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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15. 2017

존 버거를 떠나보내며

지난 1월 2일 세상을 떠난 존 버거를 추모하며 그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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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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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새해 벽두부터 참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이 들립니다. 작년 말에 스타워즈에서 레아공주 역을 맡았던 캐리 피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잖아요.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저번 주에는 영국의 작가인 존 버거 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DJ

존 버거면 책밤지기가 지난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기도 했죠?     


종현

맞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요. 올해로 아흔 살 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다들 생각은 해왔지만 막상 소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DJ

그럼 오늘은 존 버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셨군요.     


종현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존 버거를 생각보다 많이들 모르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했던 작가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존 버거의 글이 조금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해봤습니다.     


DJ

먼저 존 버거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종현

존 버거는 영국의 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인데요. 1972년에 출간한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현대 시각예술 연구의 입문서로 꼽힐 정도로 영향력이 큰 책입니다. 미술비평만 한 게 아니라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G 라는 소설로 부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커상은 지난해 한강이 받으면서 잘 알려진 맨부커상의 옛날 이름이고요. 이밖에도 사회현상이나 정치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냈고 영화작업도 했고요. 스케치도 유명하고요. 거의 모든 예술 분야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은 사람이죠.     

DJ

정말로 경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소개해주실 책을 고르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종현

아무래도 존 버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다른 방식으로 보기> 거든요.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제가 좋아하는 다른 책 한 권을 더 소개해드릴게요.     


DJ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존 버거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볼게요.      


종현

엘튼 존의 캔들 인 더 윈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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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Elton John – candle in the wind

https://youtu.be/NoOhnrjdY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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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지난주 세상을 떠난 영국의 작가 존 버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줄 존 버거의 책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죠?     


종현

이 책은 1972년에 출간된 책인데요. 책과 함께 영국 BBC에서 TV로도 책 내용을 함께 방송했습니다. 존 버거가 직접 출연해서 책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술 비평에 대해 이야기했죠.     


DJ

전에 이야기했던 코스모스랑 비슷하네요. 코스모스도 칼 세이건이 직접 출연한 TV 다큐멘터리와 책이 함께 나왔잖아요.     


종현

비슷하죠. 칼 세이건이 굉장한 미남이라서 주목을 끌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존 버거도 그에 못지않았거든요. 킹스맨이라는 영화 덕분에 다들 영국 신사들의 매력을 잘 알게 됐죠. 존 버거도 젊었을 때 사진을 찾아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얼굴이었습니다.      


DJ

코스모스처럼 다른 방식으로 보기도 큰 성공을 거두는군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거죠?


종현  

황진하 아나운서 가끔 미술관 가시나요? 미술관에 가보면 굉장히 조용하잖아요. 벽마다 그림이 잔뜩 걸려있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림들을 노려보고 있고요. 그림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도 분위기에 압도되죠.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따라오니까 이해도 못했는데 그냥 아는 척하면서 계속 걸어가야 되고요. 

존 버거는 이런 획일적인 미술 관람 문화를 비판합니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수많은 그림들이 신비로워 보이는 건 실제로 그 그림들이 모두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소유할 수 있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낸 결과라는 겁니다.      


DJ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어려워하잖아요. 뭔가 이해하기 힘들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라고 여기고요.     


종현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림은 그냥 그림으로 보면 되는데 미술계에 자본주의의 논리가 침투하면서 불필요하게 그림들을 신비화한다는 게 존 버거의 비판입니다. 예를 들어보면요. 영국 내셔널갤러리에 <성 안나와 성모와 아기 예수와 세례 요한>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원래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그림이었거든요. 학자들만 알고 있는 그런 그림이었는데 어느날 미국의 백만장자가 수십억 원을 주고 그 그림을 사려고 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유명해진 거예요. 이 그림이 그렇게 비싼 거였어? 이렇게 된 거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던 그림이 이제는 내셔널 갤러리의 특별히 마련된 전시실에 따로 전시가 됩니다. 방탄 유리장 안에 들어간 채로요. 이제는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려고 미술관으로 가는데 그게 사실은 다 돈 때문이었던 거죠.     


DJ

어쩐지 미술계를 굉장히 강하게 비판하는 거 같은데요.     


종현

1970년대 유럽의 미술계에서는 존 버거의 책이 나가고 난리가 났습니다. 기존의 미술계를 정말 강하게 비판한 거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고 거기에 존 버거가 다시 반론을 제기하고 그렇게 됐죠. 분명한 건 존 버거의 문제제기 이후로 미술평론이나 미술사학에서 여러 가지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게 된 겁니다.      


DJ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네요.     


종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권위주의가 팽배하잖아요. 미술계도 빼놓을 수 없죠. 조영남 씨의 대작 논란이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이나 결국에는 존 버거의 문제제기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봐요. 미술계를 지배하던 권위주의가 지금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다 보니 마찰음이 끊이지 않는 거죠.     


DJ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종현

여성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운데요. 중세 시대에 그려진 유화 중에는 여성 누드화가 굉장히 많잖아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누드화의 83%가 여성 누드라는 통계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전체 그림 중 여성 화가가 그린 작품은 3%에 불과하다는 거죠.     


DJ

우리가 별문제 없이 받아들이는 부분인데요. 미술관에 걸린 누드화는 뭔가 신성한 걸로 보게 되잖아요.     


종현

존 버거는 그런 설명도 거부하는 거죠. 누드화라는 게 본질적으로 여성을 소유하려는 남성들의 욕망 어린 시선에서 시작된 그림이라는 겁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걸려 있다고 해서 그런 욕망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사례가 미술의 세계에서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컨대 중세시대에 자기 농장을 배경으로 그려진 농장 주인의 인물화가 있다고 치면, 미술관에서 그걸 보는 많은 사람이 평화로운 농장의 풍경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그림이 애초에 그려진 목적은 농장주인의 부를 과시하려는 욕구 외에는 없다는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주식부자가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부동산 부자가 자기 빌딩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한 거죠. 그런 사진을 보면서 평화롭다고 느낄 사람은 없겠죠. 그런데 수백 년 전에 그려져서 미술관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런 그림을 대단하다고 추켜세울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DJ

존 버거는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군요.     


종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죠. 권력에 굴복하거나 권위에 주눅 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드는지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고 있잖아요. 존 버거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도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DJ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종현

작년 크리스마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의 노래로 준비했습니다. 케어리스 위스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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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Wham! - careless whisper

https://youtu.be/izGwDsrQ1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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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다음으로 소개해주실 존 버거의 책은 어떤 건가요?     


종현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제7의 인간>이라는 책입니다.     


DJ

<제7의 인간>. 제목이 독특한데요. 어떤 책인가요?     


종현

이 책은 1975년에 나온 책인데요. 유럽의 이민노동자 문제를 고발한 책입니다. 요즘 유럽에서 들리는 뉴스를 보면 거의가 이민 문제잖아요. 전쟁 때문에 발생한 난민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데 1970년대에는 지금이랑은 상황이 조금 달랐어요. 그때는 유럽도 한창 성장을 할 때라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터키나 동유럽 쪽에서 이민노동자를 많이 받았죠.     


DJ

이민노동자는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도 외국인노동자 200만명 시대라고 하죠.     


종현

이 책을 소개해드리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죠. 외국인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관련된 사회적 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잖아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좋지 않고요. 노골적으로 외국인노동자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죠. 유럽은 이런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었으니까요. 존 버거의 책에서 이런 문제를 잘 풀어나갈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골랐습니다.     

DJ

어떤 힌트가 있을까요? 


종현

우리가 보통 외국인노동자들을 볼 때 위험하다, 무섭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죠. TV나 신문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연루된 범죄 소식을 접하면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지잖아요.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를 생각해봐야 됩니다. 존 버거는 그런 오해들에 대해서 굉장히 냉철하게 분석을 합니다. 일단 1970년대 유럽의 이민노동자나 지금 한국의 외국인노동자나 각자의 나라에서는 가장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걸 이해해야 됩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중에 자기 나라에서는 박사나 의사, 변호사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많거든요. 가족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한국으로 온 거죠. 그런데도 우리는 단지 외국인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위험하고 머리가 나쁠 거라고 단정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존 버거가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적죠.     


DJ

이런 반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외국인 노동자의 범죄율이 더 높지 않느냐고요.


종현

비슷한 이야기가 책에 나오는데요. 1970년대에 프랑스 이민노동자의 정신병 발병률이 일반 프랑스 국민의 정신병 발병률보다 세 배 정도 높았다고 합니다. 그걸 근거로 이민노동자들이 위험하다는 논리가 그때도 있었던 거죠. 여기에 대해서 존 버거가 하는 말이 아주 적절한 대답이 된다고 보는데요. 존 버거는 이민노동자들의 정신병 발병률이 세 배 정도 높다는 건 그들이 일하면서 겪는 불안과 불행이 일반 국민들의 세 배 정도라는 걸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저는 이 말이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봐요. 외국인노동자들이 위험하고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나라의 일반 국민들보다 얼마나 더 위험하고 폭력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겁니다.     


DJ

결국에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메시지 같네요.


종현

저도 그렇게 봅니다. 존 버거가 <제7의 인간>에서 시도하는 작업은 그저 이민노동자 문제를 고발하는데서 끝나지 않거든요. 돈을 벌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외딴 나라로 떠난 청년들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미래를 찾아나가려는 작업이에요.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청년들이 과연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혹은 몸은 고향으로 되돌아가더라도 그가 고향이 주는 안식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묻고 대답을 찾아가는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잖아요. 누구나 고향이 있고 고향을 그리워하죠. 외국인노동자도 마찬가지라는 걸 이해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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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고백 윤종신

https://youtu.be/LcV36URhmu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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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윤종신의 고백 듣고 왔습니다지난주에 타계한 영국의 작가 존 버거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어요존 버거의 책 두 권을 소개해주셨는데존 버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볼 방법은 없을까요?


종현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는데요. 존 버거의 사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존 버거의 철학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요.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직접 출연해서 존 버거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철학을 쉽게 풀어줍니다.


DJ

틸다 스윈튼은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많잖아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에도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고요.     


종현

다큐멘터리를 보면 단순히 출연만 한 게 아니라 존 버거와 틸다 스윈튼이 오랜 시간 교류해온 친구라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니까 조금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이 틸다 스윈튼 덕분에 상쇄되는 점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ebs 국제다큐영화제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하니까요.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습니다.     


DJ

추모 특별전도 열릴 예정이라고요? 


종현

존 버거의 책을 국내에 소개한 출판사가 열화당인데요. 오는 3월에 서울에서 존 버거의 추모 특별전을 열 계획이라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또 존 버거의 책 중에서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최대한 많이 번역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존 버거를 접할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으니까요. 잊지 않고 계셨다가 존 버거라는 이름을 들으시면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살펴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DJ

국내에 번역된 존 버거의 책 중에서 몇 권만 더 추천해주신다면요?     


종현

그림을 좋아하시거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하시면 <벤투의 스케치북>이 좋을 것 같고요. 존 버거의 아내가 2013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 이후에 존 버거가 아내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쓴 글과 사진, 그림을 묶어서 <아내의 빈방>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추천하고 싶네요.     


DJ

오늘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한 작가인 존 버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지난주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는데 영면하시길 바라면서 마지막 곡 들을게요.     


종현

퀸의 라이프 이즈 리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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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 Queen – Life is Real

https://youtu.be/wl20NGS3VF8?list=RDwl20NGS3V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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