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에게만 도움될 몇 가지 팁을 위주로
간단하게 짐을 꾸리고 속초로 훌쩍 떠났다. 아침 7시 35분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해 오후 6시 버스를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돌아오는 당일치기 일정. 주말 여행객을 피해 월요일인 18일로 여행날을 잡았다. 오로지 포켓몬을 잡기 위한 여행이었다.
나는 포덕(포켓몬 덕후)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TV로 보던 포켓몬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는 있다. 포켓몬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부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우가 처음 태초마을에서 여정을 출발할 때는 기억난다. 이슬이와 웅이를 동료로 맞이하고 로켓단과 매번 사투(?)를 벌이고... 시간이 훌쩍 흘러 포켓몬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바뀐 듯하고, 나도 포켓몬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십수 년은 지났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포켓볼을 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고 유년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때마침 일을 하지 않고 있어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떠나기로 한 것이다. 속초 태초마을로.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깼다. 인제 근처에서부터 포켓몬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다시 잠을 자지 않고 조용히 게임을 켰다. 비슷한 시간에 버스 곳곳에서 포켓몬 게임의 BGM이 들렸다. 나 같은 트레이너들이 역시나 많군.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휴대폰을 응시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마침내 게임 하단에 포켓몬의 형상이 나타났다. 인근에 포켓몬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버스가 터널을 지나고 밖으로 나오자 거짓말처럼 포켓몬 한 마리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큰 쥐처럼 생긴 니도란이었다. 그렇게 포켓몬 사냥이 시작됐다.
버스를 타고 갈 때는 강원도 용대터널을 지나면서부터 포켓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돌아올 때는 한계교차로 부근에서도 나타났다. 대략 그 정도 지점이 포켓몬 출몰 한계점으로 보인다. 버스를 타고 속초 시내로 들어가면서도 대여섯 마리는 잡은 것 같다. 포켓몬은 사람이 많은 곳에 많았다. 속초해수욕장과 엑스포타워 인근에서 포켓몬을 가장 많이 잡았다. 아무래도 포켓스탑이 있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몰리고 루어모듈을 쓰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서 포켓몬이 몰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한 곳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포켓몬만 나오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바이마을과 석봉도자기 미술관 근처에서도 다양한 포켓몬을 잡을 수 있었다. 앞서 속초 태초마을을 방문한 지인의 말로는 낙산사에 레어 포켓몬이 출몰한다고 한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낙산해수욕장이나 낙산사 방향으로 가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속초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속초 시내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번에 내가 택한 루트는 속초 중앙에 자리한 청초호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린 뒤에 동명항-아바이마을-속초고속버스터미널-속초해수욕장-엑스포타워-청초호호수공원-중앙시장을 거쳐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오전 10시 반 정도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7시간 반 동안 대략 15km 정도를 걸었다. 걸으면서 찍은 속초 사진들을 몇 장 첨부한다. 역시 포켓몬이 사는 곳의 풍광은 남달랐다. 이 정도 돼야 포켓몬이 얼굴을 보이는구나.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포켓몬도 파랗..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영금정으로 향했다. 문제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는 점이다. 속초를 1년에 한 번은 오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는 처음이었다. 영금정에서 포켓몬도 잊고 한동안 바다와 하늘 구경을 했다. 그러다 포켓몬이 출현했다는 진동에 정신을 차리고 사냥을 시작했다. 포켓몬 고(go)를 실행시키고 있으면 진동으로 포켓몬 출현을 알려준다.
이 근처에서는 물에서 사는 포켓몬이 많이 나온다. 잉어킹(Magikarp), 쏘드라(Horsea), 왕눈해(Tentacool) 같은 것들이 주로 출몰한다. 잉어킹은 슬리프와 함께 속초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지겹도록 나온다) 갸라도스로 진화시키려면 무려 400개의 캔디가 필요하다. 잉어킹 한 마리를 잡으면 3개의 캔디를 주고 잉어킹 한 마리를 트랜스퍼하면 1개의 캔디를 주므로, 갸라도스를 얻으려면 잉어킹 100마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정말 힘 빠진다. 그럼에도 그런 노가다에 성공해 갸라도스를 데리고 체육관장이 된 이들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포켓몬 go는 노가다 게임이다.
처음에 속초로 출발할 때는 100종류의 포켓몬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하루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이제는 안다. 심지어 속초에 100종류의 포켓몬이 서식할지도 의문이다. 물론 진화를 시키면 되겠지만... 결과적으로 7시간여를 돌아다닌 결과 정확하게 60종류의 포켓몬을 모았다. 자전거나 자동차를 이용해서 기동력을 올린다면 이보다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 햇살을 맞으며 걸어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리퍼(Hypno), 우츠동(Weepinbell), 피죤(Pidgeotto), 수륙챙이(Poliwhirl) 등은 진화를 해서 얻었다. 하나하나 땀 흘려 모은 포켓몬이기 때문에 내 자식 같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이 가는 아이들이 있다.
미뇽(Dratini). 드래곤 계열의 미뇽은 잘 나타나지 않는 희귀한 녀석인데다 귀엽다. 엑스포타워로 가는 길에 잡았다.
가디(Growlithe).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이다. 캐릭터를 옆으로 살짝 회전시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늠름한데 귀엽다. 이 녀석은 아바이마을에서 속초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설악대교를 건너다가 잡았다.
이브이(Eevee). 귀염력으로는 포켓몬 중에 최고가 아닐까. 동명항 근처에서 한 번 잡고, 속초해수욕장과 엑스포타워 근처에서도 잡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안 나오는 편도 아니다. 귀엽다.
아라리(EXEGGCUTE). 레어한 편에 속하는 포켓몬이다. 레어한 건 일단 좋다.
식스테일(Vulpix). 나인테일 전 단계의 포켓몬이다. 역시나 레어한 편이다. 나도 청초호호수공원에서 한 번 마주쳤고 다행히 잡는데 성공했다. 가디처럼 캐릭터를 옆으로 돌렸을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귀엽다. 가디와는 반대로 영롱한데 귀엽다.
알통몬(Machop). 강력한 포켓몬이다. 3단 변신을 하는데다 1단계부터 세다. 잘 나오지는 않는다. 나는 아바이마을에서 잡았다. 잡는데 제법 저항했던 기억이 난다. 너 잡느라 포켓볼을 제법 썼다...
디그다(DIGLETT). 이마트 근처를 지나다 갑자기 나와서 엇 하는 사이에 잡았다. 이번 여행에서 역시나 한 번만 출몰한 녀석이다.
피카츄(PIKACHU). 처음 스타팅 포켓몬을 줄 때 피카츄를 잡는 법이 있다. 나는 파이리의 팬이기에 고민 없이 파이리로 했지만, 피카츄 잡기가 이렇게 어려운 지 알았으면 좀 더 고민했을 것이다. 피카츄를 두 번 만났다. 청초호호수공원의 전망대에서 한 번 만났지만 녀석이 도망쳤다. 이후 포기 상태로 시외버스터미널에 돌아가는 길에 속초시청 근처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그레이트볼까지 써가면서 확실하게 잡았다. 역시 피카츄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진다.
고라파덕(Psyduck). 고라파덕은 속초 곳곳에 나타난다.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포켓몬의 팬이라면 고라파덕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마리만 더 잡았으면 골덕으로 진화시킬 수 있었는데...
아바이마을을 거쳐 속초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속초해수욕장은 평일임에도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동시에 포켓몬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모래사장에 있는 이들이 물놀이객이라면 해변 근처 조형물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포켓몬 트레이너들이었다. 특히나 속초해수욕장에는 아이템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포켓스탑이 많았다. 포켓스탑은 5분마다 아이템을 토해내는데 게임에 꼭 필요한 포켓볼을 서너 개씩 주거나 한다. 이런 포켓스탑이 가까이 거리에 여러 개가 모여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 곳에 눌러앉아 계속 게임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 듯했다.
엑스포타워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거리에 포켓스탑이 모여 있어 게임을 하기 편했다. 특히나 물놀이객이 많은 해수욕장과 달리 엑스포타워 근처는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거의 점령한 듯했다. 열에 아홉은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고 포켓몬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옆에 앉은 사람의 탄식과 환호성을 들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묘하게 경쟁심리가 생기는데다 눈치 보지 않고 포켓몬에 빠질 수 있는 곳이었다. 엑스포타워가 포켓몬의 성지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포켓몬 go에도 아이템이 있다. 일단 포켓볼이 있다. 포켓몬을 잡는데 쓰이는 포켓볼은 포켓스탑에서 얻거나 레벨업을 할 때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포켓볼 하나에 포켓몬 하나라는 등식이 성립하지만, 갈수록 포켓몬 잡기가 어렵다. 한 마리 잡는데 열개의 포켓볼을 쓰기도 한다. 포켓스탑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다. 참고로 레벨 12가 되니 그레이트볼 20개를 줬다. 그레이트볼은 일반 포켓볼보다 강력한 것으로 CP가 높은 포켓몬을 쉽게 잡을 수 있다. 레벨 20을 달성하면 울트라볼도 준다고 하는데 까마득한 일이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캔디와 스타더스트는 포켓몬을 강화하거나 진화할 때 필요한 아이템이다. 포켓몬을 잡으면 캔디와 스타더스트를 준다. 스타더스트는 모든 포켓몬에 공통으로 적용되지만, 캔디는 해당 포켓몬에만 쓸 수 있다. 예컨대 잉어킹을 잡으면 3개의 캔디를 주는데 이 캔디는 잉어킹을 강화하거나 진화시킬 때만 쓸 수 있다.
리바이브와 포션은 체육관 전투용 아이템이다. 체육관 전투 중에 체력이 다해 죽은 포켓몬을 되살릴 때는 리바이브를 쓰고, 체력이 감소한 포켓몬에게는 포션을 주면 된다. 둘 다 전투 중에는 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포션은 포켓볼처럼 점점 강한 포션이 등장한다.
루어모듈은 포켓스탑에서 사용하면 포켓몬이 몰리게 해주는 아이템이고, 인센스는 30분 동안 내 주위에 포켓몬이 몰리게 해주는 아이템이다. 루어모듈 근처에서 인센스를 쓰고 있으면 포켓몬이 제법 많이 출몰한다. 슬리프 같은 녀석만 자꾸 나타나는 게 문제이지만...
라즈베리는 포켓몬을 잡을 때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강한 포켓몬이 나왔을 때 라즈베리를 쓰면 포획할 확률을 높여준다고 한다. 인큐베이터는 포켓몬 알을 부화시켜준다. 2km나 5km짜리 알은 무한대 인큐베이터로 부화시키는 게 좋다.
이날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들 정도였다. 엑스포타워 근처에서 잠깐 앉아 휴식을 취했다. 10400mAh의 휴대용 배터리 두 개를 준비해 갔는데 하나를 다 써버렸다. 휴대폰 배터리 소모가 제법 심한데 AR 기능을 쓰지 않으면 그나마 배터리를 아낄 수 있다. 나는 중간부터는 아예 AR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려면 AR 기능을 사용하고, 긴 시간 동안 게임을 오래 즐기려면 AR 기능을 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엑스포타워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체육관에 도전해 봤다. 결과는 참패였다. 내가 가진 포켓몬 중 가장 강한 CP 757의 슬리퍼와 CP 486의 루주라(Jynx)로 덤볐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체육관은 트레이너 레벨이 최소 15에 포켓몬 CP도 1000은 돼야 어느 정도 싸움이 가능할 듯했다.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높아지겠지만 말이다.
포켓몬 100 종류 모으기에도 실패했고, 체육관 도전도 참패로 끝났지만 이번 여정은 제법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포켓몬 트레이너라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을 어느 정도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었고, 게임의 완성도도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굉장히 중독성이 높은 게임이다. 하루가 지난 지금도 서울에서 괜히 포켓몬 go를 실행시켜 본다. 어디선가 포켓몬이 나타나지 않을까. 아마도 서울에서 게임이 가능해지면 어마어마한 난리가 날 것 같다.
그리고 속초의 날씨가 좋았다. 뻥 뚫린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게임도 즐기고 바다도 즐기고 일석이조의 여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중앙시장에 들러서 명태식해를 샀다. 역시 속초는 명태식해다.
#18일 단 하루 동안의 체험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잘못 쓴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역시나 게임은 직접 해봐야 이해가 됩니다. 모두들 건승하시길 빕니다!
##참고하면 좋을 사이트
http://it.chosun.com/news/article.html?no=2821807&sec_no=391&pos=main_1
http://cafe.naver.com/headapji/
http://blog.daum.net/kuhs9/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