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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21. 2018

결혼이라는 홈 드라마

결혼에 대한 두 권의 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월 7일 열한 번째 방송은 결혼에 대한 두 권의 책입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미혼남녀뿐인 저희 방송팀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골라봤는데요. 바로 결혼에 대한 책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ann 결혼에 대한 책이군요결혼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도라는 말도 있잖아요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결혼에 대한 책도 정말 많을 테고요.     

도서관에 결혼이라는 주제만 가지고 서가를 꾸려도 아마 한 개 층을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결혼 제도가 등장한 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완벽한 결혼 제도라는 건 존재하지 않잖아요. 결혼에 대한 정답도 없고 고민도 계속되고. 그래서 결혼에 대한 책도 계속해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죠.     


ann 오늘 소개해줄 결혼에 대한 책은 뭔가요?     

소설 한 편, 에세이 한 편을 준비했는데요. 먼저 소설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정이현 작가가 쓴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나오는 ‘홈 드라마’라는 단편입니다.      


ann 정이현 작가 좋아하는 분들이 참 많죠.     

어떻게 보면 21세기 한국의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그동안 낸 작품들이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가 많았죠. 이야기 전개나 구성도 도발적이면서도 치밀하고, 캐릭터도 생생하고 읽다보면 정말 푹 빠져서 보게 되죠.     

ann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소설집도 그런가요?     

이 소설집은 정이현 작가의 초기작들을 모아놨는데요. 정이현 작가가 등단한 게 2002년이거든요. 표제작이기도 한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등단작이고요. 이 소설집에는 데뷔 초반에 발표한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다들 20세기 한국 사회가 강요했던 전형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런 소설들이죠.     


ann 그렇군요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홈 드라마어떤 이야기일지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나눌게요.     

검정치마의 다이아몬드입니다.


M1 검정치마 - Diamond

https://youtu.be/-G2u_5BW9Xg


ann 결혼에 대한 책먼저 정이현 작가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단편 홈 드라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어떤 내용인가요?     

정이현 작가다운 소설인데요. 일단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인물부터 간략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남자는 서른 살의 회사원 김재호, 여자는 스물여덟 살의 회사원 박수진. 그리고 각자 사는 동네가 나오고요. 둘이 사귄 지 5년째인 평범한 커플이고요. 5년이나 사귀었으니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소설은 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을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따라갑니다.     


ann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은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바로 그 소설의 구조잖아요정말로 소설을 그 구조 그대로 쓴 건가요?     

그게 이 책의 재미인데요. 우리 사회의 결혼 준비 과정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소설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다 써도 될 정도로 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요. 이 책이 나온 게 2003년인데요. 이번에 다시 한번 읽으면서 깜짝 놀랐거든요. 소설에 실린 결혼 준비 과정이 어떻게 지금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2017년이잖아요. 14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어요? 그런데 결혼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은 무슨 박제라도 된 것처럼 똑같은 거죠     


ann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남자가 결혼을 하자고 하고 여자도 오케이하고 결혼 준비가 요이땅하고 시작됩니다. 전개 부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거죠. 그런데 결혼하겠다는 말을 들은 양가 부모들의 반응이 진짜 현실적인데 웃퍼요. 양쪽 다 왜 갑자기 서두르냐고 물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거든요. 남자 부모는 내년에 여자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니까 급할 때도 됐지 이러고요. 여자 부모는 남자의 아버지가 내년에 정년퇴직하는 걸 아니까 서두를 만하지 이러고요. 그러면서 며느릿감이나 사윗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ann 부모들 눈에는 자기 자식만 잘 난 거죠.. 사실 뭐 거의 모든 부모가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 소설의 매력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건데요. 여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친구나 가족한테 묻는 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조언을 구해요. 상견례 장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예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것들이요. 그렇게 고른 상견례 장소가 강남의 고급 한정식집이고요. 코스 요리가 나오는 곳으로 일부러 고른 거죠. 이것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조언을 받아서 결정한 거고요.     


ann 꼭 코스 요리여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상견례라는 자리가 절대로 편한 자리가 아니잖아요. 이야기가 계속 끊긴다는 거죠. 분위기가 썰렁해질 때마다 새 음식이 나오면 분위기 전환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그 이윤데, 정말 그렇구나 싶더라고요.     


ann 전개 다음에는 위기와 절정이잖아요결혼 준비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가요?     

역시나 뻔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그런 이야기죠. 결혼 날짜와 결혼 장소를 놓고 위기가 고조됩니다. 역술인이 정해준 날이 하필이면 수요일이어서 그걸 가지고 한바탕 하고요. 결국은 다른 날을 정하게 되죠. 더 큰 위기는 여자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생기죠. 남자는 호오테엘?! 이러면서 난리를 치고요. 결국에는 이것도 봉합이 되는데요. 대학의 동문회관 예식장으로 타협을 본 거죠.      


ann 결혼 날짜와 결혼 장소도 어쨌거나 다 정해진 거네요그런데 어디서 절정으로 치닫는 거죠?     

집이 문제죠. 남자가 장남이거든요. 게다가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으니까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었던 거죠. 돈도 모을 수 있고. 그런데 여자는 단 둘이 신혼생활 즐기는 것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는 겁니다. 결혼을 석 달 남기고 마침내 절정으로 치닫죠. 남자가 부모님 모시고 살자고 하니까 여자는 헤어지자고 하고요. 정말로 열흘 넘게 서로 연락도 안 하고. 그제야 양가 부모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죠.     


ann 정말 우리 주변에서 널리고 널린 흔한 전개와 위기결말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겠죠?     

그렇죠. 결혼을 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양가 부모가 신도시에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 전세를 알아봐 줍니다. 남자 아버지가 전세금의 오분의 삼을 내고 여자 아버지가 오분의 일을 내고 나머지는 남자가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는 식으로요. 이런 모든 고난을 거치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 커플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소설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일들은 사실 소설로 보여줄 필요가 없겠죠. 우리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니까요.     

ann 낭만적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요즘은 많이 사라졌잖아요. 2003년에 나온 소설인데도 요즘 세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네요.     

그렇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정말 서늘한데요.

“신혼집은 둘이 살기에 알맞았다.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가끔 윤이 나는 흑갈색 바퀴벌레 떼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했으나 해충 약을 뿌리면 곧, 사라졌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진보의 아파트입니다.


M2 진보 아파트

https://youtu.be/x6KuLXxuovo


ann 결혼에 대한 책 살펴보고 있는데요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요?     

소설을 하나 소개해드렸으니까요. 이번에는 좀 진지한 책으로 골랐습니다.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이 쓴 <결혼과 도덕>이라는 책입니다.     


ann 버트런드 러셀은 정말 유명한 철학자면서 수학자죠어떤 인물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러셀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죠. 철학, 수학, 과학, 교육, 정치, 예술, 종교를 아우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고요. 반전 운동이나 여성 해방 운동에서도 굵직한 활동을 했고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요.     


ann 그런 세계적인 지성이 쓴 결혼에 대한 책을 썼군요     

이 책이 나온 시점을 봐야 되는데요. 1929년에 출간된 책이거든요. 이때가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딱 중간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러셀은 1차세계대전의 참상을 눈 앞에서 목격했으니까요. 또다시 전쟁의 위협이 스멀스멀 커지는 걸 보면서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고민했던 거죠. 그리고 그 나름의 해답이 바로 이 <결혼과 도덕>이라는 책이었던 겁니다.     

ann 결혼과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위협을 막으려고 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결혼과 도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이 이야기하는 건 사랑이거든요. 우리는 사랑을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러셀은 사랑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기둥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게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갖추는 게 결혼인 거죠. 한 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난 이후에 무너져 내린 유럽 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첫 단추로 사랑을 복원해야 한다고 러셀은 생각한 거죠.     


ann 무너진 사회를 복원하기 위해서 사랑부터 복원해야 한다인상적이네요.     

사랑은 우리 사회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도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 같은 거죠. 요즘에는 사람들의 개인주의가 심하잖아요. 다들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인 거죠. 그러니까 사랑은 20세기 초나 21세기 초나 어지로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벽이라는 겁니다.  


M3 SAM SMITH - PRAY

https://youtu.be/hhREiAarjVY


ann 샘 스미스의 프레이 들었습니다결혼에 대한 두 권의 책 중 버트런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 살펴보고 있는데요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이 책은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겁고요. 그렇다고 사회과학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또 가벼운 그런 느낌인데요. 사랑과 결혼에 러셀의 평소 생각을 인류 역사를 더듬어보면서 살펴보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문명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요. 어머니의 시대, 아버지의 시대를 거쳐서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았는지를 보여주고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다시 사랑과 결혼 제도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해주고요.     


ann 말 그대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인류 역사의 개괄서 같은 느낌이군요.     

그렇죠. 개괄서라는 느낌이 딱 맞는데요. 사실 사랑과 결혼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건 옛날과 지금이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컨대 책에 보면 낭만적인 사랑을 기초로 한 결혼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서 러셀이 적고 있거든요. 러셀은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해요. 그런데 동시에 낭만적인 사랑만 가지고는 결혼을 지속하기 힘들다고도 지적을 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는 건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친밀하고 현실적인 사랑이라는 거죠. 낭만적인 사랑은 상대방을 신비한 안개에 묻혀서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ann 사실 결혼이라는 건 확실히 현실의 문제죠.     

가장 큰 문제는 아이죠.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에는 남편과 아내에게는 전혀 다른 의무가 부과되는 거니까요. 러셀은 사랑이 자유롭게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하거든요. 1920년대에는 파격적일 수도 있는데 부부간의 자유로운 이혼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요. 당시로서는 도발적인 주장인데 이것 때문에 대학 교수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러셀이 아이를 가진 부부의 이혼에 대해서는 좀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거든요. 자녀가 생긴 이후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더 이상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ann 역시 결혼도 사랑도 복잡할 수밖에 없군요.     

어렵죠. 확실히 어려운데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는 거죠. 러셀이 남긴 말을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인용할게요.

“사랑은 인생이 제공하는 가장 강렬한 기쁨의 원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ann 마지막 곡도 소개해주세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순간입니다.     


M4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순간

https://youtu.be/lnF0HL47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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