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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1. 2018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의지에 대해서

암살 작전을 다룬 소설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대략적인 방송 멘트와 음악을 뺀 편집본을 들을 수 있는 링크를 매주 올릴 예정입니다.


3월 4일 열일곱 번째 방송은 역사 속 암살 작전을 다룬 두 권의 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흥미진진한 주제로 골라봤습니다. 이른바 전격 암살 작전. 암살 과정을 다룬 두 편의 소설을 준비했습니다.     


ann 말만 들어도 후덜덜한데요실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인가요?     

맞습니다. 그냥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면 사실 재미가 덜하겠죠. 이런 종류의 소설이 실화를 기반으로 하면 어떤 점이 좋냐면요.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잖아요. 암살 작전이 성공을 하는지 실패를 하는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결과만 알고 그 과정을 잘 모르니까요.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누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조연은 누구였는지 이런 건 잘 모르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을 읽으면 우리가 잘 몰랐던 사건의 배후나 막전막후를 알 수 있으니까 훨씬 재미가 있는 거죠.     


ann 먼저 소개할 책은 뭔가요?     

로랑 비네라는 프랑스 소설가가 쓴 <HHhH>라는 소설입니다. 대문자 H가 3개, 소문자 h가 1개로 된 제목입니다.     


ann 제목이 굉장히 특이한데요무슨 뜻인가요?     

독일어 약자인데요. 어떤 뜻이냐면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 불린다’라는 뜻입니다.      

ann 히믈러와 하이드리히독일어라고 하니까 뭔가 느낌이 오긴 하는데요.     

그렇죠. 이 소설의 배경이 2차세계대전이거든요. 히믈러와 하이드리히는 모두 히틀러의 핵심 부하들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히믈러는 히틀러를 지키는 나치 친위대의 대장이었고요.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원흉이었죠. 바로 이 히믈러의 오른팔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였습니다. 하이드리히는 나치 친위대의 보안방첩 부대를 이끌면서 히틀러의 정적을 제거한 일등공신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유대인 학살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었던 ‘반제 회의’를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ann 그럼 이 소설은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는 작전을 다룬 건가요?     

하이드리히가 1941년에 보헤미아 및 모라비아 총독에 임명되거든요. 지금의 체코죠. 독일이 체코를 점령한 뒤에도 체코에서는 계속 저항활동이 이어졌거든요. 히틀러가 그걸 진압하려고 하이드리히를 파견한 거죠. 그리고 연합군에서는 히틀러의 핵심 측근인 하이드리히를 암살하기 위해 프라하로 요원들을 파견하고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개빈 제임스의 nervous입니다.


M1 gavin james - nervous

https://youtu.be/WDBpu7LcR7s


ann 역사 속 암살 작전을 다룬 소설들 만나보고 있습니다먼저 로랑 비네의 <HHhH> 이야기하고 있어요히틀러의 측근인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려는 작전성공하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공합니다. 이 작전은 영국군의 특수작전국이 주도한 건데요. 요제프 가브치크, 얀 쿠비시라는 두 명의 요원을 프라하에 비밀리에 보내서 하이드리히 암살을 준비합니다. 1941년 12월에 프라하에 잠입해서 1942년 5월 27일에 마침내 암살에 나서게 됩니다. 하이드리히의 사무실이 프라하 성 안에 있었거든요. 하이드리히의 자택에서 성까지 가는 길에 코너가 있는데 여기서 하이드리히의 차가 속도를 줄이는 틈을 타서 기습한 거죠. 쿠비시가 수류탄을 하이드리히의 차를 향해 던졌고 수류탄이 터지면서 하이드리히가 파편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열흘 정도 뒤에 하이드리히가 결국 죽게 됩니다.      


ann 대단하네요이렇게 결과만 들으면 쉬워 보이는데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죠?     

물론이죠. 독일군도 연합군의 비밀요원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알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거든요. 그런 감시를 뚫고 하이드리히가 평소에 어떤 길로 오가는지 알아야 하고, 무기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하고,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이 소설이 400페이지가 넘거든요. 꽤나 두꺼운 편인데 읽다보면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읽는 재미가 크다는 건데, 어떤 부분이 재밌냐면 이런 작전을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작가가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디테일하게 묘사를 해주거든요. 그냥 결과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작가 스스로 암살을 준비하는 비밀요원이 된 것처럼 감정 하나하나를 묘사해주니까 훨씬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거죠.     


ann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을 보면 그런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역사를 왜곡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그렇죠. 이 소설의 작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실제 역사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죠. 실존 인물들이니까 오디오 자료나 사진 자료, 속기들이 남아 있거든요. 이런 자료를 소설에 고스란히 활용하기도 하고요. 대사를 토씨하나 안 틀리고 실제와 똑같이 인용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역사를 최대한 재현하려고 하는데, 이건 어쨌거나 소설이잖아요. 역사책이 아니니까 작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ann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나요?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는 부분일 텐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손에 땀을 쥐고 읽은 부분은 소설의 막바지였어요. 하이드리히 암살에 성공한 비밀요원들이 다른 요원들과 합류해서 한 교회 지하에 은신하거든요. 독일군이 암살범들을 찾아다니니까 숨어 지내려고 한 거죠. 그런데 비밀요원 한 명이 배신을 해서 독일군이 교회를 포위해요. 독일군 700명이 교회를 둘러싸고 공격을 하는데 비밀요원은 7명밖에 없었거든요. 7명이 700명을 상대로 거의 하루종일 저항을 합니다. 마지막에는 교회 지하실에 몰리게 되는데 독일군이 방어선을 못 뚫으니까 소방차를 불러서 지하실을 물로 가득 채우려고 해요.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해진 걸 알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비밀요원 4명은 자살을 하고요.

굉장히 비장하고 처참한 그런 전투였는데, 이때 남아 있는 요원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작가는 요원들의 평소 말투나 성격을 취재해서 그들이 주고받았음직한 말들을 대사로 넣거든요. 훨씬 생생하게 전투 장면을 읽을 수 있는 거죠.     


ann 역사소설에 추리소설을 섞은 듯한 그런 느낌일 것도 같네요.     

확실히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2009년에 나온 책인데 이듬해에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고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굉장히 큰 인기를 끌기도 했거든요. 한국에서는 이런 류의 책이 아무래도 마니아틱 하다 보니까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는데, 저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봄에 아무래도 졸리고 하잖아요. 어려운 책보다는 이렇게 쉽게 읽히는 책들이 요즘 같은 계절에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선우정아의 city sunset입니다.


M2  선우정아 – city sunset

https://youtu.be/FM4U17HqxU4


ann 역사 속 암살 작전을 다룬 소설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는 말런 제임스라는 작가의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라는 책입니다.     


ann 오늘 소개해주는 소설들은 제목들이 다 특이합니다     

그렇죠. 이 소설은 2015년에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에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화제를 모았잖아요. 그 한 해 전에 맨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니까, 이 소설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거죠.

제목을 설명드리면요. 이 소설은 모두 13명의 화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거든요. 그런데 이 13명의 화자가 일곱 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돼 있습니다. 살인 사건 하나하나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형식인 거죠.     


ann 화자가 13명이나 나오는군요. 형식도 특이하네요.     

분량도 어마어마합니다. 모두 두 권으로 돼 있는데요. 두 권을 합쳐서 분량이 1100페이지나 됩니다. 앞에서 소개해드린 hhhh가 400페이지정도라고 했는데 거의 3배나 되는 거죠. 그런데도 길다는 느낌을 잘 못 느낄 만큼 역시나 재밌는 책입니다.     

ann 오늘 주제가 암살 작전인데이 소설은 도대체 누굴 암살하려는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거죠?

말런 제임스라는 작가가 자메이카 출신이거든요. 자메이카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죠. 바로 밥 말리의 암살 미수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ann 밥 말리를 암살하려는 사건이 있었나요이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밥 말리라는 이름은 다들 많이 들어봐서 알지만, 밥 말리의 일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또 많지 않으니까요.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1976년 12월 3일에 밥 말리의 집에 괴한 7명이 침입해서 밥 말리를 암살하려는 일이 있었습니다. 1976년에 자메이카는 노동당과 인민국가당이라는 두 정당이 정치적으로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거든요. 두 정당을 따르는 갱단 세력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요. 당시 자메이카 수상이 정치적인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고 자메이카의 국민적인 영웅인 밥 말리에게 평화 콘서트를 열어달라고 해요. 밥 말 리가 그걸 받아들이고요. 이런 움직임을 못 마땅하게 생각한 반대파가 콘서트를 이틀 앞두고 밥 말리의 집에 침입한 거죠.     


ann 밥 말리라는 이름만 들었을 때는 레게풍의 편안한 분위기를 떠올렸는데설명을 들으니까 분위기가 살벌해 보이네요.     

맨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이 소설을 선정하고 나서 이렇게 선정 이유를 밝혔거든요.

“범죄의 세계를 넘어 우리가 거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으로 깊숙이 안내하는 이 시대의 고전이다.”

1970년대 자메이카에는 미국에서 밀반입된 총기가 판을 치고 있었거든요. 꼬마 아이들도 총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요. 그야말로 진짜 범죄의 세계였던 셈이죠.     


M3 natalie imbruglia - torn

https://youtu.be/VV1XWJN3nJo


ann 밥 말리의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런데 밥 말리는 자메이카의 국민 영웅이잖아요아무리 갱단이라고 해도 그런 밥 말리를 암살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텐데요.

그래서 갱단이 직접 나서지 않고 빈민가의 소년들을 포섭해요. 그런데 소년들도 밥 말리를 죽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영웅을 넘어서 거의 신적인 존재였으니까요. 재밌는 게 밥 말리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 1100페이지짜리 소설인데, 밥 말리를 이름으로 직접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그냥 ‘가수’라는 식으로만 불리거든요.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갱단이 소년들을 마약에 찌들게 합니다. 정신이 몽롱하게 만들고 암살을 시키려고 한 거죠.      


ann 밥 말리를 죽이려고 소년들을 마약 중독자로 만든 거네요.     

1970년대 자메이카에서는 총만큼이나 마약도 구하기 쉬웠다고 하거든요.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운 게 묘사거든요. 작가 자신이 자메이카 킹스턴 출신이다 보니까 자메이카의 길거리 문화, 빈민가들의 뒷골목 문화 이런 거에 굉장히 박식합니다. 거기에서 오는 묘사의 힘이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소설이라고 하면 좀 고상한 예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은 거리의 말들을 거의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을 했거든요. 애써 꾸미려고 하거나 하지 않는 거죠. 그만큼 날것 그대로의 재미 같은 게 있어요.     


ann 인상 깊은 묘사나 표현 같은 걸 소개해주세요.     

거리의 말들이 진짜 재밌는데요. 워낙 욕이 많이 섞여 있어서 방송에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요. 데무스라는 등장 인물의 말이 인상적인데요. 이 캐릭터는 자메이카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데, 집에 몸을 씻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동네 급수장에 샤워를 하러 가요. 옷을 벗고 몸을 씻으려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보고 강간범이라며 마구 때리는 거죠. 이 일을 겪고 체제에 불만을 느끼고 밥 말리 암살 작전에 가담하는데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냥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겁쟁이들뿐이죠.”

그리고 밥 말리 암살 작전의 배후인 갱단의 부두목 조시 웨일스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요.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내 딸이 자면서 땀을 흘릴 때 그 애 이마에다가 바람을 조금씩 불어주는 것이다.”     


ann 등장인물들의 말이 어렵지 않으면서 뭔가 결연한 그런 게 있네요.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거리의 밑바닥 인생을 살거든요. 그러니까 어려운 말이나 심오한 표현은 거의 없어요. 다들 직선적이죠. 앞만 보고 돌진하는 그런 캐릭터들이니까요. 이런 에너지가 한데 모이면서 엄청나게 폭발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ann 먼저 소개해준 hhhh는 정말 첩보 영화 같은 암살 작전의 실행 과정을 보는 게 매력이라면이 소설은 밑바닥 인생들의 꿈틀대는 에너지를 지켜보는 게 재미겠네요.     

맞습니다. 밥 말리에 혹해서 이 책을 읽으면 실망할 수 있거든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밥 말리는 없는 존재와 마찬가지예요. 이 긴 소설을 이끌어가는 건 밥 말리라는 대가수가 아니라 평범한 밑바닥 인생들이죠. 13명의 화자 가운데 7명이 갱단원이고, 3명은 당시 자메이카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여성들이거든요. 말 그대로 역사가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거죠.     


ann 결국 콘서트는 열리지 못하는 건가요?     

밥 말 리가 총상을 입거든요. 1976년에는 열리지 못하고. 2년이 지나서 1978년에 다시 열리게 됩니다. 갱단의 보스들이 밥 말리를 찾아가서 싸움을 끝내자며 콘서트를 제안하고 이번에는 무사히 열리게 된 거죠. 하지만 자메이카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밥 말리의 음악으로도 정치적인 불안을 해결하지는 못한 거죠. 평화를 만드는 건 그렇게 유명한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일 수도 있고요.     


M4 루시드 폴 – 은하철도의 밤

https://youtu.be/ZnEAI-pou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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