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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04. 2018

책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낭만과 사랑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2월 4일 열세 번째 방송은 영화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영화에 대한 책을 준비해봤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책은 안 봐도 영화는 아마 다들 1년에 한 두 번은 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국민적인 오락거리죠. 요즘에는 TV에서도 재밌는 영화를 많이 해주니까 아무래도 접근하기도 쉬워졌고요. 


ann 얼마 안 있으면 설 연휸데, 명절이면 집에서 영화보는 낙으로 사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렇죠. 그만큼 영화가 사람들한테 편하고 친숙한 콘텐츠라는 얘기겠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영화 전문가도 아니다 보니까, 영화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막막한 거죠. 오늘 준비한 책들은 그럴 때 도움이 될만한 책들입니다. 이른바 책으로 읽는 영화 시간이라고 할까요.     


ann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움이 될 책들이군요.     

영화에 대한 에세이 두 권인데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윤정욱 작가가 쓴 여행&영화 에세이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입니다.     


ann 여행 에세이 겸 영화 에세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이 책의 컨셉이 조금 특이한데요. 영화 속 유명한 장면의 촬영지를 직접 여행하면서 그 감상을 적은 책이거든요. 영화에 대한 에세이인 동시에 여행에 대한 에세이인 셈이죠.     


ann 제목도 눈길을 끄네요.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     

이 작가가 소설가 김연수의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연수의 소설 중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그 제목을 오마주한 거죠. 김연수의 원래 문장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거든요.      

ann 낭만. 사랑을 찾아 나선 여행자의 에세이군요.     

이 책을 쭉 읽어보고 제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나름의 주제를 뽑아 봤는데요. 그게 바로 ‘사랑 뭘까?’ 였거든요. 영화 촬영지를 여행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이 책에서 작가가 내내 고민하는 건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체거든요. 그걸 여행지에서, 영화 속에서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 어떤 영화의 촬영지가 나올지 이야기해볼게요.     

줄리 델피의 어 왈츠 포 어 나이트입니다.


M1 julie delpy – a waltz for a night

https://youtu.be/VhRkUhY8MlQ


ann 영화 촬영지로 떠나는 여행 에세이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 이야기해볼게요. 첫 곡 듣고 어떤 영화 이야기 나올지 짐작하신 분도 있겠는데요?     

줄리 델피의 목소리가 너무 사랑스러운 노래죠. 이 노래는 줄리 델피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거든요. 영화 ‘비포 선셋’의 말미에서 줄리 델피가 직접 불렀죠.     


ann 비포 선셋 촬영지가 책에 나오는군요.     

이 책에 전부 여섯 편의 영화가 나오는데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이 차례차례 나옵니다. 각각 오스트리안 빈,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들이죠.      


ann 두 영화다 좋아하는 분들 정말 많을 거예요.     

저도 개인적으로 팬을 자청하는 영화들이고요. 비포 선라이즈가 20대에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서 밤새 떠드는 이야기라면, 비포 선셋은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마주친 두 남녀가 이번에는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속삭이는 이야기죠. 비포 선라이즈가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집중한다면, 비포 선셋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둘이 맺는 관계의 지속성에 더 초점을 맞추는 영화인 거죠. 실제로 10년이 지나서 비포 선셋이 나온지라 배우들의 외모나 도시의 일상이나 여러 가지가 현실적으로 변해서 더 실감 나는 영화였고요.     


ann 영화 속 촬영지를 다닌다는 컨셉이 재밌기도 하면서, 막상 가서 뭐하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의 촬영지에 이 책의 작가 분은 뭘 한 건가요?     

여행의 목적이란 건 사람마다 다양하죠. 랜드마크를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그 도시의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걸작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겠죠. 제 생각에 이 책의 작가는 사랑의 발자취라고 할까요, 흔적 같은 걸 찾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골목길, 머물렀던 찻집을 똑같이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흔적을 찾거든요. 비포 선라이즈를 촬영했던 빈의 레코드 가게인 ‘알트 운트 노이’에 들어가서 두 주인공처럼 레코드판을 뒤적거리고, 두 주인공이 키스했던 프라터 놀이공원의 관람차에서 빈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요.     


ann 감명받은 영화 속 촬영지를 둘러보는 건 신나는 일이겠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나온 영화들인데 거기에서 어떤 정취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거든요. 왜 범인은 범죄현장에 반드시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사랑을 속삭였던 빈과 파리의 그 많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이 작가는 사랑이라는 범인이 다시 같은 장소에 나타나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책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만남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배경지식 없이 보이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여행지에서의 우리는 때로 완벽한 타인에게 자신만의 고해성사를 치르기도 한다.”     


ann 여행지에서는 완벽한 타인에게 고해성사를 치르기도 한다. 인상적인 말인데요? 책에 또 어떤 영화, 어떤 여행지가 나오나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잘츠부르크,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원스’와 ‘싱 스트리트’의 더블린이 나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 다 사랑에 대한 영화로 볼 수 있죠. 그래서 제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사랑 뭘까?’라고 말씀드린 거기도 하고요.     


ann 사랑 뭘까? 책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나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책의 마지막 문장이 ‘더블린은 노래를 통해 꿈을 이야기하는 도시였다’인데요. 뭐랄까요. 이 마지막 문장이 제게는 이 영화들에 나오는 사랑 이야기들은 결국 꿈같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거든요. 달콤하고 감동적이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거죠. 대신에 사랑에 대한 조각들, 단서들은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요.      


ann 그중에 하나만 소개해주면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찍은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작가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언급하거든요. 연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오해로 시작하고,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오해로 끝난다고. 사랑이란 건 오해로 가득한 감정이라는 거죠. 냉정과 열정 사이의 스토리에 딱 어울리는 문장이잖아요. 우리가 다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오해를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불가능하죠. 어쩌면 오해라는 건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같기도 하고요. 오해 속에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이게 우리들이 짊어진 숙명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책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다음 책 만나볼게요.     

원스 ost죠. 오랜만에 들었는데 좋더라고요. 폴링 스 로울리입니다.


M2 once ost – falling slowly

https://youtu.be/FkFB8f8bzbY


ann 책으로 읽는 영화.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어떤 건가요?     

j이번에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영화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신형철 평론가는 말씀해주신 대로 문학평론가잖아요. 그런데 영화 비평도 했군요.     

이분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씨네21에 영화 스토리텔링에 대한 칼럼을 연재했거든요. 저도 가끔 읽으면서 정말 글 잘 쓴다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그 칼럼들을 묶어서 낸 책입니다.      


ann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주로 영화의 스토리를 분석한 건가요?     

그렇죠. 그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도 생각하는데요. 칼럼을 쓸 때도 신형철 평론가가 이렇게 추신을 달았습니다.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그러니까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신형철 평론가가 고른 ‘좋은 이야기를 가진 영화’들이기도 한 셈이죠. 영상미나 배우들의 연기나 이런 것들은 뒤로 미루고요.     


ann 어떤 영화들이 나올지 궁금한데요?

책이 크게 4부로 나뉩니다.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인데요. 오늘은 앞에 소개한 책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자는 생각에서 1부인 ‘사랑의 논리’에 나온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ann 영화 속 사랑이 오늘의 부제인 셈이네요. 어떤 영화들이 나오나요?     

‘시라노 연애조작단’ ‘러브픽션’ ‘건축학 개론’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한 편의 칼럼에 묶어서 다루거든요. 모두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남자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신형철 평론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감독들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재밌는 건 사랑의 과정을 일종의 매뉴얼처럼 설명하잖아요.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를 해부하면서 그 속을 들여다보는 거죠. 더 나아가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으로 ‘반성하는 남자들’을 제시해요. 실제로 이 영화 속 남자 주인공들이 모두 연인을 의심했다가 그 때문에 사랑을 잃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거든요. 이런 공통된 이야기를 만드는 한국의 남자 감독들이 알랭 드 보통을 읽고 자란 같은 세대일 거라는 생각이죠.     


ann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일방적일 수 있다는 거죠.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극 후반에는 반성하는 남자 주인공을 용서해주는데요. 이게 반성에 대한 환상이라는 거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판타지. 그런데 정말 자신의 잘못과 마주했다면 그렇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거든요. 신형철 평론가의 지적이 날카롭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만을 해왔기 때문에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분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용서받기 위한 반성, 아니, 이미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해버린, 그런 반성 말이다.”     


M3 regina spektor - hero

https://youtu.be/DOQ3R3MNcv8


ann 책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이야기하고 있어요제목이 인상적인데 무슨 뜻인가요?

책 제목은 장승리 시인의 시 ‘말’의 한 구절을 가져온 거고요.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고요. 정확하게 해석해달라는 거죠. 평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모든 작품에 그에 걸맞은 최고의 해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늘 사랑에 실패하듯이 평론가들도 작품 해석에서 늘 좌절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ann 정확한 사랑이라는 게 말만으로도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느낌이 확실히 있죠.     

그래서 책의 제목에 ‘실험’이라는 말을 붙인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실험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그 정확한 사랑에 도전한 영화도 신형철 평론가가 뽑았습니다.     


ann 그런 용기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죠?     

자비에 돌란 감독의 ‘로렌스 애니웨이’라는 영화입니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 영화에 “정확하게 사랑받기 위해 삶과 타협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헌사”라고 책에 적었어요.     


ann 어떤 영화인가요?     

로렌스 애니웨이의 로렌스와 프레드는 연인 사이인데요.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던 로렌스가 서른다섯 번째 생일에 갑자기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자신의 내적 자아가 여자인데도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억지로 35년을 살았다는 거죠. 더 이상 자신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죠.

남자 로렌스를 사랑하던 프레드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죠. 그래서 프레드는 계속 갈팡질팡 갈등을 합니다. 변화한 로렌스를 사랑하려고 하면 자기 자신에게는 죄를 짓는 게 되니까요. 어느 쪽이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죠. 자기 자신의 삶을 되찾은 로렌스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놓고 고민하는 프레드의 삶을 영화는 찬찬히 모두 보여주거든요. 결국 둘 다 각자의 길을 가는데 제 생각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길을 택했으니 박수칠 수 있는 결말이 아니었나 싶어요.     


ann 성소수자가 겪는 사랑의 고통, 갈등.     

그렇죠. 로렌스를 성소수자라는 카테고리에 묶을 수도 있을 텐데요. 신형철 평론가는 ‘더 정확한’ 해석을 말합니다. 살아 숨 쉬는 이런 캐릭터를 그렇게 전체적인 용어에 묶어버리는 건 개성을 죽이는 일밖에 안 된다는 거죠. 특정한 존재에 짧은 이름을 붙이는 건 그 자체가 폭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렌스를 ‘본래 여자로 태어났으므로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로 부르기를 제안하는 거죠. 이런 특수성 속에서 로렌스와 프레드는 끊임없이 상처받고 공격받거든요. 자비에 돌란 감독 자신이 게이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영화들보다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던 거겠죠.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     


M4 Dido – white flag

https://youtu.be/j-fWDrZSi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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