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어를 거울 삼아 나와 우리를 발견하다 -
오늘의 단어는 samenhorigheid(de)이다. trouw(de)를 다룬 '신뢰와 불신 사이에서'에 이어 '네덜란드어를 거울 삼아 나와 우리를 발견하다' 시리즈 두 번째 글.
잇닿을 연, 띠 대인 우리말로 연대(連帶)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①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②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네이버 국어사전)
① 어떠한 행위(行爲)의 이행(履行)에 있어서, 두 사람 이상(以上)이 공동(共同)으로 책임(責任)을 지는 것, ② 한 덩어리로 서로 결속(結束)되어 있는 것. (네이버 한자 사전)
우리말로 '연대' 혹은 '결속', 영어로 solidarity라고 번역하는 네덜란드어가 있다. 바로 SAMENHORIGHEID(de)이다. 과연 네덜란드어는 '연결되어 있음', '사회적 결속'을 어떤 개념으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을까? 단어에 담긴 재밌는 뜻을 찾아본다.
'함께 들음', '서로 들음', '함께 속함', '서로에게 속함' - Samenhorigheid
"Samenhorigheid is wel belangrijk.” (연대는 중요하지.)
이 말은 몇 년 전 연구진을 지원해주는 비서 한 분의 정년퇴임 축하모임에 참여했을 때, 옆에 서 있던 동료가 해 준 말이다. 그 비서분은 연구소 설립부터 몇십 년을 일했다. 근속 후 퇴임이라니. 당사자는 동료들에게 정식 고별인사를 고하고 퇴임 후 삶을 축복받고 싶었는지 사재를 털어 카페를 빌리고, 초대장을 보냈다. 연구소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에는 몇십 년 워킹맘으로 일하는 사이 함께 성장한 딸 둘과 그 딸이 낳은 손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연구소 주요 교수들은 모두 와 있었다.
와인잔을 들고서 그 비서와 오래 함께 일했던 동료 두세 명이 대표로 몇 마디씩 축하와 작별의 말을 전했다. 컴퓨터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타자기로 원고를 치던 업무에 대한 기억이나, 흡연이 허용되는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며 근무했던 기억, 그 수십 년 전 이야기를 어제처럼 회상했다.
그 축하의 말을 뒤에서 듣고 있던 내게 옆에 서 있던 그 동료는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며, 딱 "Samenhorigheid is wel belangrijk!"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소에서 오래 일한 축에 들었고, 평소 친절했다. 그 단순한 문장에서 그의 시각이 드러났다. 오랜 직장 동료들이 모여 함께 한 사람의 퇴임을 기념하는,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생활의 의미를 상기해 보는 그런 축하모임이 사회적 연대, 연결됨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면 교수도 아닌데, 한국으로 치면 권한과 권력이 강력한 사람도 아닌데, 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해 줄 직원이라고 여길 만하기도 할 텐데, 연구행정을 지원해 온 비서 한 사람의 퇴임 축하모임에 와서 다들 와인 한 잔씩을 마시고, 건배를 하고 가는 게 신기했다. 그 비서 또한 정년퇴임에 진심으로 자부심 어린 표정으로 우아하게 그 시간을 이끌었다. 자기를 낮춰 보지 않고, 그 권리와 성취를 아는 듯한 당당함이었다. 그 조촐한 모임은 한 사람을, 한 직원을 위계, 직위 상관없이 동료로 보고, 그를 사람 대 사람, 또는 같은 노동자로 바라보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소박한 면모, 문화관, 노동관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모임은 가정생활에 부담 안 가도록 시내 한 카페에서 오후 약 4시 30분 즈음 시작했고, 6시 30분 전후로 자연스레 파했다.
이 퇴임 축하모임을 언급한 것은, 사실 그때 들은 ‘samenhorigheid’란 단어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이다.
듣자마자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어! 저 단어는 “함께”를 뜻하는 samen과 “속함” 혹은 "들림/들음"에서 파생된 “horig”, 명사를 만드는 어미 “heid”, 세 가지 형태소(의미를 가지는 요소로서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가장 작은 말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특히 “horig”은 참 재미있는 형태소이다. 독립적으로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그 어원을 살피면 '들음', ‘듣다(hear)’를 뜻하는 ‘horen’에서 나왔다. gehorig이란 형용사는 방음이 안 돼서 잘 들리는 걸 의미한다.
Deze woning is gehorig. 이 집은 방음이 안 돼.
그런데 “Horen bij~”라고 하면 “~에 속하다, ~에 수반하다, ~과 함께 가다, ~에 요하다”란 뜻이 된다.
A hoort bij B. A가 B에 속하다. A면 B이다.
동사의 추상성을 강화시키는 “be”라는 접두사를 붙이면 “듣다”에서 추상적 의미가 강해진 “속하다”가 된다. 즉, “behoren tot~”은 “~에 속하다”이다.
Vandale 온라인 사전에서 말하는 saamhorigheid의 뜻
- saam·ho·rig·heid (de; v) 1 het bij elkaar horen (van mensen) (사람 간에) 서로에게 속해 있음. (saam은 samen의 변형이다.)
따라서 ‘samenhorigheid’를 직역하면 ‘함께 들음’, ‘함께 속함’, 더 나아가면 ‘서로에게 들음’, ‘서로에게 속함'이 된다. ‘samenhorigheid’의 영어 대응어는 solidarity(연대)이다. 들음에서 속함이 생기고, 들음에서 함께 있음,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는 것.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 따뜻하다.
이렇게 단어를 풀어 설명한 이유는, ‘samenhorigheid’란 단어를 들었을 때, 평소 서로에 대한 유대감, 연결됨은 ‘들음’에서 난다고 생각하던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구나, 한 사회가 오랫동안 써 온 단어에 고스란히 그 의미가 담겨있구나, 마음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듣다(horen)'은 사실 뭔가에 귀 기울여 듣거나, 일부러 듣거나, 주의 깊게 듣는 것(luisteren naar, besluisteren)과는 구분되는 표현이다. Horen은 일반적으로 들려서 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들리는 건 사실 귀에 일부러 소음방지 귀마개(oordopjes)를 끼지 않는 이상 내 통제 바깥이기도 하다. 난청으로 주위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거나, 소리에 무감각할 만큼 고도로 다른 뭔가에 몰두하지 않는 이상은 보통 일정 데시벨(소리 크기 단위) 이상의 소리를 지나칠 수는 없다. 그건, 물리적으로 소리가 들릴만한 거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들리는 거다. 즉 같은 환경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내 통제 바깥에 맞닥뜨리는 불청객과도 같을 수 있다. 따라서 듣는다는 것은 같은 환경에 속해있음을 깨닫는 행위이기도 하고, 내가 의지를 미처 내기도 전에 듣게 되는 수동적 행위이기도 하다. 소음인 줄 알았는데 사람의 말소리였다면 아는 언어이기 때문에 이해된다.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웃는 소리이면 그 소리의 특성으로 발성자의 감정을 유추하게 된다. 즉 듣는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와 행위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깨닫고, 사람됨을 공유하게 되는 기본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Horen, 즉 들려서 듣는 데서, 결국에는 Beluisteren, 귀 기울여 듣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 괴로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탄식하는 이, 말 못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으며 말을 잃은 이가 그 탄식을 외칠 수 있도록, 또 그 경험을 말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귀 기울이고 듣는 과정이 없이는, 즉 ‘함께 듣고’, ‘서로에게 듣는’ 그 일차적 행위가 없이는 전환,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들은 소리에 주의를 귀 기울이지 않고서는, 그래서 함께 고민해보지 않고서는 연결됨을 경험하기 어렵고, 사회적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들음으로써 서로에게 속함을 확인하고, 함께 속하며, 사회다운 사회를 이뤄갈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사회로 존재할 수가 없다. 분절된 개인만 있고,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대립과 반목을 해결할 힘이 부족해진다. 서로 들으면, 갈등도 더 나은 해결책을 향한 추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데 말이다.
철학자 김상봉 님의 인터뷰 중 바로 들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인용한다.
참된 만남은 '고통의 공유, 고통의 교환,
서로에게 자기를 수동적으로 내놓는 용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에 응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홀로주체성의 골방에서
서로주체성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한다
고 김상봉은 강조한다."
(2016년 6월 21일 전진식 기자, “사회를 전복시켜온 슬픔을 믿는다. 세월호부터 서울 구의역 19살 청년의 죽음까지, 고통과 슬픔에 천착한 철학자 김상봉에게 생각의 좌표를 묻다” 한겨레 21 제1117호.)
들리는 것을 듣는 건 먼저 수동적이다. 내어줌이기도 하다. 귀를 닫지 않고 열어둔다는 것, 수동적으로 내놓는 용기, horen에서 besluiteren으로 가는 용기를 강조한 점은 탁월한 통찰이다.
물론 'samenhorigheid is wel belangrijk!'을 처음 들은 그 장소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직장생활에 연결된 ‘축하의 자리’, 와인과 맥주, 케이크를 나눴던 조촐한 ‘잔치의 자리’였다. 그러나 이 단어를 들으면서 나는 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공간, 한 하늘에서 살아가는 데도 들려오는 비탄의 소리, 슬픔의 소리, 눈물의 소리에 귀를 막고야 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연대가 깨져 나가는 사건, 아니 계층과 직위를 종(수평)으로 관통하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대가 희박한 사건, '인격'을 지닌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저렇게 대우할 수 있을까 싶은 사건들 말이다. 특히 일터에서 그러면 힘들다. 인간적인 대우, 직업인으로의 처우를 구하며 여는 농성(籠城)이 셀 수 없이 많은 줄 안다. 2011년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농성이 나한테는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는 대한항공 오너 가족의 전횡과 갑질에 대한 대한항공 직원들의 농성이 있었다. 삼성의 노조 와해 문건도 수천 개 발견되었다.
위 비서 정년퇴임 축하모임 일화 하나로 네덜란드 사회를 미화하고픈 생각은 없다. 이 곳 대학에서도 점점 정규직 계약 비율은 줄고, 단기 계약이 많다. 경력 관리, 커리어 개발, 조직 역동 활성화 등의 이름으로 이직을 격려하는 문화를 정부 차원에서 활성화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소위 프리랜서(자가 고용자 혹은 1인 사업자; ZZPers)도 연금 가입과 주택담보대출 계약을 좀 더 수월하게 하도록 지원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한 곳에서 수십 년을 익숙한 사람들과 그대로 일하는 것은 점점 더 옛 말이 되어간다. 다른 한편, 여기도 노동쟁의가 있다. 몇 년 전 대학 청소부 파업, 얼마 전엔 화장실 갈 시간 및 휴식 확보를 위한 버스 기사 파업이 있었다.
사회안전망이 있고, 일하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시급을 일정비율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고용불안정성을 보상하는 다른 기제가 있고, 알바노조처럼 비정규노동자조직화가 가능하고 그 목소리를 정책수립 과정에 반영하는 통로가 있다는 전제 하에 노동시장 유연화는 오히려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경제 효율 상 필요한 흐름이라면, 그 사회적 충격을 감당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라 쉽게 말은 못하겠다. 큰 틀에서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고정된 이상이 원래부터 거기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닐테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들리는 소리에 귀 닫지 말고 한번 들어봐야 한다고 믿는다. 불편하다고 말하는 목소리, 또는 아프거나 슬프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멈춰서 봐야 한다. 듣고자 노력하고, 움직이고, 의식하는 행동, 그 내어줌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도면 설명에 samenhorigheid란 말이 등장한다. 왜냐? 1927-1930년 지어진 판 넬러 산업단지(Van Nelle Fabriek)는 기획 당시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꿈꿨다. 일할 때 빛을 받도록 채광창을 획기적으로 넓히고, 공동체적 '연대'를 위해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 시설과 동아리 공간도 마련했다. 여러 제품을 생산해 왔는데, 특히 커피, 차, 담배, 껌, 푸딩 등을 가공하여 포장, 유통했다. 점차 식품가공제조업 및 유통업에 알맞는 입지 특성이 변하면서 1990년대부터 이 곳은 사무 및 회의, 행사, 박물관 및 전시 공간으로 새롭게 이용되고 있다. 사람 간의 유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한 은행가와 산업가, 기업 경영가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특별히 설계와 시공을 발주한 덕분에 지어질 수 있었던 이 구성주의 건축물은 2014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백여년이 넘게 살아 남을 산업역사유산, 산업 내 노사간 인간적인 유대와 협동을 상징하는 이 뜻깊은 건축유산에 연 수만명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방문 및 박물관 관람은 사전에 신청하고 안내 받아야 가능하다.
- "De gemeenschappelijke samenhorigheid kreeg vorm in sportvoorzieningen en een rijk verenigingsleven." 사회적 연대는 여러 운동 시설과 풍성한 동아리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다.
네덜란드어에는 유독 'samen'이 들어간 표현이 많다.
함께란 Samen과 일하다란 Werken을 합쳐서 Samenwerken이라 하면 함께 일하다, Samenwerking은 협력, 협동이 된다.
Samen spreken! 함께 이야기하자!
Laten we samen-spreken en samen-werken! 함께 말하고 함께 일하자!
Samen leven begint bij samen spreken'! 함께 사는 것은 함께 이야기 나누는 데서 시작하지! - Samenleven을 명사화 Samenleving(de)이라 하면 '사회(gemeenschap)'가 된다.
Samen Sterk! 함께 강하게!
- 개인에 대한 존중, 개인과 개인의 거리두기, 개인의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만큼 함께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가는 연대의식을 중요시하는 네덜란드에서 장식용 타일에 자주 쓰는 말. '함께 힘을 합쳐야 실로 강하다'
Samen vooruit! 함께 앞으로!
Samen doen! 함께 해요!
CDA(기민당)는 공동체주의적 중도우파, VVD(자민당)은 안보와 기업 할 자유를 중시하는 좀 더 우파, PvDA(노동당)은 교육, 의료, 일자리 등에서의 공공 역할을 중시하는 중도좌파인데, 모두 Samen Sterk(er)!라는 구호를 쓰다니. 물론 주로 지방선거 공보물에서 따온 이미지다. 실제로는 선거 당시 이슈와 전략에 따라, 특히 총선에서는 각각 차별화된 구호를 사용한다.
Samenhorigheid(=Saamhorigheid)와 뜻이 비슷한 단어로는 solidariteit, verbondenheid (연결되어 있음), betrokkenheid (관련되어 있음, 참여함) tussen mensen 등이 있다.
네덜란드 정책 문서 중 “Samenhorigheid”의 용례
“Doel van de herdenking is stil te staan bij het gezamenlijk verleden van alle Nederlanders met betrekking tot de slavernij en vooruit te kijken naar kansen en mogelijkheden voor verdere emancipatie en integratie. De eigen kracht en de culturele diversiteit van mensen met een slavernijverleden staan daarbij centraal. Verbreding van kennis en verdieping van inzicht moeten leiden tot meer verbondenheid en samenhorigheid tussen alle Nederlanders en daarmee tot bundeling van krachten voor een gezamenlijke slavernijvrije toekomst.” (1863년 노예제 폐지, 150주년을 기념하는 2013년 암스테르담 문화행사 기획서 중)
- “(노예제 폐지를) 기념하는 목적은 노예제와 관련 모든 네덜란드인이 집단으로서 공유하는 과거를 곰곰이 돌아보고, 더 나아가 앞으로 사람들이 이뤄갈 해방과 통합의 기회와 가능성을 내다 보기 위해서이다. 과거 노예제와 함께 사람들의 고유한 힘과 그 문화적 다양성을 조명하는 것이 이 기념행사에서 중요하다. 지식을 확장하고, 통찰을 심화함으로써 모든 네덜란드인 사이의 관계와 연대가 분명 더 공고해질 것이며, 따라서 노예 없는 공동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Herwaardering van het belang van samenhorigheid en gemeenschap in de samenleving leidde in 1998 tot de Wet Inburgering Nieuwkomers. In 2003 werd met het “Integratiebeleid Nieuwe Stijl” het belang van een gemeenschappelijke basis en herkenbaar fundament aan het integratiebeleid ten grondslag gelegd (Brief integratiebeleid Nieuwe Stijl, Kamerstukken II, 2003-2004, 29203, nr.1).”
- 사회 속에서의 연대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재평가한 결과, 1998년 ‘신규 거주자 사회 통합법(외국인 귀화법; 이민자 귀하법)’이 마련되었다. 2003년에는 “이민자 사회통합정책, 신규안”을 통해 공동체적 기반과 인정가능한 토대의 중요성을 이민자 통합 정책의 근본으로 삼았다. (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