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빛나는 하루키의 소설들

20160814

by 이기자

TBS 교통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김혜지입니다>에서 매주 일요일 0시에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주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두 권의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14일 방송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음악을 주제로 <상실의 시대>와 <풀 사이드> 두 편의 소설을 소개했습니다. 라디오 생방송은 매주 일요일 0시에 95.1Mhz에서 들을 수 있고, TBS 애플리케이션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청취가 가능합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대본은 사전에 준비한 내용으로 실제 방송 내용이랑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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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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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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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책밤지기, 이종현 씨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자, 오늘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종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한 서점에서 얼마 전에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휴가철에 가장 읽고 싶은 작가가 누구인지를 조사했다고 해요. 이 조사에서 해외 작가 중에는 하루키가 단연 1위였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하루키의 책이 스물 한 번이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하니까요. 어마어마하죠.


DJ

하루키의 어떤 책을 소개해주시나요?? 워낙 책이 많잖아요.


종현

오늘은 아무래도 라디오 방송이기도 하고 테마를 음악으로 잡아볼까 해요.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하루키의 작품 중에 음악이 돋보이는 두 권의 소설을 소개해드리려고요.


DJ

그렇군요. 생각해보면 하루키의 소설에는 정말로 음악이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종현

하루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도쿄에서 재즈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거든요. 그만큼 재즈, 그리고 음악에 대한 애정이나 조예가 깊었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소설만큼이나 재즈나 음악에 대한 에세이, 대담집도 많이 냅니다. 재미있는 조사가 있어서 가져와 봤는데요. 어떤 논문에 따르면 하루키의 장편소설 13편에 등장하는 음악이 모두 300곡이 넘는다고 합니다. 클래식이 98곡으로 가장 많고, 록이 65곡, 재즈가 55곡, 팝과 포크는 20곡, 18곡이라고 해요. 13편에서 300곡이니까 소설 한 편에 음악이 거의 80곡 정도는 등장한다는 거죠.

DJ

어떤 음악가의 노래가 가장 많이 등장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종현

원래 이런 건 2위부터 공개해야 되는거죠. 2위가 바흐입니다. 바흐의 곡이 17곡이나 하루키의 소설에 나왔다고 해요. 1위는 누굴까요. 하루키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눈치채실 수 있는데요. 바로 비틀즈입니다. 비틀즈의 곡은 18곡이 등장한다고 하네요.


DJ

그래서 오늘 첫 곡을 비틀즈로 선곡하셨군요.


종현

맞습니다. 그리고 비틀즈의 음악이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소설과 워낙 관련도 깊어서 골라봤습니다. 비틀즈의 쉬즈 리빙 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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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비틀즈/ she’s leaving home

https://youtu.be/oAYiuFBq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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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오늘 첫 번째로 소개해주실 책은 어떤 건가요?


종현

처음 소개해드릴 책은 아마 하루키의 소설 중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일 것 같은데요. ‘상실의 시대’입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죠. 비틀즈의 노래 중에도 노르웨이의 숲이 있는데 같은 이름입니다. 이미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확 나죠. 단순히 제목만 그런 게 아니라 하루키 스스로가 이 책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루키가 직접 남긴 소설 후기를 보면 이렇게 나와요.

“나는 매일 주점에 가서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의 테이프를 워크맨으로 120회 정도 반복해 들으면서 이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레넌과 매카트니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DJ

워크맨으로 120회라면 대단하네요. 아무리 명반이라고 해도 그렇게 듣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요.


종현

서전트 페퍼스 온리 하츠 클럽 밴드가 비틀즈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에요. 앨범의 러닝타임이 40분 정도 되거든요. 120회를 들었다면 대략 80시간 정도를 이 앨범만 들었다는 거죠. 물론 이 앨범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듣지는 못하겠더라고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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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상실의 시대에서는 어떤 장면에서 음악이 인상적으로 등장하나요?


종현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의 대표작인 만큼 음악도 많이 나오고요. 인상 깊은 장면도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소설의 거의 막바지에 나오는 장면이 저는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나오코와 요양원에 함께 있었던 레이코가 도쿄를 찾아와서 남자 주인공인 와타나베를 만납니다. 레이코는 나오코가 죽기 전에 어떤 말을 남겼는지, 마지막 장례식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을 와타나베에게 전해주는데요. 장례식이 꽤나 쓸쓸했다고 해요. 그래서 레이코와 와타나베는 단 둘이 나오코를 위한 특별한 장례식을 열어주자고 하죠. 레이코가 기타를 들고 수많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요. 헨리 멘시니의 디어 헌터를 시작으로 50곡을 연주해요.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그렇게 나오코의 장례식을 끝내죠.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 작품 해설이 나오는데요. 그 제목이 어린 마음에 너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노르웨이의 숲에서 잠을 깨고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임을 아는 건 우리 모두의 젊은 시절의 나날이다.”

노르웨이의 숲이 마지막 50번째 곡이었다는 것, 그 음악을 나오코의 장례식에서 연주했다는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죠.


DJ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다른 음악들도 소개 좀 부탁드려요.


종현

유명한 음악만 꼽아보자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걸 프롬 이파네마, 도어즈의 피플 아 스트레인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스카브로 페어 같은 음악들이 배경음악처럼 등장합니다.

하루키의 소설 속 음악들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소설의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래서 하루키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하나씩 직접 찾아서 들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되실 거예요.


DJ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음악 한 곡 더 들어볼까요.


종현

크림의 화이트 룸 들어볼게요. 소설 속에서는 BGM처럼 흘러지나가는 음악이지만, 제가 워낙 좋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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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Cream/ White Room

https://youtu.be/pkae0-Tgr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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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달콤한 서재> 책밤지기 이종현 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돋보이는 하루키의 소설, 두 번째로 소개해주실 책은 어떤 건가요?


종현

국내에는 아무래도 조금 덜 알려진 소설인데요. 풀 사이드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건데요. 하루키가 소설 속 인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기는 형식입니다.

풀 사이드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이제 막 서른다섯 살 생일을 맞은 한 남자입니다. 문제집을 만드는 작은 출판사의 임원을 맡고 있는데 젊은 나이에 제법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해서 결혼 생활도 만족스럽고 여러 가지로 사회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사는 남자죠. 그런데 이 남자가 한 가지 강박증처럼 가지고 있는 게 바로 나이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서른다섯 살이 되면 자신의 몸은 이제 늙기 시작한다고 믿고 있는 거예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의 다음날 아침에 이 남자가 자신의 몸을 꼼꼼히 관찰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다림질을 하면서 켜놓은 라디오에서 빌리 조엘의 음악이 흘러나와요. 남자는 소파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울고 있었던 겁니다. 양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고 해요. 자신이 왜 울고 있는지 자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는 거죠.


소설 속에 보면 이 남자가 자신의 몸이 늙기 시작했다는 걸 인정하면서 내뱉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지불한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양은 적어지고 마침내 제로가 된다.”

사실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든 노화를 늦춰보려고 노력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부분이 있는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노력이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정말 늙어버리는 걸 수도 있고요. 차라리 처음부터 늙음을 인정해버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소설이에요.


DJ

재밌습니다. 노래 한 곡 듣고 갈게요. 풀 사이드의 주인공 남자를 울게 한 음악이네요. 빌리 조엘의 알렌타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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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Billy Joel/ Allentown

https://youtu.be/BHnJp0oyO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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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하루키의 소설에서 음악이 정말로 중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종현

하루키는 글을 쓸 때 음악처럼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강조했거든요. 하루키가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이 작년에 국내에도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리듬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글에도 리듬이 있느냐는 오자와의 물음에 하루키가 이렇게 답해요.

“전 재즈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리듬을 확실하게 만들어 놓고 거기에 코드를 얹어 즉흥연주를 시작한단 말이죠. 자유롭게 즉흥을 해 나가는 겁니다. 음악을 만들 때 하고 같은 요령으로 글을 씁니다. 소설을 쓰는데 리듬이 없으면 다음 문장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이야기도 진전되지 못하죠. 글의 리듬, 이야기의 리듬, 그런 게 있으면 자연히 다음 문장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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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도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군요.


종현

그런 거죠.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다른 순문학 소설과는 다르게 굉장히 술술 읽힐 때가 있거든요. 상실의 시대 같은 책은 제법 두꺼운 편이지만 하루 만에 읽은 적도 있고요. 그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 느끼는 리듬감을 하루키가 신경 써서 글을 썼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DJ

사실 하루키의 책이 워낙 많잖아요. 또 음악이 돋보이는, 읽어볼 만한 책은 없을까요?


종현

음악이 돋보이는 걸로만 본다면 빵가게 습격사건이라는 단편소설이 있거든요. 이 책이 짧으면서도 정말 재미있으니까 꼭 보셨으면 좋겠고요. 장편소설 중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같은 소설에 음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니까 눈여겨서 찾아보시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DJ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달콤한 서재>, 책밤지기 이종현 씨였습니다.

곡 들으시면서 저는 2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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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 마이큐 / 환상의 그대

https://youtu.be/b-ooKJSDT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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