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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5. 2017

제주를 사랑한 두 남자, 그리고 두 권의 책

제주를 사랑한 두 남자, 그리고 두 권의 책.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
한국인 사진작가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두 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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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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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설에 쉬고 2주 만에 뵙네요.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요즘 날씨가 너무 춥잖아요. 이렇게 추울 때면 늘 생각나는 그곳이 있죠. 남쪽의 섬나라, 제주도에 대한 책 두 권을 가져왔습니다.


DJ

제주도에 대한 책이군요제주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가 아닐까 싶어요.


종현

같은 한국인데도 서울이랑 제주도는 날씨가 천양지차잖아요. 한국인데도 한국 같지 않은 낯선 매력이 제주도를 계속 찾게 하는 거 같아요.     


DJ

책밤지기는 제주도 자주 가나요?


종현

저는 매년 갑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매년 두 번씩은 꼭 갔어요. 봄에 동쪽을 갔으면 가을에는 서쪽을 가고요. 여름에 한라산을 올랐으면 겨울에는 바닷가를 가고요. 제주도는 하나의 섬 안에 정말 다양한 얼굴이 있어서 언제 봐도 질리지 않잖아요.


DJ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시네요제주도에 대한 책도 애정만큼이나 특별한 책으로 준비하셨겠죠?


종현

맞습니다. 사실 제주도에 대한 책이 엄청 많죠. 서점 여행코너에 가보면 제주도를 다룬 책만 따로 한 코너가 있을 정도잖아요. 그런데 막상 그런 책들 중에 마음에 와 닿는 책은 또 많지가 않아요. 제주도 맛집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그런 책들은 정보는 되지만 제주도에 대한 사랑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오늘은 제주도를 진심으로 아끼고 정성을 바친 저자들의 쓴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책을 읽어보고 제주도를 가면 또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DJ

어떤 책일지 궁금하네요. 첫 번째 책부터 소개해주세요.      


종현

첫 번째 책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인 이즈미 세이치가 쓴 ‘제주도’라는 책입니다.     


DJ

일본인 학자가 쓴 제주도에 대한 책이라고 하니까 특이하네요.


종현

이즈미 세이치는 1930년대부터 30년에 걸쳐 제주도를 연구한 학자거든요. 자신의 일평생 연구 결과를 묶어서 1966년에 일본에서 출간했는데 그 책이 2014년에 우리말로 번역돼 나온 겁니다. 번역은 제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산악인인 김종철 씨가 했는데요. 이 분이 1995년에 작업을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걸 김종철 씨의 아내인 김순이 시인이 정리해서 책으로 낸 거죠.

DJ

이 한 권의 책이 우리말로 나오기까지 이즈미 세이치와 김종철 씨그리고 김순이 씨까지 세 분이 노력한 거네요.


종현

제주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DJ

노래 한 곡 듣고 <제주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종현

프롬의 그녀의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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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프롬 – 그녀의 바다

https://youtu.be/_AvunPU2Q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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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제주도에 대한 첫 번째 책책 제목부터 제주도네요그런데 일본인 학자가 어떻게 제주도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거죠?


종현

이즈미 세이치는 1930년대에 경성제대를 다녔거든요.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1935년에 처음 제주도를 방문해서 한 겨울에 한라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눈보라에 휘말리면서 산악부 대원 한 명이 조난을 당해서 목숨을 잃은 거죠. 이즈미 세이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공을 일문학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바꾸고 제주도 연구에 몰두합니다.


DJ

친구를 잃은 슬픔을 학문으로 승화한 거네요.


종현

그런 셈이죠. 해방 전까지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직접 연구를 했고요.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다 일본으로 쫓겨나잖아요. 그 이후에는 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제주도 사람들에 대해 연구를 했고 1960년대에 다시 제주도를 방문해서 30년 동안의 변화를 정리하고요. 이 책은 그런 연구의 결과물이죠. 


DJ

아무래도 일본인이 제주도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요.     


종현

이즈미 세이치는 문화인류학자니까요. 국적을 떠나서 진심으로 제주도를 사랑하고 연구한 게 아닐까 싶어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보면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유홍준 박사는 이 책을 “그의 학자적 자세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인류학적 사고의 총체적 시각이 갖는 인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 책은 제주도에 관한 연구서를 넘어서 인류학적 조사 방법과 분석, 서술의 한 전범을 제시한 명저”라고 평가했습니다.     


DJ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종현

우리가 제주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한라산, 성산일출봉, 우도, 대방어. 이런 것들인데. 이즈미 세이치의 책에는 그런 피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제주도의 진짜 모습, 진짜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과 삶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어요. 


DJ

예를 들면요?


종현

책에 제주 지역의 민요가 많이 나오는데요. 저자가 직접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각 마을의 민요를 채집해서 기록한 거죠. 교래리에서 채집한 마당질소리나 목장 지역에서 채집한 사낭소리 같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제주의 목동이 눈 앞에 그려지기도 해요. 제주의 소년소녀들이 오름 기슭에서 민요를 부르면서 수백 마리의 마소 떼를 모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그런 것들이 참 아름답죠.     


DJ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모습이네요개발되기 전의 모습들.


종현

1930년대의 제주는 미지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죠. 이제는 비행기로 손쉽게 가지만 그때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해녀들에 대한 이야기도 참 재밌어요. 제주 해녀는 지금도 유명하잖아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느 정도였냐, 제주 해녀의 솜씨가 워낙 좋으니까 만주에서도 물일 할 사람을 찾아서 제주 해녀를 데려갔다고 해요.


DJ

지금으로 치면 스카우트를 해간 거군요.


종현

그렇죠. 매년 2월이면 제주 해녀 20명 정도가 한 조가 돼서 육지로 나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라도에서 시작해 차츰 동해안, 청진, 만주까지 갔다가 10월 무렵에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육지로 나간 해녀가 1936년에 3360명이나 됐다고 하니까 적은 수가 아니죠.     


DJ

정말로 제주도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이네요.


종현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제주도를 가시면 전혀 새로운 것들이 보일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DJ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해볼게요. 


종현

김목인의 해녀와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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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김목인 – 해녀와 바다

https://youtu.be/s2WwNHGEn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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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제주도에 대한 책이번에는 어떤 책인가요?


종현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책은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님의 에세이입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제목의 책이고요.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과 에세이가 함께 실려 있는 정말 아름다운 책입니다.      


DJ

김영갑 작가부터 소개해주세요.     


종현

평생 제주를 찍은 사진가입니다. 태어난 곳은 충남 부여고요.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제주랑은 상관이 없었는데 1980년대에 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시작했고 1985년부터는 아예 제주에 정착했습니다. 이후 2005년 루게릭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20년을 제주에서 살며 제주의 영혼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일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사셨던 분이에요. 


DJ

김영갑 작가의 제주 사진. 어떤 사진일까요? 


종현

앞에서 소개해드린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를 읽다보면 저자가 제주도를 얼마나 아끼는지가 느껴지거든요.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이분은 오로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에만 미쳐서 다른 것들은 다 포기하고 사진만 찍은 분이거든요. 가족도 멀리하고 돈 버는 것도 포기하고 마지막에는 건강마저도 잃었죠. 오름의 일출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몇 날 며칠을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숲 속에서 지내고, 섬사람들도 태풍을 피해 뭍으로 나간 마라도에서 열흘 동안 혼자 지내며 바다의 사진을 찍고요. 제주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생인 거죠. 사진에 이 모든 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네요. 

DJ

제주도 사진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인생이라어쩐지 쓸쓸하기도 해요.


종현

책을 보면 고독과 외로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이 분의 친구가 되어준 게 제주의 자연이죠. 책에 인상적인 구절이 많은데요. 몇 군데만 읽어볼게요.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마라도에 가면 세상이 보인다. 갯바위 파도는 시를 읽어주고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하며, 억새는 춤추고 하늘과 바다는 그림을 그린다. 수평선은 고독과 자유를 강의하고 구름은 삶의 허무를 보여준다.”     


DJ

갯바위 파도는 시를 읽어주고 수평선은 고독과 자유를 강의한다. 정말 멋진 말인 거 같아요.     


종현

그렇다고 해서 김영갑 선생님이 내내 외톨이로 지낸 건 아니고요. 20년 제주 생활 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로 제주 중산간 지역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집에 세를 들어 지냈다고 하거든요. 특히나 1980년대나 1990년대에 살아 계셨던 노인 분들은 제주가 겪었던 현대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더 외지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고요. 그런 분들이 때로는 마음을 열기도 하고 때로는 끝내 마음을 열지 않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들도 담담하게 적고 있는데요. 읽다 보면 제주의 자연뿐만 아니라 제주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죠.     


DJ

제주의 자연과 제주의 사람들. 모든 게 담겨 있는 에세이네요. 


종현

자연과 사람. 글과 사진. 모든 게 다 있는 에세이입니다. 말이 필요 없죠.     


DJ

제주도에 대한 책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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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강아솔 – 물의 아이

https://youtu.be/JEvIW89zm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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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제주도에 대한 책. 두 번째로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님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을 본 적 있나요? 


종현

제주에 가시면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을 전시한 갤러리가 있어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곳인데요.


DJ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죠.


종현

저는 2014년인가 2015년인가에 그 갤러리를 우연히 가보고 처음 김영갑 선생님에 대해서 알았어요. 갤러리가 성산에서 표선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거든요. 그때 올레길을 따라서 여행 중이었는데요. 벚꽃을 따라서 걷다 보니까 아담한 옛 학교 건물이 나오고 그 앞에 갤러리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제주의 자연을 담은 아름다운 사진들이 전시 중이었어요. 그때부터 김영갑이라는 이름을 분명하게 기억하게 됐죠.


DJ

갤러리가 크지는 않죠? 


종현

버려진 옛 초등학교 건물을 갤러리로 바꾼 거니까요. 아담하죠. 김영갑 선생님이 생전에 찍은 제주도 사진이 30만 장이라고 하는데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작품은 그에 비하면 정말 극소수인 셈이죠.     


DJ

갤러리도 김영갑 선생님이 직접 꾸미신 건가요?     


종현

책에도 갤러리를 만드는 과정이 나오는데요. 루게릭 병은 불치병이거든요. 선생님이 루게릭 병이라는 걸 안 게 1999년 정도라고 해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면서 마지막 작업으로 갤러리를 만든 거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외진 곳에 갤러리를 뭐하러 만드냐고, 건강부터 챙기라고들 말렸다고 하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최선을 다해서 지금의 갤러리를 만든 거죠. 제주를 가시는 분들은 한 번 꼭 가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자신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 한 남자에게만 제주도가 살짝 열어 보인 영혼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DJ

제주도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까 정말 가고 싶어 지네요. 


종현

저도 방송 준비하면서 오늘 소개해드린 책들을 다시 한번 펼쳐 봤는데요. 읽는 내내 제주도로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습니다.     


DJ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해주고 싶은 인상적인 문구 같은 건 더 없을까요? 


종현

문구보다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김영갑 작가가 20년 동안 제주 사진을 찍으면서 발견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뭘까요? 


DJ

뭘까요? 제주도에만 있는 특이한 거겠죠? 


종현

바로 이어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환상의 섬 이어도요. 20년 동안 제주 사진을 찍다 보니까 어느 순간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있는 유토피아 같은 공간인 이어도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까요. 제주도 속설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이어도를 본 사람은 반드시 미친다고요. 어떻게 보면 제주도에 미쳤기에 그렇게 행복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DJ

이어도는 제주 사람들의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종현

해설을 쓴 제주대 안성수 교수는 이렇게 말해요. 김영갑 작가는 타락한 시대를 살면서 신성한 이어도가 존재함을 입증한 희귀한 사진작가였다. 


DJ

제주도에 대한 마지막 노래도 소개해주세요


종현

앞에 들려 드렸던 세 곡은 2014년에 나온 <해녀, 이름을 잇다>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린 노래들이었고요. 마지막 곡은 제주도에 내려간 뮤지션 장필순의 애월낙조로 골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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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장필순 애월낙조

https://youtu.be/Y33yMTBQ_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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