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재수 아닌 재수를 하게 됐다. 검정고시를 보고 남들보다 1년 빠른 나이에 대입을 준비했으니 재수를 해도 나이에 맞춰서 입학하게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뭐든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우리 집에 가장 없는 것이 돈이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그래서 그때부터는 포잡(four jobs)인생을 살았다. 무조건 돈을 벌어야했다. 입학금이랑 한 학기 학비, 총 500만원 이상 되는 돈을 모아야했다. 그 후에는 장학금을 타면 되니까. 오전부터 오후까지, 오후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심야까지, 주말알바까지. 틈틈히 주변의 추천으로 영어과외도 했고.
콜센터(텔레마케팅), 생과일주스점, 빵집, 카페, 옷가게, 약국, 전단지, 단순포장알바, 서빙 등 안해본 종목(?)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 씻고 잠만자고, 모든 끼니는 식대제공 알바에서 해결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돌아온 수시철.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재시험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작년에 봐둔 토익점수를 그대로 접수했다.
놀랍게도 작년에 같은 점수로 최종합격한 모 대학 국제학부는 서류부터 광탈이었다. 그새 재수생들이 이를 갈았는지, 대부분의 대학들도 면접까지도 못가봤다. 그러다가 유일하게 딱 한 군데, 면접 제안이 온 학교가 있었으니.
물론 핑계겠지만 일하느라고 대입준비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면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몰랐고 매번 임기웅변이었다. 이번에 면접 보게 된 학교도 마찬가지였고.
면접 대기장에서 제시된 질문 중 하나를 골라 답변을 작성하고 면접장에 가서 대답을 하면 됐는데, 이날 따라 머리가 새하얗게 되버리고 답변을 거의 못했다.
보다못한 교수님 한 분이 말씀하시길,
“That’s it?” (그게 다야?)
“Yes, that's it….” (네, 그게 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걸어나왔다… 망. 그것도 폭망. 그렇게 면접 직후 또 한번의 재수를 예감하고 대학 입학은 단념한채 열심히 돈을 모으던 중, 합격발표날 이상하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확인해봤더니, 합.격?
합격의 기쁨보다도 의아함이 컸더랬다.
‘어? 왜?? 왜 붙었지??’
그래도 이번에는 대학이란 곳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었고, 대단한 꿈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