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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3. 2018

한국의 젊은 작가들

정지돈과 김금희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1월 21일 열한 번째 방송은 한국의 젊은작가를 주제로 했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방송에서 여러 소설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지인을 통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너무 외국 작가가 많다. 한국에도 좋은 작가가 많은데 사대주의에 물들었다. 그런 비판을 받았습니다.

 

ann 확실히 그런 부분들이 좀 있죠? 정확한 비판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딱히 부인할 수는 없는 부분이긴 하더라고요(ㅎㅎ). 그래서 오늘은 한국의 소설가들, 그중에서도 아직 대중에게 엄청 많이 알려진 건 아닌데 앞으로 엄청 많이 알려질 것 같은 작가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ann 아직은 아닌데 앞으로 많이 알려질 것 같은 작가. 신진급인데 실력은 최고인, 그런 느낌인가요?     

맞다. 문학동네에서 매년 젊은작가상이라는 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소설가 중에 정말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골라서 상을 주고 수상작품집을 내는데 작년까지 8회를 맞았습니다. 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굉장히 퀄리티가 좋습니다. 역대 수상작가를 보면 김중혁, 김애란, 황정은, 손보미 같은 작가들이 대상을 받았는데 모두 한국 소설계를 이끄는 젊은 작가들입니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단행본이 나오기 전에 1~2년은 앞서서 접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ann 그럼 오늘은 그 중에 어떤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줄 건가요?     

역대 대상 수상작 두 편을 골랐습니다. 기준은 그냥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 먼저 소개할 작품은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입니다.


ann 정지돈 작가를 모르는 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 겨우 삼십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굉장히 젊은 작가. 2013년에 문학과사회에 ‘눈먼 부엉이’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이제 막 작가 5년차인 셈인데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가 되고 가끔은 논쟁이 붙기도 하는 그런 작가입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정지돈과 그의 소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볼게요.     

이한철의 흘러간다입니다.


M1 이한철 흘러간다

https://youtu.be/bk6hKl3OBaM


ann 한국 소설계의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들. 그 중에서 먼저 정지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어떤 소설인가요?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현대 3대 건축가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에 실려 있는 글인데 건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사실 정지돈의 소설 자체는 르 코르뷔지에의 글이랑 큰 관련은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ann 그럼 어떤 내용인가요?  

조선의 마지막 황족인 이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인데 첫째가 죽으면서 황태손이 됐습니다. 영친왕이 고종의 아들. 순종이 죽고나서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 영친왕의 아들이니까 조선의 마지막 황족인 셈입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그런 이구의 삶의 궤적을 천천히 쫓아갑니다. 실존 인물의 삶을 담담하게 따라가다 보니까 이게 소설인지 전기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는 지점들도 있는데 그런 게 정지돈 소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ann 이구라는 인물이 건축과 관련돼 있는 건가요?

그렇죠. 조선의 마지막 황족이라는 데서 알 수 있겠지만 이구의 삶이 굉장히 파란만장했습니다. 이구는 1953년에 미국 유학을 떠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구의 입국을 막으면서 달리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떠난 겁니다. 그러다 1956년에 MIT 건축과에 입학하고 건축을 전공합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고 나서. 그리고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건축설계를 강의했고, 1970년대에는 건축설계회사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ann 조선의 마지막 황족이 건축가였다니 뭔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뭔가 아이러니하니까 이야기를 끌어가는 충분한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정지돈은 거기에다 자신이 취재한 이야기들, 자기가 하고 싶은 목소리를 중간중간 무심하게 집어넣는데 그런 말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구가 미국에서 처음에는 시를 쓰고 싶어했다고 소설에 나옵니다. 누가 왜냐고 물으니까 이구가 “시에는 국적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답합니다. 조선의 황족으로 태어났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정체성을 이구도 고민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누구도 이구가 시인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고 대신 건축을 택한 겁니다. 이때 이구가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던 말이 “건축은 땅 위에 시를 짓는 일”이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이라고 합니다.


ann 건축은 땅 위에 시를 짓는 일. 그 말을 듣고 시인 대신 건축가가 되기로 했던 거군요.     

그런데 이구가 서울에서 지어야 했던 건물들을 생각해보면 씁쓸해지죠. 1960년대에 서울에서 지어진 건물들 중에 제대로 철학을 가지고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잖아요. 산업화 시대에 그저 빨리 대충 짓는데 집중했잖아요. 이구에게 건축은 땅 위에 시를 짓는 일이었는데, 자기가 지은 시가 얼마나 대충 지은 건지 자기가 제일 잘 알잖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와 좌절에 사로 잡혔다고 소설에는 나옵니다. 실제로 이구가 그런 생각을 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정지돈이 적은 이구의 이야기가 실제 이구의 삶보다 더 이구라는 사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죠.     


ann 오늘 짧게 설명만 들어도 가상의 이야기를 지어나가는 다른 소설가들과 정지돈 작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같이 읽어볼 만한 다른 작품이 있을까요?     

등단 이후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 2016년에 나왔습니다. <내가 싸우듯이>라는 제목. <문학의 기쁨>이라는 문학평론집도 있는데 굉장히 재밌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할게요.     

토이의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 들을게요.


M2 토이 –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

https://youtu.be/wxw2tFXU1zk


ann 한국의 젊은 작가들. 먼저 정지돈 이야기를 했고 이번에는 어떤 작가를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가는 김금희 소설가입니다. 2016년 일곱 번째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같은 소설집을 냈습니다. 체스의 모든 것이라는 단편이 2017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한국 문단을 이끄는 3040 여성 작가의 대표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ann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인 너무 한낮의 연애는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기지개를 켜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한 포즈나 하늘색으로 뒤덮인 색감도 좋았고요.

김금희 작가의 소설이 제게는 딱 그런 느낌입니다. 파스텔 풍의 배경색을 깔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뭔가 정체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뭔가를 숨기고 있는 느낌. 문학평론가인 강지희 씨의 작품 해설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웃기에는 서늘하고 울기에는 좀 따뜻한, 이런 감정을 보여준다”

이 말이 김금희의 소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ann 단편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너무 한낮의 연애>가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거죠?     

맞습니다. 같은 해에 젊은작가상을 받은 작가가 장강명, 정용준, 김솔, 최정화 같은 이들.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받을 만큼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ann 어떤 이야기일까요제목만 보면 사랑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말 그대로 사랑 이야기입니다. 작가노트에서 김금희 작가가 “사랑은 최후의 보루고 최후의 온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필용이라는 남자와 양희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둘은 젊었을 때, 그러니까 16년 전에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헤어지고 시간이 흘렀고요. 16년이 흘렀습니다. 필용은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고요. 회사에서 어느 날 권고사직을 받습니다. 권고사직을 받고 필용이 떠올린 얼굴이 지금 함께 하는 아내가 아니라 16년 전에 헤어진 양희인 게 의외죠. 까마득하게 멀어진 과거에서 어떤 사람을 떠올린 겁니다.


ann 그런 순간들이 있죠. 까맣게 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계기로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나 장면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망각이라는 재주가 없었다면 사람은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고. 모든 걸 다 기억하는 건 저주라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다 잊어버리고 사는 건지 가끔 고민해보면 좀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건 조금씩 우리 안에 쌓이는 게 아닐까요. 평소에는 인식도 못하지만 그냥 그렇게 내 안에 쌓여가면서 내가 내리는 결정이나 선택들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김금희 작가가 포착한 이야기들이 그런 느낌을 줍니다.


M3 센티멘탈 시너리 – 지금 여기이곳에서

https://youtu.be/4sa-Ufpl0Z8


ann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이야기하고 있었어요필용과 양희의 연애는 어떻게 되나요? 16년 만에 재회하는 건가요?

직장인을 위한 문화 행사 같은 게 있잖아요.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짧게 볼 수 있도록 단막극 같은 걸 무료로 상영하는 그런 문화 행사요. 필용이 권고사직을 받고 그런 직장인을 위한 점심시간 무료 연극장에 들어가는데 거기에 양희가 있는 거죠. 양희는 무대에서 일인극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양희의 연극이라는 건 무대 위에서 객석의 관객을 그저 보기만 하는 거죠. 그리고 필용은 매일 그 연극을 보러 가게 되고요.     


ann 그저 무대 위와 객석에서 서로 보기만 하는 거군요.     

김금희 작가의 설명을 빌리면 양희는 그저 거울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양희는 연극배우잖아요. 예술가는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를 비추는 역할을 하는 거라는 게 김금희 작가의 설명이죠.      


ann 양희의 존재가 거울이라면, 필용은 거울 속에서 뭘 봤을까요?     

필용은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묘사가 되거든요. 비단 연극장에서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필용은 늘 양희를 보면서 정체모를 부끄러움에 시달리거든요. 그게 뭘까 고민을 해보면, 이건 그냥 사랑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예술가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거기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지난 몇 년 간 참 힘들었잖아요. 당연히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겠죠.     


ann 그렇게 부끄러움 만으로 끝나지는 않겠죠?     

이 부끄러운 사회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게 사랑이죠. 16년 전 필용과 양희가 연애를 할 때의 장면이 생각나는데요. 필용이 심한 말을 하고 나서 사과를 해요.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양희가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해요.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ann 나무는 비웃질 않는다.      

그 나무가 너무나 초라한 나무거든요. 동네 어귀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는 나무. 수피가 벗겨질 대로 벗겨진 그런 초라한 나무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용서의 감정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잘못해도 연민을 가지고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그런 감정. 우리는 완벽하지 않잖아요. 어딘가 부족한 게 있고, 무언가 잘못된 부분들이 있죠. 누구나 어떤 순간에는 못난 사람이고요. 그런 못남을 이해하고 함께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디려는 노력이 사랑이겠죠.

연극이 끝나고도 양희가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요. 무대 위에서 필용을 내려다보며 서 있죠. 그러다 두 팔을 들고 어깨 너비로 넘게 벌리고는 바람을 타듯 팔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해요.     


ann 두 팔을 바람을 타듯 조금씩 흔든다. 어떤 의미일까요?     

나무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느티나무가 흔들리듯이 자신의 두 팔을 흔드는 거죠. 사과 같은 거 할 필요 없고,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그냥 나무나 보라던 말을 16년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그렇게 두 팔을 흔들어 주는 거죠.     


ann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랑이란 게 참 어렵죠. 소설 속에서 필용은 끊임없이 양희에게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하거든요. 만날 때마다 사랑하냐고 물어요. 그러니까 양희가 매번 이렇게 답해요. “사랑하죠. 오늘도.”

저는 이 사랑하죠. 오늘도. 라는 말에 우리가 겪는 사랑의 어려움을 해결할 실마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우리가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요. 정말 중요한 건 내일 사랑하거나 내년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늘 사랑하는 거잖아요. 그거면 되는 거죠. 닥치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면서 지금을 망치지 말고 오늘도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요.     


M4 오지은 –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https://youtu.be/JI0MUURkK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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