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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23. 2017

컨스피러시의 주인공은 왜 호밀밭의 파수꾼에 집착했을까

영화에 잠깐 스치고 지나간 책, 단 한 권이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책.

이번 방송에서는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책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매트릭스에 나온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컨스피러시에 나온 호밀밭의 파수꾼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온 책들
러브레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세렌디피티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까지.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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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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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저희가 매주 두 권의 책을 소개해드리고 있는데요. 너무 비슷한 방식으로만 계속 이야기를 하면 식상하니까요. 오늘은 좀 특별하게 영화 속에 등장한 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DJ

영화 속에 등장한 책. 굉장히 많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뭐가 있었지 하면 잘 생각이 안 나는데요.     


종현

저도 처음에는 별 고민 없이 방송 준비를 시작했다가 당황했습니다. 엄청 많을 것 같았는데 이게 또 생각하려고 하니까 잘 생각이 안 나서요. 그래도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보고 물어보고 하면서 무사히 준비했습니다.     


DJ

어떤 영화, 어떤 책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종현

일단은 세기말의 명작이었죠. 매트릭스에 나온 책부터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DJ

매트릭스에 책이 나왔나요? 매트릭스는 굉장히 사이버펑크하고 디지털적이고 그런 영화잖아요. 책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인데요.     


종현

그렇죠. 매트릭스에 보면 굉장히 초반부죠. 주인공인 네오가 숨겨둔 디스크를 꺼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디스크를 어디에 숨겨놨는가 하면 바로 책인데요. 굉장히 두꺼운 책의 안을 파내고 거기에 디스크를 숨겨둔 거죠. 책의 제목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데요. 바로 그 책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한 장 보드리야르의 책.

DJ

굉장히 어려운 책 아닌가요? 뭔가 의미심장한데요.     


종현

장 보드리야르는 프랑스 철학자인데요. 이 책에서 설명하는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이 사실 영화 매트릭스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해줍니다. 시뮬라크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뜻이거든요. 실재가 없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게 된다는 이론인데요. 어려운 내용인데 이 이론을 아주 쉽게 풀어낸 게 바로 영화 매트릭스입니다.     


DJ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세계가 사실은 기계들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이잖아요. 네오는 모피어스의 도움으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게 되고요.     


종현

기계가 만들어낸 매트릭스 세계관이 시뮬라크르가 되는 거죠.     


DJ

어려운 철학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 걸 보면 매트릭스의 감독은 대단한 사람들이었군요.     


종현

감독이 워쇼스키들이죠. 둘 다 굉장한 독서광인데요. 철학뿐만 아니라 오디세이 같은 그리스 신화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철학이나 신화를 책으로 읽어보면 영화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겠죠.     


DJ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영화,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종현

노래 제목이 다음에 소개해드릴 책입니다. 라즈베리필드의 호밀밭의 파수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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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라즈베리필드 – 호밀밭의 파수꾼

https://youtu.be/C-yr5GLo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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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두 번째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군요. 그럼 이 책이 어느 영화에 나왔는지만 알면 되겠네요.     


종현

호밀밭의 파수꾼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 중에 하나죠. 특히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워낙 독특하고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서 100년이 된 지금 읽어도 금방 빠져드는 책이기도 하고요. 유명한 만큼이나 여러 편의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DJ  

어떤 영화가 있을까요?     


종현

컨스피러시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인데요. 주인공인 멜 깁슨의 집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DJ  

같은 책을 한 두 권이 아니라 수십 권씩 사놨다고요. 뭔가 강박증 같은 거 아닐까요? 


종현

맞습니다. 멜 깁슨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볼 때마다 사는 습관이 있는데요. 여기서 음모론이 나옵니다. 킬러들을 기르는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에서 사용하는 표식이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겁니다. 멜 깁슨은 세뇌된 영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그 책을 볼 때마다 사게 된 거죠.     

영화 컨스피러시의 멜 깁슨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강박적으로 모은다.

DJ 

왜 하필 호밀밭의 파수꾼이었을까요? 


종현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의 주제의식 자체가 위선에 가득 찬 기성 사회로부터 순수한 것을 지키겠다는 게 있거든요. 홀든 콜필드가 귀여운 소녀 피비의 세계를 지켜주려고 하죠.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을 죽여서 순수한 세계를 지키겠다 이런 메시지를 킬러에 연결시킨 게 아닌가 싶고요.

두 번째는 좀 더 흥미로운데요. 유명인을 죽였던 암살범들이 실제로 호밀밭의 파수꾼과 관련이 있습니다. 존 레넌을 죽인 마크 채프만은 암살 직후에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외친 건 유명한 일화죠.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을 죽인 것으로 알려진 리 하비 오스왈드가 체포되는 자리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나왔다고 합니다.


DJ 

정말로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네요. 암살범들과 연관된 책이라.     


종현

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으니까 컨스피러시 같은 영화도 나온 거겠죠.      


DJ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러 영화에 나왔다고 했는데요. 다른 영화도 소개해주세요.     


종현

에이미나 플레전트 빌 같은 영화에도 나오고요. 제니퍼 애니스톤이 주연한 굿걸이라는 영화에도 나옵니다.     


DJ 

굿걸은 주이 디샤넬이랑 제이크 질렌할도 나온 영화였죠.     


종현

제이크 질렌할의 극 중 이름이 홀든 워더거든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랑 이름이 같죠. 그러니까 이 캐릭터가 자기 자신을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이라고 착각해요. 제이크 질렌할은 로맨스 영화에서는 늘 이렇게 이상한 역할만 맡더라고요.      


DJ 

호밀밭의 파수꾼 책도 비범하잖아요. 책이 나온 영화들도 굉장히 독특한 것 같네요. 


종현 

책의 주인공인 홀든이라는 캐릭터가 전에 없던 입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영화에서도 그런 캐릭터를 요리조리 이용하는 것 같아요.     


DJ

노래 한 곡 듣고 영화 속 책 이야기 계속 나눌게요.     


종현

컨스피러시 주제곡이었던 Can't take my eyes off you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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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Morten Harket - Can't take my eyes off you

https://youtu.be/rDXAqiFug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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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영화 속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어떤 영화 어떤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이번에는 한국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에는 한국 영화도 감독들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보는 재미가 늘었죠. 특히 영화에 책이 자주 등장하는 감독이 있습니다.     


DJ

누굴까요? 


종현

홍상수 감독인데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항상 책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책들이 그냥 지나갈 게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돼 있어요.     


DJ

매트릭스에 나온 시뮬라크르처럼요.     


종현

맞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이라는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인 민정이 카페에서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때 읽고 있는 책이 바로 카프카의 단편집입니다.     


DJ

변신이 실려 있는 책이죠.


종현

카프카의 변신과 당신자신과 당신의것을 연결해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주인공인 민정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거든요. 노상 가던 단골 술집에 마치 처음 간 것처럼 행동해서 다른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이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을 닮아 있죠. 하루아침에 인간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런데 정말 변한 건 주인공이었을까요. 아니면 주인공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걸까요. 가족이 벌레로 변했는데 다른 가족들은 숨기기 급급하고 먹고 살 문제부터 고민하잖아요. 진짜 벌레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는데요. 홍상수의 영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한 장면. 극 중 이유영이 카프카의 책을 읽고 있다.

DJ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는 어떤 책이 나오나요?


종현

자유의 언덕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일본 배우인 카세 료가 늘 들고 다니는 책이 있습니다. 요시다 겐이치라는 작가의 <시간>이라는 책이거든요. 책의 제목이 시간인데 실제로 이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입니다. 우리한테 익숙한 시간의 흐름에 맞춰서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그걸 놓아버리고 사람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영화가 달리 보여요.      


DJ

시간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영화군요.


종현

극 중에서 문소리가 카세 료에게 책 내용을 물어봐요. 무슨 내용이냐고요. 카세 료가 설명을 해주는데요. 이게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은 실존하는 그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뇌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틀을 만들어 내는 거죠.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서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DJ

꼭 시간을 통해서 삶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종현

그렇죠. 홍상수 감독 영화는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잖아요. 구운몽 같기도 하고 호접몽 같기도 하고요. 호시다 겐이치의 책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DJ

생활의 발견에도 책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종현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 나왔죠. 주인공 김상경이 이 책 한 권만 달랑 들고 여행을 떠나거든요. 그런데 춘천에서 경주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만난 여자가 그 책을 보면서 “그 책이 제가 아는 어떤 분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일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여자가 추상미 씨였고요.     


DJ

스콧 니어링은 생소한 이름인데요. 


종현

이 분은 독특한 삶을 살았던 분인데요.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하면서 생태학적인 삶을 실천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거액의 유산을 거부하고 전쟁에 반대하다 대학에서 해직되자 아내와 함께 숲 속에 들어가서 채식을 하며 살았죠.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평화에 대한 믿음 같은 것들을 말만 한 게 아니라 행동으로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영화와 별개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도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DJ

영화 속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책들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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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최은진 고향

https://youtu.be/9gb8dxtK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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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최은진의 고향 듣고 왔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에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노래였죠. 영화 속 책 이야기 계속해볼게요. 이번에는 어떤 영화인가요? 


종현

이번에는 영화에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 책들을 골라봤습니다. 먼저 러브레터에 나온 책부터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DJ

러브레터는 너무 좋은 영화였죠. 오겡끼데쓰까 하는 장면은 정말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고요.     


종현

정말 아름다운 영화죠. 이와이 슌지라는 천재 감독의 탄생을 대중에 알린 작품이기도 했고요.      


DJ

러브레터에는 어떤 책이 나왔죠?      


종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인데요. 프랑스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막상 읽어본 사람은 찾기 힘들죠. 저도 거의 못 읽었는데요. 4000쪽에 달하는 대하소설인 데다 프루스트가 전개하는 문체나 문장들이 워낙에 수준이 높아서 그냥 글자를 읽어가는 걸로는 이해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러다 보니 유명세에 비해서 독자는 많지 않은 책인 거죠.     

영화 <러브레터>에 나온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DJ

그러고 보니 러브레터의 남자 주인공이 어려운 책만 골라서 읽는 버릇이 있었잖아요.     


종현

사람들이 빌리지 않는 책만 골라서 대출카드 맨 위에 자기 이름을 남기는 걸 좋아했죠. 이 책도 그런 이유에서 등장하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나중에 이 책이 사실은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였다는 게 드러나죠. 


DJ

마지막 부분이었죠.


종현

그게 드러나면서 참 감동적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죠.


DJ

영화에서 사랑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 책한 권만 더 소개해주세요.


종현

러브레터처럼 감동적인 영화죠. 세렌디피티에도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DJ

어떤 책이 나왔죠? 


종현

노벨문학상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책인데요. 사랑의 영원한 힘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만난 남녀가 서로가 운명의 짝인지 시험하는 내용인데요. 여주인공인 케이트 베켄세일이 갖고 있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자기 연락처를 적고는 그 책을 헌책방에 팝니다. 남자 주인공인 존 쿠삭이 그 책을 구하게 되면 둘은 운명의 짝이라는 거죠. 


DJ

결국 나중에 그 책을 구하게 되죠. 


종현

그렇죠. 약혼녀가 존 쿠삭이 그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헌책방에서 산 책을 선물했는데 그 책에 바로 운명의 짝의 전화번호가 있었죠.


DJ

약혼녀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죠. 


종현

운명은 누군가에게 행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운일 수 있으니까요. 


DJ

오늘 영화 속 책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마지막 곡도 소개해주세요. 


종현

러브레터 ost에서 골랐습니다. a winter st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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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REMEDIOS – A WINTER STORY

https://youtu.be/4YlWxDD3-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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