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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Nov 01. 2017

나를 반하게 만든 소설 속 여성 캐릭터

소설 마시는 시간 1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해요!

10월 23일 첫 방송은 소설 속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주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두 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편집본 듣기↓

https://soundcloud.com/jonghyun-lee-937810079/1029-wma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j 김중혁 작가가 어디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모든 소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사귀고 싶은 사람들의 세계이거나 지켜보고 싶은 사람들의 세계다.”

오늘은 사귀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가 그동안 읽은 소설 속에서 정말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캐릭터. 그중에서도 여성 캐릭터 두 명을 골라봤습니다.     


ann 소설 속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군요. 사귀고 싶을 정도로 멋진 남성 캐릭터는 없나요?     

j 황진하 아나운서를 위해 다음 주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ann 그럼 첫 번째 캐릭터부터 소개해주세요.     

j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중 하나고,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쓰인 표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처음 소개해드릴 캐릭터는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골랐다.      

ann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나옵니다. 테레자와 사비나. 굉장히 다른 성격인데 둘 중에 어떤 캐릭터를 더 좋아하는 거죠?      

j 테레자와 사비나 모두 다양한 측면이 있는 캐릭터라 딱 잘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사비나예요. 사비나에 빠져서 안정된 일상을 버리고 결국 허망하게 죽어버리는 프란츠라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사비나 같은 사람이 정말로 앞에 나온다면 나도 프란츠처럼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사비나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j 제가 좋아라 하는 소설 속 여성 캐릭터를 이야기하는 만큼, 노래들도 제가 좋아라 하는 여성 가수들의 노래로만 골라봤다. 첫 곡은 강이채의 성냥.


m1 강이채 – 성냥

https://youtu.be/6cnqiFxw6ik


ann 사비나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j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테레자와 토마시가 주인공인 소설입니다.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자유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 전후가 주된 배경입니다. 토마시는 유명한 의사로 나오고, 테레자는 우연히 만난 토마시를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사랑에 빠집니다. 토마시도 마찬가지지만 토마시에게는 애인이 있어요. 바로 사비나죠.


ann 사비나가 화가로 나오죠.  

j 맞습니다. 사비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테레자와 다릅니다. 테레자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사랑하는 남자 말고는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없어요. 토마시의 바람기 때문에 상처받으면서 곁에 머뭅니다. 반대로 사비나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요. 사비나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고향인 체코에서 멀어집니다. 테레자와 토마시가 소련군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피했다가 다시 체코로 돌아간 것과 다르게요. 사비나가 마지막에 정착하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사비나는 말 그대로 ‘항상 서쪽으로, 언제나 보헤미아에서 더욱 먼 곳으로’ 갔습니다.

     

ann 사랑의 방식도 달라요.    

j 운명의 짝이라고 생각한 토마시를 떠나지 않는 테레자와 달리 사비나는 자신을 누군가에게 묶지 않습니다. 프란츠와 사랑을 하다가도 프란츠가 아내를 버리고 자신에게 오겠다고 하자 미련없이 떠나버리고요. 사비나는 마치 바람과 같습니다. 사비나가 스위스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 프란츠와 여러 번 만나며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사비나의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사비나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공산주의, 파시즘, 모든 점령, 모든 침공은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어떤 악을 은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악의 이미지는 팔을 치켜들고 입을 맞춰 똑같은 단어를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대열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죠. 국가, 민족 같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사비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람 같은 거죠. 그래서 더 사비나가 매력적으로 보인 걸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테레자는 조금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소련군의 탱크가 프라하에 들어올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순진한 믿음 같은 게 테레자에게 있었다면 사비나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an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j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1988년에 만든 영화입니다. 국내에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소설도 좋지만 영화도 못지않게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쿤데라의 소설은 플롯을 쫓아가는 평범한 전개가 아니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 난해하게 여길 수 있거든요. 그에 비하면 영화는 소설의 핵심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재미가 있죠. 다니엘 데이 루이스나 줄리엣 비노쉬를 보는 즐거움도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비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게 이 영화에서 사비나를 연기한 레나 올린의 연기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소설로 읽을 때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을 그대로 연기합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캐릭터 이야기해보죠.

j 선우정아의 구애입니다.


m2 선우정아 – 구애     

https://youtu.be/yzDCgArwlEk


ann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사비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해줄 캐릭터는 누굽니까? 누가 마음을 빼앗은 겁니까?

j 내 마음을 빼앗은 소설 속 여자 캐릭터. 두 번째로 소개할 캐릭터는 스밀라입니다.     


ann 스밀라? 어떤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인가요?     

j 제목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입니다. 덴마크 소설가인 페터 회가 1992년에 쓴 책입니다.

      

ann 처음 듣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설명 좀 해주세요.     

j 덴마크와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입니다. 출간된 이듬해에 타임지가 올해의 책에 선정하고 온갖 종류의 상을 휩쓸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책입니다.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진 건 아닌데 골수팬이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소설가 김연수가 대표적이죠. 김연수 작가가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추리소설’ 리스트를 뽑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소설이 리스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물론 나도 골수팬을 자처합니다.

     

ann 오. 어떤 내용인가요.     

j 주인공인 스밀라는 사설탐정입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해요.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가 엄청난데 비해서. 스밀라의 아랫집에 살던 꼬마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습니다. 경찰은 실족사로 처리하고요. 그런데 스밀라는 그 꼬마아이가 지독할 정도의 고소공포증이 있었다는 걸 압니다. 그걸 경찰한테 설명하지만 경찰은 들으려 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스밀라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겁니다.      


ann 범인은?     

j 지독한 고소공포증을 잊게 만들 정도로 더 무서운 게 뭐였을지, 그래서 눈 덮인 옥상까지 도망치다 결국 땅으로 뛰어내리게 만든 존재가 누구였는지. 아이를 죽게 만든 게 도대체 누구였는지를 찾아 나서는 겁니다.

    

ann 흥미진진하네요. 배경이 덴마크인가요? 제목도 특이한데.     

j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일단 코펜하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초반부를 차지합니다. 중반부는 사건의 단초가 된 빙하로 향하는 배 안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종반부는 빙하에 도착해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스밀라는 눈에 대한 독특한 감각이 있습니다. 눈을 읽는다고 해야 할까. 스밀라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눈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스밀라가 눈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우리는 나중에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소설인 셈이죠.     

ann 음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노래 한 곡 듣고 이어서.     

j 김사월의 머리맡입니다.     


m3 김사월 – 머리맡    

https://youtu.be/3Q-9lDIYkFo

 

ann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여주인공인 스밀라를 좋아하는 이유를 자세히 알려주시죠.     

j 스밀라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독특한 지 이야기해야겠네요. 일단 스밀라는 덴마크에 살지만 덴마크 사람이 아니에요. 덴마크령인 그린란드 사람입니다. 이누이트라고 부르는 그린란드 원주민과 덴마크 사람의 피가 반씩 섞인 거죠. 권력에 맞설 때는 폭력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이고요. 전형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면서도 이웃집 아이가 고립되는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묻지 않고 챙기는 모성을 보여주기도 해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여성성, 남성성 같은 말들이 있잖아요. 스밀라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요. 오로지 자기가 믿는 것만 충실하게 묵묵히 따라가죠.     


ann 뭔가 요즘 말로 하면 센 언니 같은 느낌이네요.     

j 굉장히 재미있는 말을 스밀라가 해요. 함께 진상을 파헤치는 파트너인 수리공이 스밀라가 말을 험하게 하니까 이런 말을 해요. 


“당신처럼 우아하고 귀여운 여자가 어째서 그렇게 험하게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스밀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해요. 험한 게 단지 내 입뿐이라는 인상을 줬다면 말이죠. 나는 모든 일에 험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이런 표현을 보면 정말로 센 언니죠. 그런데 스밀라에 빠지게 되는 건 이런 당찬 모습 때문만은 아니에요.     

ann 그럼 어떤 모습인가요?     

j 죄책감이죠. 소설가 백영옥 씨가 얼마 전에 쓴 칼럼에 스밀라를 언급했더라고요. 칼럼 제목이 죄책감의 늪이었는데요. 이웃집 아이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죠. 스밀라가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고 목숨까지 거는 이유가 죄책감이라는 건데, 저도 공감해요. 스밀라에게는 경제와 사회, 이 사회의 권력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오로지 스밀라에게 중요한 건 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뿐인 거죠.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아이 한 명 죽은 게 대수냐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스밀라는 그 사소한 죽음을 이해하겠다고 떠나죠. 스밀라가 이렇게 말해요.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우리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다 알잖아요. 그 많은 아이들을 잃고도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귀를 닫고 눈을 돌렸죠. 그러니까 스밀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나는 하지 못한 일을 스밀라는 묵묵히 견뎌내니까요.     


ann 스밀라는 어떻게 되나요?      

j 이 책은 추리소설이니까요. 또 많은 분들이 아직 읽지 않으셨을 테니 결말을 말할 수는 없고요. 다만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스밀라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구름 속의 물방울들은 영하 40도에서도 얼지 않는다고요. 스밀라가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이 딱 그렇습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이렇게 말해요.

“스밀라에게 마음이 뺏기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세상에서는 없다.”

이 말에도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ann 마지막 노래 소개해주세요.

j 3호선 버터플라이의 엑스라이프입니다.     


m4 3호선 버터플라이 – ex-life

https://youtu.be/FrtTMqSmK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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