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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2. 2017

누구도 페미니즘을 공부해서 손해볼 일은 없다

여성의 날을 맞아 페미니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의 경계에서 말한다
TBS 교통방송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책 소개 코너 달콤한 서재 마지막 방송입니다.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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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서재 (With 책밤지기 이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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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귀로 읽는 책 이야기 달콤한 서재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종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잖아요. 며칠 지나기는 했지만 여성의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으니 오늘은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두 권 소개할까 합니다.     


DJ

여성의 날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요즘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아졌어요. 대선 후보들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하고요.      


종현

작년에 출판계 키워드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이었잖아요. 주로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 페미니즘이 많이 이야기됐는데 올해는 선거가 있다 보니까 정치 문제와 관련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페미니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요. 각자 어떤 정책들을 내놨는지는 좀 따져봐야겠지만요.


DJ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종현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 신장에서 출발하지만요. 결국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가에 대한 문제거든요. 성별이나 피부 색깔, 인종 같은 걸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겠죠. 이건 이제 상식이잖아요.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게 바로 이런 메시지니까요.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즘을 긍정해야 됩니다.


DJ

그러면 페미니즘을 다룬 책 소개해주세요.     


종현

최근에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요. 제가 다 읽어보지는 못해서요. 나온 지 조금 된 책 중에서 골라봤습니다. 처음 소개해드릴 책은 여성학자인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입니다.     


DJ

정희진 씨면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이죠. 책도 많이 쓰고 칼럼도 기고하고 계시고요.     


종현

대표적인 한국 여성학자라고 할 수 있고요. 여러 책이 있지만 저는 페미니즘의 도전이 특히나 인상 깊었거든요. 2005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에 꾸준히 읽히고 있고요.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DJ

정희진 씨는 페미니즘, 여성주의에 대해 뭐라고 정의를 내리나요?     


종현

이 책의 머리말을 제가 참 좋아해요. 거의 지금껏 읽은 머리말 중에는 최고라고 꼽을 정도인데요.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손해볼 일은 없다.


DJ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자세히 이야기 나눠볼게요.      


종현

김사월의 젊은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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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김사월 - 젊은여자

https://youtu.be/St0Syu7eA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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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출판사 서평을 보니까 페미니즘 교과서라고 적혀 있던데요. 그 정도로 대단한 책인가요? 


종현

교과서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마찬가지였지만 사실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정작 어떤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런 초심자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어렵고 복잡한 페미니즘 이론들을 억지로 주입하지도 않고요. 일상적인 이야기들에서 시작해서 페미니즘이라는 게 어떤 건지, 그게 왜 필요한지를 쉽게 풀어줍니다.     


DJ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종현

비유가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이런 질문이 있어요. 제주도에서 육지로 갈 때 가장 가기 어려운 지역이 어디일까요? 정답은 대전이라고 합니다. 대전은 서울 사람인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교통의 요지잖아요. 국토 한복판이고요. 그런데 대전은 공항이 없어서 제주도 사람들이 가기에는 주요 도시 중에 제일 불편하다는 겁니다. 서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죠. 그렇지만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그게 사실이고요.      


DJ

제주도 사람의 목소리가 여성의 목소리라는 비유네요. 서울 사람과 다른 목소리라는 이야기군요.     


종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죠. 서울 사람들은 잊고 있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다른 목소리들은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고요. 같은 맥락에서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수가 있어요. 예컨대 우리가 부르는 남해는 제주도 사람 입장에서는 남해가 아니잖아요. 아프리카 문학은 제3세계 문학이라고 부르고 괴테나 카프카는 유럽 문학이라고 하죠. 로댕의 조각상은 생각하는 사람인데 앵그르의 그림은 욕탕의 여인들이죠. 정희진은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이 백인, 남성, 비장애인, 서울 사람, 중심부의 시각으로 구성된 거라고 지적을 해요. 이런 익숙한 말에서부터 어떻게 보면 차별이 시작되고 있는 거죠.     


DJ

또 어떤 이야기들을 다루나요?     


종현

굉장히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를 넘나드는 데요. 여성에 대한 남성과 사회의 폭력들을 굉장히 깊이 있게 고찰하고요. 영화에 드러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들도 살핍니다. 집으로나 죽어도 좋아, 알 포인트 같은 영화들이 비평의 대상이 되고요.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성판매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요. 페미니즘이라는 안경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훑어보는 느낌도 듭니다.     


DJ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해주세요.     


종현

여성의 눈으로 보는 인권이라는 장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인권의 보편주의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성과이자 한계다. 인권의 보편성은 억압 세력의 지배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빵을 훔친 사람은 징역에 처한다"라는 법은 평등하지 않다. 부자는 빵을 훔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개인이 갖는 권력의 내용은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성별, 인종, 계급 등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DJ

부자는 빵을 훔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여운이 남는 표현이네요.      


종현

인권이라는 건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될 때에만 인권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설명이 나와요. 보편성이라는 방패 뒤에 권력자들이 숨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봤죠. 재벌들, 정치인들 이런 사람들이 법과 인권의 보편성 뒤에 숨는 장면이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가 고민할 문제인 셈이죠.     


DJ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종현

자우림의 마론인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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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 자우림 마론인형

https://youtu.be/nhdeAMz1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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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페미니즘에 대한 두 번째 소개해주세요.     


종현

경계에서 말한다라는 책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조한혜정 교수와 일본의 대표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치즈코 교수가 주고받은 서신을 책으로 묶어낸 책입니다.     


DJ

한일 대표 페미니스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 컨셉부터 굉장히 독특한데요?     


종현

그렇죠. 사실 이 책을 페미니즘 책으로 구분짓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페미니즘도 두 사람의 대화 주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주제들도 굉장히 광범위하게 다뤄지거든요.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이니까요. 미국 제국주의에서 아시아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상관관계,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대한 고민들. 이런 것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함께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DJ

그런데도 이 책을 페미니즘 항목에 소개해주시는 이유가 있다면요?     


종현

페미니즘이라는 게 어디에서 갑자기 툭 나타난 학문이나 운동은 아니잖아요. 저는 페미니즘만 배우면 다 해결돼 이런 생각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다른 성분들을 먼저 알아야 페미니즘이나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겠죠. 미국 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화, 저출산 고령화 시대... 이런 것들은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고 우리의 일부분이니까요. 경계에서 말한다는 이런 많은 문제들을 페미니즘이라는 시각에서 함께 고민할 여지를 줘요. 그래서 꼭 방송을 통해서 소개해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DJ

저자들 소개부터 해주세요.     


종현

조한혜정 교수는 문화인류학자이자 여성학자고요. 청소년 학습 공간으로 유명한 하자센터를 만들기도 했어요. 저번 주에 방송한 힙합 방송에서 소개해드린 여러 한국 래퍼들이 하자센터의 랩 교실에서 힙합을 처음 시작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20대, 30대 사이에 퍼져 있는 여러 가지 문화적인 코드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기도 하죠.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입니다. 한국에 출간된 책들을 보면 굉장히 예리하고요. 압도적인 글을 쓰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저자이기도 하고요. 2012년에 한국에 출간된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책이 작년에 국내에 화제가 되면서 한국에서도 이제는 제법 유명해졌습니다.


DJ

한일 대표 페미니스트들이 나누는 이야기. 굉장히 인사이트가 넘치고 그럴 것 같은데요.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해주세요. 


종현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편지 중에 자기 가족사에 대한 고백이 나오는데요. 그녀는 피해와 가해의 관계는 뒤얽혀 있다고 말해요. 어떤 거냐면.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할머니는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종교를 고수하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인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아버지죠. 그 아들은 그런 엄마에 대한 반발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딸인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고백해요. 이런 식으로 피해와 가해의 관계가 끊임없이 뒤얽히는 거죠. 우에노 치즈코 교수는 더 나아가서 위안부 문제까지 연결을 지어요. 일본의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것, 고민하지 않는 이유를 피해와 가해가 뒤얽히는 데서 찾는 거죠. 가부장제는 여성을 아내와 창부로 나누잖아요.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일본의 여성은 피해자인 동시에 위안부를 창부로만 보는 가해자가 된 거죠.     


DJ

누구도 가해와 피해가 뒤얽히는 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거겠죠?     


종현

우리가 페미니즘을 배워야 하는 이유인 거죠. 조한혜정 교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어떤 이중적 구조가 형성된 것을 발견했다고요. 어떤 거냐면 ‘남자가 지배하는 사회, 여자가 지배하는 가정’이라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이중적 구조는 모두에게 불행할 수밖에 없거든요. 여자는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남자는 가정에서 소외되고. 모두가 불행하고 외롭다고 외치기만 하는 거죠. 페미니즘은 이런 기형적인 사회 구조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한 거죠.     


DJ

조한혜정우에노 치즈코의 경계에서 말한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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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 Jennifer Lopez – Ain’t Your Mama

https://youtu.be/Pgmx7z49O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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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Jennifer Lopez의 Ain’t Your Mama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두 번째 책. 경계에서 말한다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선거철이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도 했는데요. 사실 페미니즘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나오잖아요. 


종현

페미니즘은 확실히 개인을 강조하죠. 개인의 욕망이나 바람에 충실하자는 사상입니다. 일본도 민족주의라는 면에서는 한국 못지않은 나라잖아요. 우에노 치즈코 교수가 이렇게 말을 해요. 국가보다 내가 소중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페미니즘은 위험한 반국가주의 사상이라고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위험한 사상이 맞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건 전체주의, 민족주의 같이 개인을 말살하려는 시도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의미죠. 


DJ

전체를 강조하면 개인은 언제나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종현

전체, 집단,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죠. 조한혜정 교수의 말 중에 밑줄을 그은 게 있는데요. 약자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사회를 설계하는 기회. 이 말은 내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라는 말이에요. 페미니즘은 어떻게 보면 약자가 계속 살아가기 위한 의지이자 열망이거든요.      


DJ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어렵고 거부감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죠.     


종현

미국 이야기를 꺼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작년에 한 잡지에 기고한 페미니즘에 대한 글이 있거든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전문 번역된 글들도 많으니까요. 꼭 찾아보시길 바라면서 일부만 읽어볼게요.

미셸과 저는 우리 딸들이 이중잣대를 보았을 때나 성별 혹은 인종에 따라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런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것을 목격했을 때 목소리를 내도록 길렀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페미니스트란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게 그들이 모든 남성들에게 원하는 일이니까요. 성차별과 싸우는 건 절대적으로 남성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배우자로서 동반자로서 남자친구로서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과업을 수행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나가야 합니다. 21세기의 페미니즘이란 모두가 평등할 때 우리 모두가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DJ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게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네요.     


종현

한국에서도 대선 정국이고 대통령 후보들이 저마다 페미니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고 있잖아요. 그 말이 허언이 아니기를 바라봅니다. 이런 글을 쓰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뽑을 수 있을 텐데요.     


DJ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서 페미니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살펴봤는데요마지막 곡 소개해주세요.


종현  

돌리 파튼의 나인 투 파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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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Dolly Parton – 9 To 5

https://youtu.be/UbxUSsFXY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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