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사랑한 작가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3월 25일 스무 번째 방송은 야구를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 드디어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했습니다. 정말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왔다는 거죠. 겨울 내내 심심하고 지루했는데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거기도 하고요.
ann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시죠?
j 아무리 바빠도 퇴근 후에 집에서 그날 경기 하이라이트라도 꼭 챙겨보고요. 주말에는 별일 없으면 야구장에 가거든요. 특히나 작년은 제가 응원하는 팀이 너무 잘해서 행복한 1년이었죠.
ann 책밤지기는 기아타이거즈의 팬?
j 맞습니다. 고향은 경상도인데요 어릴 때부터 이종범 선수의 플레이에 반해서 타이거즈 팬이 된 후로 지금까지 쭉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도 타이거즈의 우승을 조심스럽게 점쳐보고 있습니다.
ann 야구 이야기에 열을 올리시는 거 보니까 오늘은 야구에 대한 책을 소개해주시려고 하는 거군요.
j 소설가나 작가 중에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특히나 야구를 많이 보는 한국이나 일본, 미국에 많은데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일본 소설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쓴 <야구를 부탁해>입니다.
ann 오쿠다 히데오면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 같은 소설로 유명한 작가죠. 야구팬이었군요.
j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요. 이 책은 야구와 관련된 오쿠다 히데오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쓴 짧은 에세이입니다. 오쿠다 히데오 말고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굉장한 야구팬으로 알려져 있죠. 하루키가 쓴 에세이를 보면 처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게 야구장에서였다고 나옵니다. 하루키가 야쿠르트 스왈로즈라는 팀을 응원하는데요. 1978년 4월 1일에 홈 경기장인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 용병 선수인 데이브 힐턴이 친 2루타의 경쾌한 소리를 듣고는 ‘아,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결심한 이야기가 나와요.
ann 하루키라는 불세출의 소설가를 탄생시킨 게 바로 야구였군요.
j 소설을 쓰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로 담아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야구가 가만히 보면 그 자체가 인생이거든요. 삶의 희로애락이 야구에 다 녹아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그냥 해봤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j 마이 앤트 메리의 골든 글러브입니다.
M1 마이 앤트 메리 – 골든 글러브
ann 야구에 대한 책 살펴보고 있어요. 먼저 일본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야구를 부탁해>. 어떤 내용인가요?
j 도서관에서 이 책을 들춰보고는 그 자리에서 쭉 읽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에피소드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입니다. 저자가 야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일본의 출판사에서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현장 취재를 해서 글을 써달라고 원고를 요청한 거예요. 올림픽은 다양한 종목이 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작가니까 당연히 일본의 모든 야구 경기에 간 겁니다. 그리고 첫 이야기로 택한 게 2008년 8월 16일 예선전에서 붙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였고요.
ann 야구 한일전이 책의 첫 에피소드였네요. 그때 우리나라 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지 않았나요?
j 맞습니다. 베이징의 신화였죠. 반대로 일본 대표팀은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치욕스러운 경험이었고요. 베이징 신화가 우리는 익숙하잖아요. 우리나라 대표팀이 예선전에서부터 일본을 5대 3으로 눌렀고, 준결승에서도 일본을 6대 2로 이겼거든요. 이런 게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인데, 일본 소설가는 이 올림픽을 어떻게 봤을까 하면서 보니까 더 재밌었던 거죠.
ann 일본 입장에선 완전히 실패한 올림픽이었을 테니까요. 오쿠다 히데오는 어떻게 적었나요?
j 베이징 올림픽 이야기를 다룬 1장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제목이 ‘또 다시, 헤엄쳐 돌아가라’입니다. 일본 대표팀한테 중국에서 일본까지 헤엄쳐 돌아와라. 이런 거죠. 4년 전인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일본 대표팀이 올림픽 동메달에 그쳤거든요. 히데오는 그때도 그리스까지 가서 야구 경기를 직접 봤대요. 그때도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동메달에 그치니까 마음 속으로 ‘너희들 헤엄쳐서 돌아와’ 이랬는데, 4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니까 더 화가 치밀었겠죠.
ann 응원하는 대표팀이 나쁜 성적을 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올림픽에서 3위, 4위면 잘한 거 아닌가요?
j 다른 종목이면 그럴 수 있는데, 야구는 워낙 풀이 좁거든요. 야구에 열광하는 나라 자체가 많지가 않아요. 2008년 올림픽을 보면 8개국이 풀리그를 치러서 그중에 4개국을 뽑아서 준결승을 진행하는 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메달을 꼭 따겠다고 나오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정도가 다입니다. 미국이 야구 종주국이라고 하는데 메이저리그를 중요하게 여겨서 1군은 물론이고, 마이너리그에서도 수위권 선수들은 올림픽에 출전을 안 시켜요. 싱글에이 정도 수준의 선수가 주로 나오니까 우리로 치면 후보의 후보들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 입장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않으면 영 실망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거죠.
ann 히데오가 실망한 이유도 그런 부분이군요.
j 맞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히데오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쉽게 느낄 수 있어요. 2장은 뉴욕 만세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일본의 유명 타자인 마쓰이가 뛰던 뉴욕 양키스 경기를 보러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을 찾아간 이야기입니다. 메이저리그, 그중에서도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은 야구의 성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곳이거든요. 그런 양키 스타디움을 방문하니까 히데오가 감격해서 감탄사를 내뱉는 장면도 나오고요. 야구를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감정들이죠.
ann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티브이로만 봐도 정말 시원하고 아름답고 그렇죠.
j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주인 빌 비크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관중이 꽉 찬 야구장이다”라고 말했거든요. 저는 메이저리그 야구장은 못 가봤지만 이 말에는 정말 동의해요. 광주의 챔피언스필드를 가면 해질 때쯤에 하늘이 붉게 물들잖아요. 관중이 가득하고 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할 때 하늘이 형형색색 물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아름다운 장면이 또 없어요. 잠실도 문학도 한밭도 제각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죠.
ann 일본의 야구 문화는 또 한국이랑 다를 것도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없나요?
j 세세하게 들어가면 그런 부분이 많을 텐데요. 사실 그것보다 이 책에서 재밌었던 건 히데오가 일본에서 야구장 가는 길에 택시 기사랑 야구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에요. 야구장으로 향하면서 택시 기사랑 야구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거죠. 저도 광주에서 야구장으로 향하는 택시를 탈 때면 항상 택시 기사분들이랑 야구 이야기를 하거든요. 장효조는 요즘 뭐한다, 김성한은 뭐한다. 타이거즈 레전드의 소식들은 인터넷보다 택시 기사분들이 더 빠삭해서 항상 물어보고는 해요. 히데오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역 야구팀의 발족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역시 태운 운전사’라고 결론을 내리거든요. 이런 면에서 보면 야구라는 게 결국 어디에서나 다 비슷한 게 아닐까.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유대의 끈 같은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굿바이 알루미늄입니다.
M2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 굿바이 알루미늄
ann 프로야구 개막을 맞아 야구에 대한 책 두 권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뭔가요?
j 이번에는 서효인 작가가 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입니다.
ann 이번에는 한국 작가네요. 서효인 작가 소개부터 해주세요.
j 앞서 소개해드린 <야구를 부탁해>는 일본 소설가가 쓴 책이잖아요. 이 책은 시인이 쓴 야구 에세이입니다. 지난해 대산문학상을 받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사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2011년에 쓴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로 먼저 유명해진 작가지만요.
ann 제목이 재밌어요.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야구 때문이라는 거죠?
j 뭘까요. 야구 뭘까요. 저도 제목이 무슨 뜻일까 이러면서 책을 쭉 읽었거든요. 그런데 뭐랄까. 그런 느낌이죠.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고 얘기했잖아요. 우리가 사는 게 결국은 다 야구 때문이다. 야구에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도 있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도 야구에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ann 야구에 우리네 인생사가 다 들어있다. 이런 건가요?
j 저희 같은 80년대생에게 야구는 조금 특별할 수밖에 없어요. KBO 리그가 시작된 게 1982년이거든요. 80년대생에게 KBO는 또래 친구 같은 거예요. 어릴 때 철 좀 들기 시작할 때부터 라디오로, 티브이로, 신문으로 야구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접했고요. 철이 들고 나서는 아빠, 형, 누나, 삼촌 따라서 우리 팀을 응원했죠. 왜 응원해야 되는 건지도 모르면서 일단 응원부터 하는 거예요. 저는 고향이 경상도인데도 타이거즈를 응원했거든요. 어릴 때 친척들 모여서 야구 보면 롯데랑 해태랑 붙어요. 해태가 점수내면 저 혼자 박수치고 좋아했거든요. 그러면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머리 한 대씩 쥐어박고 갔거든요. 그게 너무 어릴 때 일인데도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십대, 이십대를 거치면서 이 야구라는 건 내 인생의 일부분이 돼서 떼려야 뗄 수가 없게 된 거죠. 슬프고 힘들 때 가족이나 친구를 찾듯 야구를 찾는 거죠. 야구를 하지 않는 다섯 달은 친한 친구를 멀리 떠나보낸 것처럼 마음 한편이 계속 허하고요.
ann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라는 제목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겨 있을 줄이야.
j 이 책은 야구를 빌미 삼아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려는 책이거든요. 가끔 그런 의도가 너무 대놓고 드러나서 좀 심심한 부분이 있긴 한데,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더 많고요. 예컨대 파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 좋아요. 보통 다른 스포츠에서 파울은 반칙을 의미하잖아요. 축구나 농구나 다 그렇죠. 그런데 야구에서는 한 번의 기회를 다시 받는다는 뜻이에요. 타자가 친 공이 파울이면 다시 칠 수 있죠.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파울은 ‘당신도 나도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을 줄인 것이라고 적거든요. 청춘들이 정말 힘든 시대잖아요.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하고 있고, 이력서를 아무리 써도 좀처럼 연락 오는 곳은 없고요. 그런 상황에 낙담한 청년들한테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거죠.
아웃된 게 아니잖아. 파울을 친 것뿐이야.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은 끝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음 공을 기다려. 우리의 시간은 아직 마지막이라는 글러브에 들어가지 않았어.
M3 김진표 - 역전만루홈런
ann 야구에 대한 두 권의 책 만나보고 있어요. 서효인 작가의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파울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은데요.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j 벤치클리어링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재밌어요. 벤치클리어링이라는 건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 사이에 싸움이 붙었을 때 양팀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뒤엉키는 걸 말하거든요. 여기서 봐야 할 게 뒤엉키는 거지 실제로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는 많지는 않아요. 상대팀이어도 아는 사이가 많으니까 그라운드 위에서 뒤엉켜서 밥 약속 술 약속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요. 중요한 건 내 팀의 동료가 그라운드 위에서 싸움이 났을 때 혼자 두지 않는다는 거죠. 이걸 가리켜서 작가는 “세상 앞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요.
ann 세상 앞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벤치클리어링이다. 정말 야구를 빌려서 청춘들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맞네요.
j 그쵸. 세상이라는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에 맞서는 타자가 됐을 때, 누가 나를 위로해줄까. 나를 위해 그라운드에 벼락 같이 달려나와 줄 친구는 누굴까. 이런 고민 누구나 한 번쯤 해보잖아요. 벤치클리어링은 그런 고민에 대해 야구가 내놓는 해답인 거죠. 당신은 세상에 혼자가 아니다. 벤치에서 수다 떨고 해바라기씨를 씹고 있는 친구들이 당신이 힘들 때는 벼락 같이 뛰어나와 줄 거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보고 싶어서 우리가 늘 야구 시즌을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싶고요.
ann 그러고 보면 정말 야구랑 인생에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j 우리 모두가 커쇼 같은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가 되기를 꿈꾸잖아요. 하지만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우리 대부분은 야구로 치면 그저 평범한 2군 선수처럼 아니면 후보 선수처럼 언젠가 올 수도 있을 기회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거죠. 이 책은 유명한 스타 선수가 아닌 뒤에서 묵묵하게 뛰고 있는 99%의 나머지 선수들에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고요. 그런 선수들을 닮은 우리 대부분의 인생에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 같기도 하고요.
ann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j 저는 타이거즈의 팬이니까요. 저자인 서효인 시인도 타이거즈의 오랜 팬이거든요. 책에 타이거즈가 해태의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경기 이야기가 나와요. IMF를 거치면서 해태그룹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기아자동차가 타이거즈를 샀거든요. 2001년 7월 29일 해태의 이름을 달고 마지막 경기를 치렀죠. 해태 고별전이었는데, 그때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한 채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를 함께 부른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이별의 순간인 거죠. 그리고 아이러니한 건 그다음 날부터 다시 타이거즈는 기아를 달고 뛸 거라는 사실. 이별 이후에 다시 새로운 만남이 이어진다는 사실. 역시나 야구는 인생을 닮아 있죠.
M4 데이라이트 – 아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