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살의 위기에 처한 것은 코끼리가 아니라 인간이다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

by 이기자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는 생태주의 소설로 분류된다.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구하기 위한 한 프랑스 남자의 힘겨운 사투를 그린 책이다. 그렇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모렐이 정말로 구하려고 한 것은 인간이었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당하는 코끼리들. 모렐은 코끼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의 인간성마저도 말살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절망적인 것은 이 책이 1956년에 출간됐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도 더 전의 이야기인데도 마치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다. 위대한 소설은 시대를 앞서거나 시대를 초월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소설이 생생하게 읽히는 것은 인간이 지난 60년간 아무런 발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x9788932018317.jpg

진보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무장한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면 난감해진다. 그들의 믿음과 신념이 그릇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정말로 인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힘을 모으면 우리 안의 악을 뿌리 뽑거나 최소한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안의 선한 의지를 끌어모아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문명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나치는 1940년대에 유대인과 집시 600만 명을 죽였다. 캄보디아에서는 1970년대에 급진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200만 명이 학살당했다. 2000년대 들어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30만 명이 죽었고 시리아 내전으로 죽은 사람은 20만 명이 넘은 지 오래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트럼프와 르펜, IS 같은 이름 속에서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늘의 뿌리>의 주인공인 모렐은 1년에 3만 마리의 코끼리가 죽어나가고 있다며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매년 3만 마리 정도의 코끼리가 상아 때문에 죽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인간이 나아졌다고, 혹은 나아질 거라고 믿는 걸까.


인간의 진보에 관한 한 <하늘의 뿌리>에 나오는 미국인 사진기자 필즈의 견해가 적절하다. 필즈는 아프리카의 한 복판에서 모렐의 일행과 함께 하고 살아 돌아왔다. 그는 파리의 조그마한 카페에 앉아 자신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직 믿고 있는 혁명이란 생물학적 혁명이야. 언젠가는 인간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 될 거야. 진보는 점차 생물학 실험실로 퇴각하고 있어."


소설의 주인공인 모렐의 말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특별 주사를 만들어야 할 거요. 아니면 알약이나. 언젠가는 그게 나올 거요. 난 항상 낙관적이었소. 진보를 믿고 있지요. 언젠가는 알약으로 된 인간성을 시장에서 팔게 될 게 분명하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아침마다 식사 전에 물과 함께 먹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그 덕에 일이 재미있어질 거고 정치까지도 할 만하게 될 거요."


내가 믿는 인간의 진보란 이런 수준에서나 가능한 것들이다. 나는 도무지 인간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말, 지금의 현실이 시궁창 같아도 우리가 쥐처럼 살 수는 없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사실 인간이 쥐보다 낫다고 말하려면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최소한 쥐들은 같은 종을 대량학살하거나 단순히 재미를 위해 죽이지는 않는다), 인간은 진보할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인류의 미래를 위험해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도 지난 역사가 증명한다. 히틀러를 비롯해 수많은 대량학살은 종의 개량과 진보가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 순수한 차원에서의 믿음은 정치적인 책략에 악용당했다. 코끼리를 보호하겠다는 모렐의 신념을 아프리카 독립과 민족자결주의에 써먹으려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로맹 가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이 그의 초기작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찌 됐건 <하늘의 뿌리>는 분명히 희망적인 소설이다. 모렐의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은 막연한 희망을, 우리가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수용소에서 모렐과 그의 동료들이 나치에 맞서기 위해 대초원을 뛰어다니는 코끼리와 보이지 않는 숙녀를 상상한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상상함으로써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강제노동으로 육체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땅바닥에 뒤집힌 채 버둥거리는 풍뎅이를 구조해준 모렐의 행동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구조함으로써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 됐든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나치가 만든 수용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진실한 노력은 우리가 수준 이하의 인간이라고 단정해버린 사람들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모렐을 도와 코끼리를 지키려고 한 이들은 정치인이나 기업인, 명망 있는 학자나 예술가가 아니었다. 소련군에 강간당한 독일인 접대부와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에 생포당해 거짓자백을 하고 풀려난 전직 미군 소령 같은 이들이었다. 진보를 믿는 이들은 모렐의 신념을 악용하거나 방해하려고 했을 뿐이다.


<하늘의 뿌리>는 출간된 지 6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소설이다.


-당신은 고생대 초기에 최초로 물 밑의 진흙으로부터 나와, 없는 허파가 생기기를 기다리며 숨을 쉬면서 자유로운 대기 속에서 살기 시작한 선사시대의 파충류 동물을 기억하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좋아요. 그런데 그놈 역시 미쳤다오. 완전히 머리가 돌았지. 그 때문에 그렇게 애쓴 거지요. 그놈은 우리 모두의 조상이오. 이걸 잊어선 안 되오. 그놈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있지도 못할 거요. 그놈은 아마 간이 부었을 거요. 우리도 시도를 해봐야 하오. 그게 진보라는 거요. 그놈처럼 여러 번 해보면 아마도 우리는 결국 필요한 기관, 예를 들면 존엄이나 우애 같은 기관을 갖게 될 거요. 그런 기관은 정말 사진 찍을 만할 거요.
-하늘의 뿌리 555p, 모렐과 필즈의 대화에서



매거진의 이전글광장의 촛불에서 반딧불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