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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1. 2018

토니오와 스트릭랜드의 삶과 예술

예술가의 삶을 그린 소설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2월 25일 열여섯 번째 방송은 예술가의 삶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예술가의 삶을 다룬 소설을 두 편 준비해봤습니다. 이른바 '소설로 보는 예술가의 삶'이라는 부제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ann 예술가라고 하면 뭔가 보통 사람이랑은 다른 느낌이 있죠자유롭기도 하고 창작의 고통 속에 살고 그런 느낌.     

사실 예술가의 정의도 쉽지가 않죠. 단순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른다면 취미 삼아 시나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가능한 일이죠. 그런 사람 모두를 예술가로 본다면 일반적인 느낌의 예술가와는 확실히 다를 테고요.     


ann 책밤지기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어떤 존재인가요?     

세계적인 철학자인 수전 손택이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남긴 말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세계에 눈길을 주는 존재다. 인간이 어떤 사악함을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하고 살펴보며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다. 문학은 우리가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다.”

수전 손택의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예술가의 역할은 우리 인간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망망대해에서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북극성이 항상 방향을 알려줬거든요. 예술이 인간 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그런 북극성 같은 거라고 봅니다.


ann 오늘 소개할 예술가에 대한 책들도 그런 예술관에 기반한 건가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하고 노력하는 그런 종류의 책들입니다.


ann 먼저 소개할 책은요?     

독일 소설가인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입니다. 토마스 만은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 가장 유명한 소설은 ‘마의 산’이 있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생전에 히틀러와 매카시 같은 독재자, 파시스트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던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토니오 크뢰거는 토마스 만이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발표한 단편 소설입니다.

ann 토마스 만이 소설가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가도 소설가겠죠?   

이 소설은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소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영사, 부시장 같은 공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포르투갈계의 피가 섞인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었거든요. 토니오 크뢰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영사고, 어머니는 남쪽 출신으로 피아노와 만돌린을 연주하는 예술가 기질을 타고 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결국 이 소설은 토마스 만 본인이 젊은 시절에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 걸 소설로 이어간 걸로 보면 됩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죠.

아도이의 그레이스입니다.


M1 ADOY - Grace

https://youtu.be/BOo1QuRvfxQ


ann 예술가의 삶을 다룬 소설먼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만나고 있습니다줄거리부터 소개해주세요.

주인공인 토니오 크뢰거가 열네 살부터 스물일곱까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토니오는 어릴 때 문학 소년이었습니다. 열네 살에는 동급생인 한스를 선망하지만, 정작 한스는 시를 쓰는 토니오에게 별 관심이 없고요. 열여섯 살에는 잉에라는 여학생을 사랑하지만 역시나 사랑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토니오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토니오는 고향 마을을 떠나게 됩니다. 남쪽 나라들을 돌면서 글을 써서 작가가 됩니다. 그렇게 이십대 후반이 된 토니오는 13년 만에 고향 마을을 다시 방문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호텔에서 열린 댄스파티를 보다 어릴 때 사랑했던 한스와 잉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침내 토니오는 예술가의 역할과 모습에 대해 자기만의 답을 찾게 된다는 게 전체적인 줄거리입니다.


ann 토니오가 얻은 답은 뭐였나요?     

토니오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연인인 리자베타에게 보내는 편지에 답이 나옵니다. 리자베타는 토니오가 여행 중에 만난 예술가인데요. 토니오가 이렇게 적습니다.

“만약 한 문사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것, 생동하는 것, 일상적인 것에 대한 나의 이러한 시민적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토마스 만이 토니오의 입을 빌려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은 ‘보통의 사람을 무지하다고 경멸하는 오만하고 냉철한 예술가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인 거죠. 


ann 사실 그런 예술가들도 꽤 있죠자기만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대중이라고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무시하는 그런 부류의 예술가들.     

그렇죠. 이 소설은 그런 류의 예술가들과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 토니오가 갈등하고 고뇌하는 내용이거든요. 토니오가 어릴 때 사랑하는 마음을 느꼈던 한스와 잉에가 평범한 일상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연인으로 나오는 리자베타는 예술가 쪽을 대표하는 인물인 셈이죠. 토니오는 그 중간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거든요.     


ann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토니오가 아달베르트라는 소설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요. 이 아달베르트라는 소설가는 계절이 변해서 봄이 오는 걸 느끼고는 오로지 문학에 집중하기 위해서 카페에 간다고 말하며 사라져요. 봄이 오면 괜히 쓸데없는 잡상에 빠져서 예술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거죠. 보통의 사람들은 봄이 오면 마음이 들뜨잖아요. 생명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으니까요. 19세기 유럽의 카페는 지금이랑은 다르게 예술가들의 소굴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평범한 사람들과는 선을 긋고 살겠다는 거죠. 예술을 하기 위해서. 토니오가 리자베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기도 카페에 갔어야 했나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따라가지 않은 건 내 ‘예술가 기질을 부끄러워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요.     


ann 예술가 기질을 부끄러워한다. 어떤 의미일까요?     

예술만을 위한 예술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을 해봐요. 예술을 위해 봄을 피해서 카페로 숨어서 탄생하는 예술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은 자연 그 자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자연이 주는 선물을 기꺼이 감사하게 받아들이고요. 그런데 예술가들은 그런 부분에 대한 거부 반응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토니오는 그런 예술가 기질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은 예술의 진짜 역할과 존재 이유를 평범한 사람들의 시민적인 삶 속에서 찾아낸 거죠.     


ann 예술은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예술만을 위한 예술은 종종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죠.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많은 독일 예술가들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죠.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한 삶 속에 숨어 있는 에너지를 무시하면 오히려 잘못된 길에 접어들 수도 있고요. 토마스 만이 히틀러를 거부하고 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젊은 시절에 이런 예술관을 확립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예서의 공중에입니다.


M2  예서 공중에

https://youtu.be/-jXTeiFDNQk


ann 예술가의 삶을 다룬 소설두 번째는 어떤 소설인가요?     

이번에는 서머싯 몸의 장편소설 <달과 6펜스>입니다.     


ann 달과 6펜스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소설이네요실존 화가인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이죠?     

작가인 서머싯 몸이 폴 고갱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실제로 타히티 섬도 답사를 하고 그렇게 썼다고 하죠. 그런데 폴 고갱의 아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트릭랜드와 아버지가 전혀 다르게 묘사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고요. 폴 고갱 자체도 워낙 유명한 화가니까 이런 논란을 불가피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어쨌거나 소설 자체가 워낙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높아서 폴 고갱과 별개로 달과 6펜스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죠.     


ann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제목을 볼 때마다 무슨 뜻인지 늘 궁금했거든요.     

달은 예술가의 꿈이죠.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뜻하고. 6펜스는 반대로 현실과 세속에 대한 열망 같은 걸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 소설이 나온 게 1차 세계대전 직후였는데 6펜스는 당시 영국에서 사용하던 화폐 중 가장 낮은 단위였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염원과 현실에서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를 비교하면서 예술을 그만큼 높은 자리에 올린 거죠.      

ann 아직 못 본 분들도 많을 테니까요.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해주세요.

주인공인 스트릭랜드는 런던에서 증권 중개인을 하는 부유한 남자입니다.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떠납니다. 낡은 숙소를 전전하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타히티 섬까지 가게 되죠. 거기서 원주민 아내를 만나 살면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요. 결국 나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죽기 직전에 자기의 집 벽에 일생의 역작을 그렸지만, 스트릭랜드가 죽고 난 뒤에 그와 함께 그 그림도 함께 불태워지고요.     


ann 너무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40대 가장이 갑자기 그림을 그리겠다며 회사를 그만두는 이야기책밤지기도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있죠?     

저는 스트릭랜드의 발 끝에도 못 미칩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나이도 서른에 그만뒀고, 낯선 도시로 떠난 것도 아니니까요. 소설을 쓰겠다며 1년 반 정도 잠깐 옆길로 샜다가 돌아온 거라면, 스트릭랜드는 그야말로 자기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겁니다. 마치 귀신에 씐 사람처럼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진 거죠. 앞에서 소개한 <토니오 크뢰거>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면 <달과 6펜스>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셈입니다.     


M3 심규선 – 달과 6펜스

https://youtu.be/C4Zdv4ncWxc


ann 예술가의 삶을 다룬 소설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이야기하고 있습니다스트릭랜드는 왜 갑자기 가족도 회사도 버리고 그림을 그리러 간 걸까요?

스트릭랜드의 부인이 이 소설의 화자에게 부탁합니다. 파리에 가서 스트릭랜드를 만나서 설득해달라 이런 부탁입니다. 그래서 화자가 스트릭랜드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눕니다. 갑자기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고 해봤자 삼류 화가밖에 못 된다, 그럴 바에야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라고 설득을 하니까 스트릭랜드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해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ann 잘 그리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그린다     

스트릭랜드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모든 게 다 무의미한 거죠. 토니오가 존중하고 애정을 표시했던 시민적인 건강한 삶의 모든 면을 스트릭랜드는 부정해요. 도덕이나 상식, 안락함 같은 것들이 스트릭랜드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과한 거죠. 소설에서 스트릭랜드는 거의 악마처럼 묘사되거든요. 스트릭랜드가 어려움을 겪을 때 그를 도와준 친구인 더크 스트로브라는 동료 화가가 있어요.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도와준 스트로브를 무시하고 그의 아내까지 자살로 몰아가거든요. 그러면서도 죄책감은 느끼지 않죠. 오로지 예술만을 추구하는 거죠.     


ann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싶어요아무리 예술가라도 그렇죠.     

이 소설의 화자도 비슷한 반응이죠. 그렇게 악마적이고 집요하게 예술만을 추구하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거든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감탄어린 눈으로 스트릭랜드를 바라보기도 해요. 사십대의 나이에 모든 안락한 삶을 버리고 비참한 생활이 뻔히 보이는 예술의 길에 뛰어드는 게 보통의 용기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거죠.     


ann 책밤지기의 생각은 어떤가요스트릭랜드 같은 예술가를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까요최고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 주변의 모든 걸 희생시키잖아요가족을 버리고 동료를 배신하고 결국에는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는.     

제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 질문을 놓고 여러 사람이 굉장히 치열하게 토론한 기억이 있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도덕적인 기준을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예술가도 사회의 일원인데 예외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저는 결국 우리 모두가 고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송 첫 부분에 수전 손택의 말을 인용했잖아요. 예술가의 역할은 우리 인간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고음을 보내는 일이라고요. 이런 소설도 그런 경고음의 하나로 봐야겠죠.     


ann 좀 더 설명을 해달라.     

사실 달과 6펜스에서 제가 더 인상 깊게 본 건 스트릭랜드가 아니라 그 주변인물들이다. 예컨대 스트릭랜드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떠나자 저주를 퍼부었는데 이후에 남편이 천재 화가로 알려지자 오히려 그 사실을 자랑하고 다닌다. 천재 화가를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고. 결국 서머싯 몸이 하려는 이야기는 폴 고갱이나 스트릭랜드보다 이런 주변인물들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예술을 악용하는 속물적인 인간들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예술가가 아니니까, 스트릭랜드보다 그의 아내의 모습에서 반면교사를 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M4 도마 – is this love

https://youtu.be/BQKZZndbZ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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