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판사의 에세이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18일 열아홉 번째 방송은 법조인이 쓴 두 권의 에세이를 다뤘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법조인이 쓴 책을 두 권 준비했습니다.
ann 법조인. 판사, 검사, 변호사.. 이런 분들이 쓴 책이요?
j 사실 법조인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흔치 않죠. 직업만으로 사람을 기죽게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게 판사, 검사 앞에서는 잘못한 게 없어도 그냥 왠지 모르게 기가 죽는 게 있잖아요. 의사도 그렇고요. 법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 공포, 이런 것들 때문일텐데, 오늘 소개해드릴 책 두 권은 판사나 검사도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직업인이고 월급쟁이고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걸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책들입니다.
ann 판사도 검사도 사람이다. 당연한 말인데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j 법에 대한 불신 같은 게 커서 아닐까 싶어요. 판검사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든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는 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판사나 검사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잘못된 일처리가 많았고, 권력형 비리도 많았고요. 그런 불신이 쌓이니까 판검사를 대하기 어려우면서도 믿지 않게 된 거죠. 저는 판검사들이 솔직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책들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신을 극복하고 다시 사람들이 법을 믿게 만들려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인 판사나 검사와 소통해야 하니까요. 판사나 검사가 좋은 책을 쓰는 중요한 이유죠.
ann 그럼 먼저 만나볼 책은 뭔가요?
j 우선 검사가 쓴 책부터 한 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온 지 두달 밖에 안 된 신간인데요. 김웅 검사가 쓴 <검사 내전>이라는 책입니다.
ann 검사 내전. 요즘 이 책 재밌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더라고요.
j 제가 저희 코너에서 신간을 잘 소개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읽자마자 ‘와 재밌다!’ ‘꼭 방송에서 소개해야 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혀야 할 지식들, 정보들도 풍성하고요. 삶에 대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그게 꼰대의 관점에서 ‘살아보니 이렇다’가 아니라 ‘검사로 지내면서 누가 어떻게 사기당하는 걸 보니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 이렇게 구체적이니까 더 공감이 가고요.
ann 책의 저자가 검사인거죠? 조금만 더 소개해주세요.
j 인천지검 공안부장을 맡고 있는 김웅 검사가 쓴 책입니다. 2000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8년째 검사를 하고 있는 현직 검사고요. 본인 스스로를 생활형 검사라고 소개하는 분입니다. 우리가 검사를 사실 볼 일이 별로 없잖아요. 기껏해야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는 검사가 다인데, 이분 말로는 그런 드라마 속 검사와 실제 검사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큰 간격이 있다고 말해요. 그만큼 일반인들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검사의 모습과 실제는 다르다는 건데, 이 책은 실제 검사들의 모습과 생각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j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 때 그 노래입니다.
M1 장기하와 얼굴들 – 그 때 그 노래
ann 법조인이 쓴 책. 먼저 김웅 검사의 <검사 내전> 만나보고 있어요. 이 책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나요?
j 책이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요. 1장의 제목이 ‘사기공화국 풍경’입니다. 김웅 검사가 형사부 검사로 일하면서 사기 사건을 많이 담당했다고 해요. 그때 자기가 담당했던 사기 사건에 관련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이 부분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ann 사기... 내가 당하면 그렇게 분할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이 겪은 이야기는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흥미롭죠.
j 그렇죠. 한국은 사기 사건에 대한 처벌이 꽤나 약한 편인 거 같아요. 책에 이런 말도 나와요.
“사기는 남는 장사다.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세금도 안 낸다. 사기를 쳐도 잘 잡히지 않고, 설사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다.”
1년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사기 사건이 24만건이라고 하거든요. 2분에 1건씩 한국 어디선가 사기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사기 사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나는 절대 당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믿고 있는 거죠. 이 책을 읽어보면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은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언제 사기를 당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러면 더 조심하고 경계할 수 있는 거죠.
ann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j 개척교회 목사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이분이 서울 변두리에서 개척 교회를 운영하다 좀 더 큰 교회로 이사를 하려고 한 거예요. 근데 돈이 충분치 않으니까 법원에 가서 경매를 해보려고 한 거죠. 시세보다 10% 정도 싸게 건물을 살 수 있다고 하니까. 근데 법원 경매 가보시면 알겠지만 그건 완전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거예요. 가끔 tv에 보면 어시장에서 경매하는 거 나오잖아요. 우리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이나 손짓으로 순식간에 경매가 이뤄지는 거. 법원 경매도 마찬가지거든요. 목사님이 그냥 실망하고 돌아왔으면 될 텐데, 법원 근처에 있는 경매 컨설팅 사무실을 발견하고 들어가요. 개미귀신의 소굴에 멋도 모르는 개미 한 마리가 들어간 거죠.
ann 버젓이 간판 달고 운영하는 사무실인데도 사기꾼이 있었던 건가요?
j 저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 이런 건 믿으면 안 된다고 봐요. 경매 낙찰을 싸게 받을 수 있는 비법이 있으면 자기들이 그걸 하면 되지 왜 남한테 가르쳐줘요. 목사님이 거기서 안 박사를 만납니다. 안 박사가 처음에는 부동산 경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다가 슬쩍 흘려요. “제가 부동산 경매업자로 보입니까? 저는 사실 정권의 자금을 현금화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요. 이게 얼마나 황당한 말입니까. 근데 안 박사가 경제민주화니 금융실명제니 이런 말들을 장황하게 하면서 목사님을 흔드는 거죠. 1000억원대 빌딩을 4~5억원 정도만 있으면 가질 수 있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간부라는 사람도 만나게 해주고요. 국정원 간부를 만난 자리에서는 안 박사가 그 사람이랑 싸워요. 목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안 박사가 진짜 나를 위하는 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결국 목사님이 교회 자매님들한테 돈을 빌려서 4억원을 건네고요. 그러고는 끝난 거죠.
ann 이렇게 정리해서 들으면 어떻게 사기를 당할 수 있지 싶은데, 막상 당사자는 그렇지가 않았겠죠.
j 책에 이렇게 나와요.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접 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ann 욕심이라는 간접조명이 우리를 사기로 인도하는 거네요.
j 그렇죠. 이 책을 읽으면서 사기를 당하지 않게 해줄 몇 가지 조언을 추려봤는데요. 일단 사기꾼을 어려운 사람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를 꺾는 법이라고, 어렵고 힘든 사람이니까 오히려 사기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고요.
계모임 사기 같은 걸 보면 여럿이 모여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다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김웅 검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집단지성이라는 게 허망한 게 바둑에서 18급 100명이 모인다고 이창호 한 명을 이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여럿이 모일수록 그 집단이 빠진 오류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고요. 오류에 빠진 사람이 같은 오류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확신을 주거든요.
ann 어쩐지 필독해야 할 것 같은 책이네요.
j 4장까지 있는 책인데, 사실 김웅 검사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지막 장에 있어요. 1장부터 3장까지는 검사 시절 겪은 에피소드들이고, 마지막 장은 법의 본질과 사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거든요. 앞부분보다 재미는 없지만, 사실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이야기는 마지막에 있는 거죠. 앞부분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탄력을 잃지 말고 뒤쪽까지 쭉 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문문의 영하입니다.
M2 문문 - 영하
ann 법조인이 쓴 책들. 이번에는 어떤 책 만나볼까요?
j 이번에는 문유석 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입니다.
ann 문유석 판사나 개인주의자 선언은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익숙하실 거 같아요.
j 개인주의자 선언은 2015년 9월에 나온 책인데 아직까지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거든요.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죠. 저자인 문유석 판사도 책 출간 이후 유명해져서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게 됐죠. 여전히 서울동부지법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기도 하고요.
ann 아직 안 본 분들도 많을 테니까요. 개인주의자 선언은 어떤 책인가요?
j 이 책은 앞에서 설명해드린 <검사 내전>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문유석 판사가 책머리에 ‘낡은 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대로 문유석 판사 스스로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 소회를 쭉 풀어놓은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ann 법이나 판사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문유석 개인과 한국 사회에 대한 내용이 주로 나오는 거죠?
j 맞습니다. 책의 제목부터가 개인주의자 선언이잖아요. 문유석 판사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개인이 설 자리가 없는 사회거든요. 우리나라는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문화가 굉장히 강하죠. 학연, 지연, 혈연 등 온갖 종류의 사회 관계로 개인을 옭아매고 있고, 거기에서 비리나 집단적인 폭력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요.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그런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도 약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거죠. 집단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문화가 야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지은 거죠.
ann 이 책이 2년이 넘게 베스트셀러인 건 그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아서였겠죠.
j 맞습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행복한 지보다 남한테 어떻게 보일 지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잖아요. 예컨대 책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나이 오십대 중년들이 모임에 나갈 때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가면 메시지 자체가 되는 거죠.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는 메시지. 그런 식으로 외관이 실질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한국 사회인데,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않는 한은 우리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겠죠. 외관이 실질보다 중요한 사회에서는 5000만명 중에 몇 명이나 진짜 행복하겠어요. 돈이 기준이면 이재용 부회장 밑으로는 다 불행해야 하고, 외모가 기준이면 박보검이나 이동욱 밑으로는 다 불행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게 개인주의자 선언이고, 이 메시지에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한 거겠죠.
M3 JOE BROOKS – All of your colours
ann 법조인이 쓴 책. 두 번째로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이야기 중입니다. 문유석 판사 개인적인 에세이라고 해도 법이나 판사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올 거 같은데 어떤 게 있나요?
j 보통 재판으로 갈등을 해결하는데 이때 조정 절차라는 것도 있거든요. 판사의 판결에 맡기지 않고 재판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해서 한 발씩 물러서는 거죠. 조정을 통해서 사건을 해결하면 재판에 들어가는 비용도 줄고 당사자들 간에 원만한 합의도 가능하니까 여러 가지로 좋은 제도죠. 문유석 판사가 이 조정 제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데요. 지방에서 근무할 때입니다.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형사 단독 재판장을 지방에서 맡게 된 거죠. 그때 같은 성씨 사람들이 모여서는 집성촌 사람 열 명 정도가 서로를 고소한 사건이 있었어요. 오래된 토지의 경계를 놓고 다투다가 한 사람이 이웃 땅으로 가는 물길을 막은 거죠. 밭농사를 하는데 물길을 막으니까 싸움이 커지고 막걸리 한 잔 하다가 서로 주먹다짐까지 갔고요.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수십 명을 재판정에 불러서 문유석 판사가 한 시간 넘게 법례며 판례며 구구절절 설명을 했대요. 그러니까 나이 지긋한 국선 변호인이 손을 들고 마을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해서 문유석 판사는 자리를 떴고요. 그다음 날 마을 주민들이 화해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결된 일이냐고 나중에 문유석 판사가 변호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변호인이 설명을 해줘요.
문유석 판사가 먼저 자리를 떠난 뒤에 한동안 조용하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노인 한 분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대요. “서울서 온 젊은 양빈이 저리 애쓰는데, 이거 동네 망신 아니오? 그만합시다” 그러니까 다들 끄덕끄덕하고 악수하고 눈물 흘리고 해결됐다고요.
그러니까 사건을 해결하는데 명재판관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거죠. 문유석 판사가 이렇게 얘기해요.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
꼭 재판장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ann 다들 갈등이 생기면 솔로몬이나 포청천 같은 판관을 찾기 바쁘죠.
j 그런 재판관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일 거고요.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은 법이 내 편일 거라는 건데요. 법은 법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어떤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책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구인데, 우리는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을 발동해서 악인을 엄벌하기를 바라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겁니다. 링 위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죠.
M4 이적 – 걱정말아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