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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18. 2018

당신들 모두 서른살이 됐을 때

서른에 대한 두 편의 소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2월 11일 열네 번째 방송은 서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두 편의 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서른’을 다룬 소설들을 준비해봤습니다.     


ann 서른여느 해와 다를 게 없는데 이상하게 서른이라고 하면 막막한 그런 느낌이 있어요.     

맞아요. 아직 마흔은 안 됐지만, 스물과 비교해보면 서른은 뭔가 달랐죠. 스물은 그냥 무덤덤했거든요. 열아홉이나 스물이나 뭐가 다를 게 있나.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른이 됐을 땐 정말 막막하다고 해야 될까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ann 뭐가 그렇게 막막했을까요막상 지나고 보니 서른도삼십대도 크게 다를 건 없잖아요.     

어떤 관문인 거죠. 십대와 이십대는 하나의 연속선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런 시절의 연속인 거죠. 그런데 서른이 되는 순간 앞서 걸어온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걸 느끼게 된 거죠. 사회생활에서 느끼는 책임감도 그렇고,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왜 김광석의 불후의 명곡이죠. 서른즈음에 가사만 봐도 그렇잖아요.

“조금씩 잊혀 간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 가사가 무슨 뜻인지 이제는 좀 이해가 되죠.     


ann 서른에 대한 책먼저 어떤 책부터 이야기할까요?     

김애란 소설가의 단편집 <비행운>에 실린 ‘서른’이라는 소설부터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비행운이라는 노래 덕분에 유명세를 얻은 소설이죠?     

비행운 자체가 김애란 소설집 제목이니까요. 노래 가사에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게 김애란의 ‘서른’에 나오는 구절을 살짝 바꾼 겁니다. 소설에는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고 나오거든요. 이것 때문에 표절 논란도 있었는데 노래 제목부터가 표절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오마주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고요. 어쨌거나 덕분에 좋은 소설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으니 저는 두루두루 좋은 일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해요.     


ann 김애란의 서른은 어떤 소설인가요?     

이 소설이 발표된 게 2011년이거든요. 김애란 작가가 1980년생이니까 그때가 딱 서른 초반의 나이죠. 서른즈음을 살던 김애란 작가에게 서른이란 어떤 느낌이었을까 생각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는데요. 뭐랄까요.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구절의 느낌이 있죠. 그 느낌이 고스란히 소설 전반을 관통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막막함과 절망감. 문득 돌아보니 지나버린 스무살의 나날들에 대한 적지 않은 당혹스러움. 그런 감정들이죠.     


ann 뭔가 슬픈 이야기일 것 같은데..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들어보죠.     

문문의 비행운 들으시죠.


M1 문문 비행운

https://youtu.be/FvOBwRWaGZg


ann 서른에 대한 소설들먼저 김애란 작가의 서른’ 이야기하고 있어요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소설은 수인이라는 주인공이 오래전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편지를 받고 그 답장을 쓰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수인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편지에 담담하게 적어나가는 형식인 거죠. 수인에게 편지를 보낸 언니는 10년 전에 수인과 같은 독서실을 다니던 사람인데요. 임용고시에 붙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렇게 조금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생각난 수인에게 편지를 보낸 거죠. 거기에 수인은 아주 길고 긴 답장을 쓰게 되고요.     


ann 둘이 만나지 못한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긴 답장을 적어야 했던 걸까요?     

수인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공부를 그럭저럭 했고, 대학교 불문과에 들어가고요. 10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고요. 그랬을 뿐인데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다고 적어요. 그저 씀씀이가 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든다고 적죠. 특히 이 구절이 저는 마음에 박혔는데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해요.”      


ann 서른이 되니 모든 게 과정이 아닌 결과로 보이는 거군요     

저도 정말 그렇거든요. 이제는 사람 한 명 새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이십대에는 아프면서 성장하는 거라는 생각에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한 번의 실수나 실패로도 무릎이 꺾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냥 가만히 안전지대에만 머물러 있게 되는 거죠. 이게 이십대와 삼십대의 가장 큰 차이점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ann 수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거죠?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오랜만에 만나게 돼요. 그런데 그 전 남친이 수인에게 돈을 벌 수 있다며 데려간 곳이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 다단계 회사인 거죠. 때마침 수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수인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대학까지 나온 배운 사람인데 다단계 같은 거에 안 당한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결국 다단계의 늪에 빠지고 말죠. 수인이 이렇게 말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눈뜨고 보니 제가 다른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이전에도 채무자, 지금도 채무자, 예나 지금이나 빚을 진 사람이라는 건 똑같은데 좀 더 나쁜 채무자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     


ann 지금도 다단계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십대에 대한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잖아요.     

그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요. 그건 내가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어도 한 번 발을 들이는 순간 정말 늪에 빠진 것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소설의 주인공 수인은 자기가 알바를 하던 학원 제자를 불러서 자기 자리를 채우게 하고 도망쳐요. 그리고 나중에 제자의 소식을 듣게 되거든요. 자살을 시도했다가 겨우 목숨만 건지고 식물인간이 돼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요.      


ann 자신은 도망쳤지만 자기를 믿고 따르던 제자는 끝내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거네요.     

그렇죠. 이 소설을 읽고 수인을 욕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죠.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애란 작가가 원하는 것도 그런 식의 반응은 아닐 것 같고요. 수인을 욕하고 말게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수인처럼 굴지 않았을까 되새겨보는 게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어요. 수인도 그렇고 김애란의 소설집에 나오는 서른 언저리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이거든요. 이건 그냥 우리 이야기인 거죠. 우리가 수인과 다른 게 있다면 그저 조금 운이 좋아서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나쁜 친구를 만나지 않았던 것뿐인 거죠.      


ann TV 뉴스나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다단계에 걸린 청년들을 욕하는 건 쉽죠좀 더 똑똑하게 처신했으면 될 거라는 말들은 얼마나 가벼워요청년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중요한데요.     

김애란의 서른은 일종의 자기반성문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요. 이 시대의 청년들이 앓고 있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의 책임과 원인은 결국 기성세대에게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문제들에서 빗겨 날 수 있었던 동시대의 청년으로 느끼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표현하는 거죠.

수인이 학원에서 일할 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얼굴이 창백해지도록 공부하는 10대 학생들을 보면서 이렇게 읊조려요.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10대 학생들이 자랐을 때 우리보다는 나은 모습을 꿈꿀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는 거겠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자우림의 Girl, you’ll be a woman soon입니다.


M2 자우림 - Girl, you’ll be a woman soon

https://youtu.be/UoNnQ8rJnNs


ann 서른에 대한 소설이번에는 어떤 소설을 만나볼까요?     

이번에는 김연수 소설가의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라는 소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저희 코너의 단골 손님이네요김연수 작가의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요?     

이 소설이 저한테는 좀 의미가 있는 게, 소설의 남자주인공 이름이 종현이거든요. 김연수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데 제 이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이게 꽤나 짜릿한 일이거든요. 다른 소설을 읽을 때보다 훨씬 몰입할 수 있는 거죠.     


ann 주인공 이름이 종현종현은 어떤 캐릭터죠?     

솔직히 멋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요.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거든요. 이름만 저랑 같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설정도 저랑 닮은 구석이 있어서 저는 진짜 제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부분이냐면,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죠, 종현이 대학에서 만나요.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여자주인공은 홍보대행사를 다니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요. 종현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영화판에서 일해요. 봉준호나 박찬욱이 되겠다, 이런 꿈이 있었던 거죠.      

ann 그런데 결국 실패한 거군요?

그러다 서른이 되기 전에 종현이 영화를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며 택시 기사가 돼요. 여자주인공과도 이별하게 되고요. 이 소설은 사실 여자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거든요. 이 여자주인공, 종현을 차버린 여자죠. 이 여자주인공은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이에요. 페터 한트케의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 있어요. 어느 여자가 미국 일주를 하다가 어느 소도시에서 문득 깨달은 거죠. 아 오늘이 내 서른번째 생일이었네 하고. 이 여자주인공도 그렇게 서른번째 생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죠. 쿨하고, 뭔가 색다른 생일. 서른번째니까요.     


ann 그런데 역시나 현실은 다른 거겠죠봉준호를 꿈꿨지만 포기한 남자친구처럼?     

그렇죠. 심지어 일본에서 온 얼굴도 생판 본 적이 없는 육촌 친척의 신혼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서른번째 생일을 맞게 돼요. 생전 처음 본 육촌 친척과 그의 와이프와 함께 남산타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서른번째 생일을 보내게 된 거죠. 처음엔 주인공도 억울해하다가 나중에는 이것도 나름 특이한 생일이라며 맥주를 맘껏 마시고요. 


M3 macklemore – good old days

https://youtu.be/1yYV9-KoSUM


ann 서른에 대한 소설김연수 작가의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이야기하고 있어요그래서 종현과 여자주인공은 그렇게 끝나고 마는 건가요?

물론 다시 만나죠. 종현이 그냥 택시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조금 특이한 프로젝트를 하거든요. 택시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택시 안의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방송하는 겁니다. 뉴스에도 이 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여자주인공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서른번째 생일날 밤에 종현의 택시를 불러서 드라이브를 하게 되는 거죠.    

ann 어떤 느낌일까요로맨틱한 그런 분위기는 또 아닐 것 같고요.     

그렇겠죠? 각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거든요. 종현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해요. 택시를 운전하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게 됐던 경험, 그리고 동시에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걸 확인하는 일이 또 자신을 어떻게 위로했는지에 대해서도요. 그러다 어느 날 새벽에 본 불길이 얼마나 무시무시 했는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하죠.     


ann 새벽의 불길이요?     

이 소설이 발표된 건 2009년 여름이었거든요. 김연수 작가는 이 소설을 쓴 게 2009년 1월에 있었던 용산 참사 때문이라고 해요. 그 새벽의 불길을 보고 쓰게 된 거죠. 작가의 말에 김연수 작가가 이렇게 적었거든요.

“나의 바깥에서 불꽃이 타오를 때, 내 안에서도 불꽃이 타올랐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신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마도 전염된 각자의 불꽃들이 외롭게 타오르던 한 시기.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ann 그랬군요종현이 새벽에 발견한 불길은 2009년 용산의 이야기였네요.     

맞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는 소통의 노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사실 각자 존재하는 거잖아요.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가족도 연인도 이해하기 힘든데 완전히 남인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그런 이해의 다리가 서로에게 놓이는 어떤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아픔, 참사가 도리어 그런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ann 제목에 서른이 나오지만 사실 이 소설은 서른이라는 나이와는 큰 상관이 없는 거네요.     

그렇죠. 나이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거겠죠. 스물이든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마주한 걸 함께 기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 정말 진리인 셈이죠.     


M4 이상은 언젠가는

https://youtu.be/2FYTP6Fvf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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