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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18. 2018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근원적인 것

가족에 대한 두 권의 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2월 18일 열다섯 번째 방송은 설을 맞아 가족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설 연휴를 맞아서 가족에 대한 책을 두 권 준비해봤습니다.     


ann 설은 일 년에 두 번 온 가족이 모이는 기간이니까요.     

그렇죠.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소식도 나누고 그런 자리죠. 그런데 최근에는 또 이런 명절이 오히려 부담된다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주변에만 해도 결혼 안 한 친구나 후배들은 고향 가는 걸 꺼리고요. 결혼한 친구들도 제사나 이런저런 문제로 명절 전부터 걱정이 많더라고요.     


ann 그런 뉴스도 있잖아요명절 이후에 이혼율이 오른다는 뉴스.     

실제로 명절 이후인 3월, 10월에 이혼 상담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명절에 기혼 여성이 받는 스트레스가 1000만원의 빚을 졌을 때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시댁행, 친정상륙작전 뭐 이런 식으로 고향 방문의 어려움을 영화 제목에 패러디하는 게시물도 많더라고요.     


ann 씁쓸한 이야기죠명절이 아니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그런 자리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는 게.     

맞습니다. 청취자 분 중에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을 나중에라도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싶은 마음이 있네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해주는 그런 책들로 골라봤습니다.     

ann 먼저 소개할 책은?     

박완서 작가의 <아가 마중>이라는 책입니다. 박완서는 설명이 필요없는 대작가죠. 한국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작가신데요. 이 아가 마중이라는 책은 박완서 작가의 다른 책들에 비해 아시는 분이 많지 않을 수도 있어요. 2011년 4월에 나온 책인데요. 그해 1월에 박완서 작가가 담낭암 투병 중에 별세했거든요. 이 책이 박완서 작가의 유작인 셈이죠.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책 중에 유일한 그림책이기도 해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죠.     


ann 본격적으로 박완서 작가의 <아가 마중이야기해보기 전에 퀴즈를 하나 내주시죠?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장편소설 <나목>으로 등단을 했거든요.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데요. 한국전쟁 때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거죠. 이 나목에 등장하는 화가가 있습니다. 빨래터, 여인과 항아리 같은 서민들의 삶을 독특한 화풍으로 담아내 20세기 한국 미술계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이 화가의 이름을 맞춰주시면 됩니다.     


ann 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양희은과 악동뮤지션이 함께 부른 나무입니다.


M1 양희은&악동뮤지션 나무

https://youtu.be/GLQTRlYyPco


ann 가족을 다룬 책먼저 박완서 작가의 <아가 마중이야기하고 있어요어떤 책인가요제목에서 일단 짐작되는 게 있는데요.     

그렇죠? 제목부터 참 따뜻하잖아요. 말 그대로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그려낸 그림책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사실 어떻게 보면 가족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 하나의 가족을 가장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죠. 그런 기적 앞에서 겸손해지고 사랑으로 가득 차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ann 가족이라고 하면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인가요?     

책에 나오는 가족은 처음 아이를 나을 준비를 하는 부부, 그리고 할머니 한 명입니다. 모정과 부정,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사랑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보여줘요. 제일 먼저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아가마중을 준비하는 엄마는 전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돈을 아끼려고 웬만한 감기에는 약도 먹지 않고 좋은 음식은 할머니에게 양보하던 엄마가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가서 아이가 건강한지를 살피고요. 맛있는 과일, 채소, 생선, 고기도 사양하지 않고 먹죠. 그냥 좋은 걸 많이 먹는 게 다가 아니라 마음가짐도 달라집니다. 넉넉한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표현을 쓰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ann 아빠는 어떤 준비를 하나요?     

사실 제가 남자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 책에서 아빠의 마음을 묘사하는 부분들을 읽을 때 제일 마음이 가더라고요. 아빠가 퇴근하는 길에 동네 놀이터를 보게 되는데요. 손잡이가 빠진 시소와 한쪽 줄이 끊어진 그네가 그대로 있는 걸 보게 되거든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장면인데 아가 마중을 준비하는 아빠한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다 신경 쓰이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그네에 올라타서 푸른 하늘을 향해 힘껏 무릎을 구부렸다 펼 때 그네 줄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식은땀이 난다면서요.      


ann 아기가 태어날 생각을 하니까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다 새롭게 보이는 거네요     

잊고 있던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죠. 아빠는 어릴 적부터 하늘의 별을 세는 걸 좋아했다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는 게 바쁘다보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못 한 거죠.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 하늘의 별을 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런데 거기에는 별이 안 보여요. 도시에서는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걸 아빠는 오랜만에 깨달을 거죠. 그러고 나니까 도시에서 아기를 길러야 한다는 게 슬프고, 안타까워진 거죠. 좋지 않은 공기, 냄새나고 더러운 강물 이런 것들이 그제야 원망스럽고 자기 탓인 것만 같고요.     


ann 그런 세상을 아기들에게 물려준다고 생각하면 정말 슬플 거 같아요.     

책에 이런 표현이 나와요.

“아기는 이 세상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려 하고 있건만,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것 천지입니다. 아빠는 아기에게 당장 필요한 것만이라도 믿음직스럽게 고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만드는 방법이 다른 것처럼 고치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고치는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우리 아기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 아기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아기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ann 아기에 대한 사랑어쩌면 아가 마중을 준비할 때 제일 필요한 거겠죠.     

그렇죠. 모든 가족이 그렇게 새 생명을 맞을 준비를 하는 거죠. 할머니는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해놓고요. 아기에게 말을 가르치고 꿈을 키워줄 이야기들을 할머니는 아주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아기를 기다리는 한 마음으로 가족으로 뭉치게 된 거죠.     


ann 박완서 작가가 이런 책을 썼는 줄 몰랐네요그것도 그림책으로요.     

박완서 작가의 글에 곁들여진 유화풍의 그림도 정말 따뜻하거든요.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 들고요.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은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그런 느낌이 있는데, 이 그림책은 정말 읽는 내내 마음을 훈훈하게 해줍니다. 평생 글을 쓴 노작가가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메시지였다고 생각하면 더 뜻깊죠. 가족들은 모두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을 테니까요. 그때의 마음을 되살려보면 극복하지 못할 갈등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ann 퀴즈 답은요?     

박수근 화백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 근처에서 일하면서 박수근 화백을 만났고,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서 쓴 소설이 <나목>이라고 하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이야기해볼게요.     

라디의 엄마 들을게요.


M2  라디 엄마

https://youtu.be/xRHPRcivWrg


ann 가족을 다룬 책 만나보고 있어요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요?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최인호 작가의 <가족>입니다.      


ann 최인호 작가도 박완서 작가 못지않은 한국 문학계의 큰 별이죠     

그렇죠. 뭐 역시나 제가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대작가죠. 고등학생 때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1970년대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별들의 고향>이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죠. <타인의 방>이나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상도> <해신>...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히트작이 많은 작가입니다.     


ann 그런 대작가가 쓴 <가족>. 최인호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이면 어떤 소설인지 아실 텐데, 책밤지기가 다시 한번 설명해주세요.     

가족은 말 그대로 최인호 작가의 진짜 가족 이야기입니다. 최인호 작가가 생전에 ‘샘터’에 작업실을 두고 일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함께 했는데요. 이 가족은 무려 35년 6개월 동안 샘터에 연재한 소설입니다. 샘터에서 함께 일하던 문우들이 매달 한 편씩 콩트식으로 연재를 해보라고 제안해서 1975년 9월에 처음 연재를 시작했는데 2009년 10월까지 연재를 계속했거든요. 402회에 걸쳐서요.      

ann 35년에 걸쳐서 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렇게 짧은 설명만 들어도 그 세월이 짐작이 안 가네요저나 책밤지기는 아직 세상에 태어난 지 35년도 안 됐잖아요.

정말 그렇죠. 최인호 작가 슬하에 자식이 둘 있거든요. 연재를 시작했을 때 딸 다혜가 네 살, 아들 도단이는 두 살이었다고 해요. 그랬던 두 분도 이제는 중년의 한 복판을 지나고 있을 나이죠. 연재를 하는 동안 최인호 작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누이들도 세상을 떴고, 손녀를 보고.. 이런 걸 보면 가족이란 정해진 게 아니라 시시각각 모습이 달라지는 살아 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ann 그 사이 최인호 작가도 돌아가셨죠     

제가 <가족>을 처음 접한 건 최인호 작가가 돌아가신 뒤인데요. 모두 아홉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서 나와 있습니다. 8권의 책머리에를 보면 최인호 작가가 이렇게 적었어요.

“우리 인생도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미완성의 여로와 같은 것이라면 ‘가족’은 소설로 쓴 내 인생의 자서전일 것이다. 이 낡은 앨범에 나오는 나의 가족들은 여러분 모두의 가족이며, 이 이야기는 단순히 내 가족의 개인사가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가족사일 것이다.”

이 책이 나오고 딱 두 번의 연재를 더하고 최인호 작가가 연재를 중단하셨거든요. 암으로 투병하시면서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거죠. 마지막 연재였던 402회의 제목이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였는데, 다시 읽어봐도 정말 안타깝고 슬프고 그런 글이에요.     


M3 김건모 가족

https://youtu.be/jCXV1XtP1yE


ann 가족을 다룬 책박완서 작가의 <아가 마중>에 이어서 최인호 작가의 <가족이야기하고 있어요가족은 35년에 걸친 연재 소설이잖아요양만해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중에서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나요?

아이와의 이야기, 어머니와의 이야기, 누이들과의 이야기도 많고요. 그래도 제가 제일 좋았던 건 최인호 작가의 곁을 평생 지킨 아내와의 이야기였어요. 아내는 수호천사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최인호 작가가 나이가 든 뒤로는 저녁 여섯 시 무렵이면 웬만하면 집에 일찍 돌아간다고 나와요.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까 최인호 작가가 이렇게 답합니다.

“아내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그런데 늘 이런 식이니까 주변 사람들은 무슨 아내랑 할 말이 그렇게 많냐고 핀잔을 주거든요. 거기에 대한 최인호 작가의 설명이 이래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해야 할 말의 절대량이 있는데 자신의 아내는 1년 내내 집에만 있고, 친한 친구도 많지가 않아서 전화로 수다를 떨 수도 없다고요. 아내가 늘 집에만 있는데 그러면 말을 할 일도 없으니까요. 수도승이 아닌 이상 사람은 말을 해야 하는데 집에 혼자 있어서는 말상대가 없으니, 자신이 일찍 집에 가는 건 아내가 그날 해야 할 말의 절대량의 채워주기 위해서라고요.      


ann 집에 하루종일 혼자 있다보면 정말 그래요하루에 단 한 마디도 말을 안 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그걸 밤늦게 깨닫고 나면 정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슬프죠우울해지고.     

최인호 작가도 그걸 아는 거죠. 자신과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한 아내를 누구보다 더 잘 아니까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인 거고요. 이런 마음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족과 옆에 있는 사람을 대하면 우리 사이에 다툼이나 갈등이 생겨도 결국 사그라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ann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는 건 사실 사소하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피천득 시인의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라는 글을 최인호 작가가 책에 인용했거든요. 그 글을 보면 이렇습니다.

“아내. 이 세상에서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 년 전에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위버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는 사람이란 말이다.”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괜히 ‘아 나도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거예요. 그만큼 가족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찬 책인 셈이죠.     


ann 요즘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책밤지기나 제 나이 또래에도 많고요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마음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모든 가족이 최인호 작가의 가족 같을 수는 없겠죠. 우리가 최인호 작가가 아니듯이요. 그렇지만 이 책에서 최인호 작가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만큼은 모두가 한 번쯤 음미해봤으면 좋겠어요.     


ann 어떤 건가요.     

최인호 작가의 글을 읽어드릴게요.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나누는 사랑은 납세의 의무처럼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만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우리가 가정을 통해 진심으로 배워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연인도, 친구도, 그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의 두 눈을 들여다보고 혹시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게 있는 건 아닌지 이번 주말에는 다시 한번 되돌아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M4 이바디 – 아빠를 닮은 소녀

https://youtu.be/daM8Rzq-H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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