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순이지만 여행은 좋아한다.
새로운 풍경에 자극을 받고
따뜻한 곳에서 쉬면 그것이 최고의 여행이다.
뭔가 가슴이 답답했던 어느 날
나 혼자 대전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기꺼이 허락을 해주었고
아이 등원 직후의 시간에 맞춰 기차표를 예매했다.
동대구역에서 대전역까지 기차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내리자마자 대전역 안의 TV 앞은 사람들로 웅성웅성했다.
2025년 4월 4일.
'무슨 일이 터졌구나!'
나도 멈춰 서서 TV 영상에 주의를 돌렸다.
판사분께서 윤대통령 탄핵 선고 판결문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 뭉클했다.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거기다 장소가 대전이라니 평생 잊을 수가 없겠다.
그 소식이 반가웠던 이유는 따로 있다.
휴직을 결정하게 된 원인 중에 당시 대통령의 계엄 선포도 한몫했었다.
공무원으로서 이 문자를 받은 그날. 나는 아이와 함께 잠들어있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문자에 대비할 수가 없었다. 아이 때문에 TV도 휴대폰도 담을 쌓고 있었다.
그때까지 깨어있던, 동료직원들은 불안감에 떨며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고 했다. 가뜩이나 소란한 나인데 사무실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있던 불안증세가 증폭되고 있었다.
한강 작가님이 발표했던, 계엄 이후 상황을 쓴 <소년이 온다>를 몇 달 전 읽었던 참이라 더 슬프고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사회마저 나를 도와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리더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여러모로 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사무실 일에 집중해서 빨리 끝내고 아이 데리러 가야 할 판에,
나라는 시끄럽고 사무실 내에서의 생긴 분란도 내
신경을 건드렸다.
휴직서를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제대로 받았으면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명상과 마인드 컨트롤로 역부족이었는데 약이 생각보다 사람을 숨 쉬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전 여행은 한결 마음이 가벼운 채로,
두 손은 무겁게 성심당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