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Jan 21. 2018

보리와 킹, 두 마리 개의 이야기

개가 주인공인 두 권의 소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월 14일 열 번째 방송은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두 편입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올해가 무술년 개띠 해잖아요. 그것도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 개의 해라고 하더라고요. 개의 해가 시작된 걸 맞아서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두 권 준비해봤습니다.     


ann 개에 대한 책도 아니고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군요그럼 개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개는 인류의 오랜 친구라고 하잖아요.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죠. 호모 사피엔스가 그전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밀어내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건 늑대를 가축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개를 기르면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다는 거죠.     


ann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개가 인류의 친구라는 건 분명하죠예전에 전북 임실에 여행을 갔을 때 보니까 의견비도 있더라고요무려 고려시대에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기리는 비라고요.     

개가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이 지내는지는 문학에도 잘 나와 있죠. 시인 백석이 쓴 ‘개’라는 시가 있거든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접시 귀에 소 기름이나 소뿔 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 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웁다”

100년 전 산골 마을의 겨울밤은 얼마나 어둡고 추웠겠어요. 어린 마음에는 또 정말 무서웠을 거고요. 그럴 때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거죠. 100년 전 버전의 ASMR 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ann 오늘 소개해줄 소설에도 개가 그런 존재로 등장하는 건가요?     

처음 소개해드릴 책이 김훈 작가의 <개>라는 소설입니다. 2005년에 나온 소설인데요. 시골 마을에 사는 진돗개 ‘보리’의 시각에서 세상사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소설이죠.     


ann 김훈 작가라고 하면 뭔가 거대하고 비장한 이야기부터 떠오르잖아요남한산성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그런 김훈 작가가 평범한 진돗개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까 특이하네요.     

사실 김훈 작가가 정말 관심을 가지는 건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데요. 개는 인간보다 청각이나 후각이 수백 배는 발달해 있잖아요. 세상사의 고난이나 삶의 질감을 그만큼 더 잘 느낄 수 있는 거죠. 다만 개는 사람의 말을 모르니까 그걸 전할 수 없는 것뿐이고요. 그래서 김훈 작가는 자신이 개를 대신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겠다며 소설을 쓴 겁니다.     


ann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노래 한 곡 듣고 더 알아볼게요.     

이승환의 프란다스의 개입니다.


M1 이승환 – 프란다스의 개

https://youtu.be/R_Ex8YS7AGQ


ann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먼저 김훈 작가의 <이야기해볼게요어떤 이야기인가요?     

보리는 꽤 영리한 진돗개인데요. 산골마을에서 태어나서 노부부의 곁을 지키며 살다가 마을에 댐이 들어서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돼요. 노부부는 도시의 첫째 아들 집으로 가고, 보리는 어촌마을에 사는 둘째 아들 집으로 가게 되고요. 산골마을에서 하루아침에 어촌마을로 왔으니까 보리에게도 큰 변화죠. 그러면서 보리가 겪게 되는 일들, 거기에서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보리의 모습. 이런 것들이 이 소설의 중요한 줄거리입니다.     


ann 어촌마을로 가면서 뭔가 큰 변화가 생기나요?     

둘째 아들이 작은 고깃배를 하거든요. 보리는 금세 적응해서 새 주인을 도와요.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미리 선착장에서 기다리다 주인이 던져주는 밧줄을 물어서 쇠말뚝에 걸기도 하고요. 주인아주머니가 생선을 손질할 때 갈매기가 달려들면 대신 쫓아내기도 하고요. 정말 똑똑한 거죠. 또 주인집의 딸이 초등학교를 갈 때면 보리가 앞장서서 풀섶의 뱀을 미리 쫓아내기도 합니다.      


ann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평화로운 이야기인데요.     

그렇죠. 그런데 어느날 주인이 타고 나갔던 고깃배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풍랑에 휩쓸려서 사고가 난 거죠. 장례식을 치르고 하는데 보리는 주인이 죽었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처음에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것도 이해를 못해서 주인이 묻혀 있는 무덤을 파헤칩니다. 그러다가 원래 주인이죠. 할머니가 그런 보리를 발견하고 마구 때립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둘이 함께 무덤가에서 서로를 보듬어주고요. 주인을 잃은 보리와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슬픔을 견뎌내는 거죠. 개가 사람들의 친구라는 건 이런 순간들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겠죠.     


ann 개는 정말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죠슬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친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진짜 개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보리는 예민한 후각 덕분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먼저 알아차리고 다가가죠. 도시의 첫째 아들 집에서 살던 할머니가 둘째 아들 집에 오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때 보리는 냄새로 할머니가 편안한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어촌마을에 온 이유를 알아차려요. 할머니 치마에서 매캐한 석유냄새, 본드냄새 같은 게 났다는 거죠. 그 냄새를 맡고서 보리는 “할머니가 작은 아들 집에 온 까닭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하며 할머니를 반기죠.     


ann 주인이 죽고 난 이후에 보리는 어떻게 되나요?     

김훈 작가의 인터뷰 중에 재밌는 부분이 있는데요. 개와 사람이 다른 게 뭐냐고 물으니까 김훈 작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지만, 개는 혼자서 산다. 개는 자기 삶을 산다. 자기 발바닥으로 뛰면서.”

보리도 주인을 잃고 슬픔에 빠지지만 자기의 삶을 살아갑니다. 옆 동네에 사는 개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다른 개와 영역다툼을 하면서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사람들은 미처 모르는 자기만의 인생이 있는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입니다.


M2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https://youtu.be/Z-BESwjUF_4


ann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살펴보고 있습니다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존 버거가 쓴 <킹>이라는 소설입니다.      


ann 존 버거도 책밤지기가 좋아하는 작가죠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영국의 문화비평가이자 철학자고요. 소설가, 작가, 화가로도 일가를 이뤘고요. BBC에 방송된 미술비평 시리즈인 ‘보는 방법’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유명해졌죠. 딱 1년 전인 작년 1월 초에 돌아가셨을 때 저희 방송에서도 존 버거의 삶과 책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1년 만에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됐네요.     


ann 오늘 이야기할 <>은 그때는 언급이 안 됐던 책인 거 같아요.     

맞습니다. 이 소설은 앞에 소개해드린 김훈 작가의 <개>처럼 킹이라는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고요. 킹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부제가 ‘거리의 이야기’거든요.     


ann 거리의 이야기라면 배경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네요.

말 그대로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에 모여 사는 열 명 남짓한 노숙인들과 함께 사는 개의 이야기죠. 고속도로 옆에 예전에 쓰레기 하치장으로 쓰던 공터가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생 발레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부르는 지역이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죠.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힌 곳,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잊힌 사람들뿐이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존재가 바로 킹이라는 개 한 마리고요.     

ann 존 버거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잖아요예전에 소개했던 책들도 다들 그랬고요이 책도 그런 거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노숙인들이 모여 살던 곳에 갑자기 철거반이 들이닥치는 걸로 소설이 끝나거든요.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하잖아요. 검은색 물감을 위에서 뚝 떨어뜨리면 금세 번져가면서 다른 색깔들을 다 잡아먹죠. 철거반이 들이닥치니까 노숙인들이 얼기설기 어렵게 만들었던 보금자리가 한순간에 종이처럼 뜯겨 나가거든요. 노숙인들이 쫓겨난 자리는 곧 재개발에 들어가겠죠. 번듯한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서고. 그렇게 되면 노숙인들은 다시 더 멀리 밀려나게 될 테고. 이 소설은 개의 시각에서 바라보니까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이렇다 할 가치 판단을 담지는 않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는 거죠.     


ann 킹이라는 개에 대해서 더 설명해주세요.     

사실 킹이라는 개도 거리의 노숙인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예요. 누가 주인이었는지 알 수 없고 자기 이름도 모르죠. 노숙인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킹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게 된 것뿐이고요. 이따금 나오는 묘사를 보면 한쪽 귀가 뜯겨 나갔고, 마르고 볼품없이 생겼다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도 있고요. 이런 묘사를 보면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 예상이 가죠. 경찰견이 으르렁거릴 때도 기가 죽지 않고, 골목길에서 만난 꼬마아이와 바로 합을 맞춰서 공놀이를 하는 걸 보면 한때 사랑받고 존중받았던 개라는 것도 알 수 있고요. 지금의 모습은 볼품없을지 몰라도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는 킹도 안락한 집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개였겠죠.     


M3 루시드 폴 – 검은 개

https://youtu.be/j1cJGksThiY


ann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두 권의 소설존 버거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노숙인들과 함께 사는 킹철거반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노숙인 이야기라고 하면 뭔가 비참하고 슬프고 그런 것부터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물론 존 버거도 노숙인들의 현재,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지만 이따금 과거로 돌아갑니다. 킹이 한 노숙인 부부와 함께 살고 있거든요. 이제는 노인이 되고 노숙인이 되었지만, 그들도 젊었을 때는 사업을 하고 자기 집이 있고 행복하고 안락한 미래를 꿈꿨던 사람들이죠. 킹은 옆에서 그들의 아름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줍니다. 킹이 아니면 누구도 관심을 가지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을 이야기죠.      


ann 누구에게나 아름다웠던 시절은 있었을 테니까요     

가난이 빼앗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존 버거가 우리에게 하려던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이를 먹은 노숙인들. 어떻게 보면 더 이상 재기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사람들이죠. 세상에서 완전히 잊힌 존재. 가난이 주는 혼란 속에 많은 걸 잊고 잃어버린 사람들인데, 그들도 마지막까지 간직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거죠.     


ann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킹과 함께 생활하는 노숙인 남자 중에 비코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예전에 작은 공장을 운영했을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공장을 잃고 결국 거리로 내몰렸죠. 평생 동안 수천 권의 책을 읽었고 인류 역사와 철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도서관 안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비코가 킹을 앉혀 놓고 라틴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후마니타스’라는 말의 뜻을 설명해줍니다.

후마니타스는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말인데요. 후마레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요.     


ann 후마레는 어떤 뜻인가요?     

묻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일에서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본성이 출발했다는 거죠. 인간성이라는 건 죽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비코는 노숙인으로 삶의 벼랑 끝까지 내몰렸지만, 후마니타스라는 말을 잊지 않아요.      


ann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죠단지 어느 순간에 발을 잘못 디뎠고 조금 더 크게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거니까요.     

사실 비코라는 이름 자체가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이기도 한데요. 이탈리아의 유명한 철학자 중에 잠바티스타 비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설에도 등장하는데요. 이 철학자가 한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비코는 이성의 야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우리는 야만이라는 단어와 이성이라는 단어가 정반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비코는 사람들이 이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심각한 야만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만 고려하는 비열한 이성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문명 사회는 무너지고 진짜 끔찍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경고한 거죠.      


ann 노숙인들의 초라한 보금자리까지도 빼앗아가며 도시를 넓히고 재개발을 하려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책은 유럽이 배경이지만요. 한국이라도 해서 예외일 수는 없겠죠. 오히려 개발과 확장에 대한 욕구는 한국이 유럽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철거반을 피해서 킹은 달아납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까 함께였던 노숙인들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자기들의 보금자리였던 그곳에서 철거반과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던 거죠. 킹의 마지막 말이 씁쓸함을 남깁니다.

“안길 품 안이 없다.”     


M4 이랑 – 너의 낮과 나의 밤

https://youtu.be/wfQbqvJJkdY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이라는 홈 드라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