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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l 10. 2016

경주의 다섯 가지 맛

7월의 첫째 주에 경주를 다녀왔다. 경주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학창시절 수학여행, 그리고 출장 때문에 보문관광단지에서 가끔 묵었던 것이 전부였다. 오래된 유적들에서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모두 기우였다. 직접 마주한 대릉원과 고분군은 제주나 전주 같은 다른 여행지에서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줬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해수욕장은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감성이 좋았다. 

여행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다. 사흘이라는 짧은 여행 기간에도 경주의 이름난 음식들을 먹어보려 노력했다. 감포항의 은정횟집을 제외하면 모두 경주 시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의 식당들이다.


의곡숯불의 소금구이

의곡숯불_소고기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로 31


경주에 갔으면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 경주만큼 질 좋은 소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의곡숯불은 경주 시내의 여러 식육식당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게다. 소금구이 1인분(150g) 가격이 1만8000원. 서울 강남에서는 삼겹살 먹을 돈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예쁘게 정형한 고기의 맛도 나쁘지 않다. 고기는 모두 갈비살만 나오는 것으로 기억한다. 육회와 뭉티기로 부족한 양을 채울 수 있다. 공기밥을 시키면 나오는 된장찌개도 훌륭하다. 고추가 들어가 칼칼한 맛이 소주 안주로 제격이다. 경주의 소주는 '맛있는 참'이다.


별채반 교동쌈밥의 곤달비비빔밥

별채반 교동쌈밥_곤달비비빔밥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77


경주에 있는 동안 두 끼 식사를 해결한 곳이다. 한 번은 돼지불고기쌈밥, 한 번은 곤달비비빔밥과 육부촌육개장을 먹었다. 쌈밥은 돼지불고기를 주 메뉴로 하고 다양한 찬이 나오는 형식이다. 개인적으로는 비빔밥이 더 좋았다. 쌈밥과 육개장은 다른 지역에서도 맛 볼 수 있는 음식들이었지만, 경주 특산물인 곤달비가 들어간 비빔밥은 경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곰취를 닮은 곤달비가 듬뿍 들어갔다. 또 특이하게도 고추장이 아닌 된장으로 비빔을 한다. 곤달비와 된장의 향이 어우러져 맛을 돋운다. 든든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가게가 넓기 때문에 단체 손님이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보였다.


팔우정해장국의 묵해장국

팔우정해장국_묵해장국

경상북도 경주시 태종로 810-1


경주역 근처의 해장국 골목에 자리한 해장국 전문점이다.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경주식 해장국이 별미다. 콩나물국을 기본으로 메밀묵과 신김치, 모자반이 들어간다. 해장국에 웬 메밀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먹어보면 신세계다. 텁텁한 맛이 전혀 없고 시원하게 속을 풀어준다. 함께 나오는 양념장을 풀어주면 얼큰한 맛이 더해져 전날 마신 술을 해장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찬으로 나오는 신김치와 단무지도 곰삭은 맛이 해장국과 어울린다. 해장국 골목에 한 때는 20여개의 가게가 있었다고 하나 이제는 5개 정도만이 영업 중이다. 경주시에서 해장국 골목 일대를 정비하고 있는데다 업주들이 대부분 고령이라 해장국 골목이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 앞선다.


은정횟집의 잡어회

은정횟집_잡어회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감포로6길 22


경주 시내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가면 감포항이 나온다. 감포항은 동해 남부의 중심 항구로 갓 잡은 자연산 활어회를 맛보기 좋다. 감포항의 여러 횟집 중에서도 은정횟집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기에 그 곳으로 갔다. 복어요리와 아구탕이 유명한데, 이번 여행에서는 잡어회를 먹어 봤다. 광어와 우럭, 가자미로 이뤄진 구성이 나쁘지 않다. 특히나 세꼬시로 나오는 가자미회가 맛있다. 찬으로 나오는 도루묵 조림과 멸치젓도 마음에 들고, 끓여 나오는 매운탕도 훌륭하다. 매운탕 국물만으로도 소주 한 병을 비울 수 있을 정도다.


능포다원의 도라지 황차 한 잔. 운학잔에 담긴 차가 맛깔스럽다.

능포다원_황차

경상북도 경주시 원효로 91-3


경주의 맛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차(茶)다. 경주 시내 곳곳에 전통 찻집이 자리하고 있다. 푸른 능과 차의 이미지가 어쩐지 잘 어울린다. 능포다원은 아리솔과 함께 경주에서 유명한 찻집 중 하나다. 영화 <경주>의 초반 촬영지이기도 했고, 배우 배용준이 2009년에 펴낸 여행기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배용준 덕분에 한동안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았고, 최근에는 영화 <경주>를 보고 찾아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도라지 황차를 주문하면 주인이 직접 세차를 하고 첫 잔을 따라준다. 함께 앉아 영화 이야기며 경주 이야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찻집 안뜰에는 대나무를 심어놨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춤추듯 흔들거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멀리 여행을 왔다고 해서 바쁘게 돌아다니기만 할 필요는 없다. 경주에 갔다면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시간을 잊어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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