는 하얗게 포장된 생리대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겉면을 아무리 살펴봐도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떻게 착용하면 되는지, 얼마나 자주 바꿔줘야 하는지,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2000년도쯤의 뉴질랜드 시골에서는 지금처럼 와이파이는 커녕 인터넷을 쓰려면 전화기에서 선을 빼서 PC에 접속하는 모뎀을 이용할 때여서 인터넷을 쓰려면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어찌어찌 접속한다고 한들 사라지지 않는 로딩 표시만 노려보다 끝나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깨우쳐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새로운 세상이었다.


“아줌마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던 생리대를 들고 아줌마에게 여쭤보니 그분도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 이게 뭐길래 어른들이 하나같이 말을 못 해주는 걸까. 잠깐의 정적 끝에 아줌마는 바지 위로 팬티에 두 다리를 끼우시더니 생리대를 열어서 붙이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어휴 진짜, 내가 별걸 다... 너희 엄마는 이런 것도 안 알려주고 보내셨니?”


그분은 정말 마음에 남는 말만 하시던 분이었다.


소포를 보내는 것 말고는 달리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인생에 있어 이때만큼 제대로 된 어른이 필요했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얼른 나 스스로 어른이 되는 수밖에. 아픈 말을 하시던 분이었지만 그나마 아줌마라도 계셔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기유학은 장점이 많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충분히 컸다고 생각되지만 충분히 크지 않은 나이에 주 양육자가 부재하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랬다.


유학을 고려할 때 그저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어야 해서 어떡하니’ 하는 걱정만 해서는 안된다. 청소년기에 혼자 산다는 것은 그저 부모와 떨어져서 산다는 것 이상으로 생각보다 많은 결정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나이에 언젠가는 책임으로 다가올 선택들을 해야 하기에. 하다못해 뭘 먹고, 뭘 입는지조차 통제하는 사람 없이 아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 결과가 아이의 건강을, 태도를, 평판을 결정짓게 된다.


물론 엄마는 최선을 다해 전화로 잔소리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단언컨대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부모는 우리 아이만큼은 충분히 성숙하고 충분히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건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이어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서 아이도 어른도 더 개방적이고 정보도 빠르지만 생각보다 살면서 정서적인 지지와 어른의 올바른 모델링이 필요할 때가 많다. 어쩌면 그 부재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유학생들이 나쁜 길로 빠지거나 멀리에서까지 부모의 속을 썩이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고, 그 결과로 유학생을 바라보는 일부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우리 아이의 유학을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면 ‘엄마 보고 싶어서 어떡해’라는 순진한 고민 때문이 아닐 것이다. 조기유학이란 단순히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한 교육적 선택이 아니라, 우리 아이를 옆집 아이보다 5년, 10년은 더 빠르게 어른을 만드는 중대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내 아이가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숙한 아이인가? 부모인 나와 아이의 관계가 그 어떤 문제라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신뢰가 쌓인 관계인가?


두 가지 모두 절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유학의 성공 여부는 그 아이가 아니라 그 부모에게 달려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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