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세계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8일 스물두 번째 방송은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를 다뤄봤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외국 작가 중에 한국인이 정말 사랑하는 작가들이 몇 명 있습니다. <개미>를 쓴 프랑스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렇고, <구해줘>를 쓴 기욤 뮈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도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일본 소설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죠.
ann 또 한 명 누군가요? 힌트를 주세요.
j 여러 별명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스탕달’ ‘닥터 러브’라는 별명도 있고요. 2015년에는 한국의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앵커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JTBC 인기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 영상 출연한 적도 있고요.
ann 누군지 아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j 바로 영국 작가인 알랭 드 보통입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이라는 사랑 3부작으로 유명하죠. 저도 대학생 때 이 사랑 3부작에 푹 빠져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가지게 된 게 바로 알랭 드 보통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ann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랭 드 보통 책 한 권쯤 다들 읽어봤을 것 같은 작가죠. 오늘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소개해주는 건가요?
j 알랭 드 보통의 책인데, 소설이 아닌 에세이에서 골라봤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도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여러 권의 에세이를 썼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두 권을 골라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른바 ‘보통의 세계’라는 부제를 붙여봤습니다.
ann 보통의 세계. 첫 번째로 만나볼 세계는 뭔가요.
j 알랭 드 보통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인상을 상상을 통해서만 그릴 수 있는데, 이때 두 가지 도구의 도움을 받는다. 이 두 가지가 뭐냐면 하나는 건축이고, 다른 하나는 뉴스라는 말입니다.
ann 건축과 뉴스의 도움으로 우리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 무슨 뜻일까요?
j 고대 아테네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나 다른 도시민들에 대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산책할 정도만 걸으면 도시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대략은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현대 사회의 도시에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 공동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몇 날 며칠을 걸어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둘러보는 건 불가능하고, 평생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도 대한민국 국민의 1%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으니까요. 우리는 우리 공동체에 대해 모른 채로 평생 살아야 합니다. 결국 상상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때 도움이 되는 게 건축과 뉴스라는 겁니다. 그만큼 건축과 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고, 알랭 드 보통이 각각 한 권의 에세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권의 에세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까요.
j 스탠딩 에그의 보통의 날입니다.
M1 스탠딩 에그 – 보통의 날
ann 보통의 세계. 알랭 드 보통이 쓴 두 권의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책부터 만나볼까요.
j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행복의 건축>입니다. 보통 특유의 세밀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건축의 역사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철학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책이에요. 사실 건축은 늘 우리 곁에 있잖아요. 지금 방송을 하고 있는 이 스튜디오도 결국은 건축의 결과물이고, 방송을 듣는 청취자 여러분이 잠을 자기 위해 향하는 집도 건축물이죠. 술 한잔 하기 위해 퇴근길에 들르는 단골 대폿집도 건축물이고요. 이렇게 건축이란 건 우리 일상의 한편을 차지하는 익숙한 존재인데도 어쩐지 우리한테는 어렵게만 느껴지죠.
ann 건축은 뭔가 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유럽 여행을 가서 만나는 오래된 성당 같은 예술품이 있고, 잠을 자고 일을 하는 일상의 공간으로서의 건축이 있고요.
j 그런 생각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건축이라는 건 감상의 대상이기 이전에 기능적인 측면을 빼놓을 수 없으니까요. 다리는 사람과 차가 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게 우선이고, 통신탑은 전파를 수신하는 게 우선이죠. 그런데 이런 기능을 충족하는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 마련이죠. 장식이나 형식을 통해서 예술로서의 건축도 가능한 거죠.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건축은 단순한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너무 익숙하게 스며들어 있어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뿐이지 건축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ann 책에서 특별히 예를 든 게 있을까요?
j 우리가 가장 익숙하고 많이 이용하는 건축물인 집을 예로 들어 볼게요. 알랭 드 보통은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집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의미의 집도 필요하다. 우리의 약한 면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받쳐줄 피난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고, 중요하면서도 쉬이 사라지는 측면들이 살아 있도록 유지해줄 방이 필요하다.”
여기서 보통이 말하는 집은 우리가 흔히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말하는 집값, 부동산 가격 같은 것과는 별개의 공간인 거죠. 물론 집값이 올라도 우리는 행복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런 물질적인 행복은 한계가 있잖아요. 언젠가 집값이 떨어지면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행복감이죠. 그보다 보통이 주목하는 집이란 건축이 주는 행복감은 나의 몸과 마음이 세상이라는 험난한 곳에서 떨어져 나와 잠시라도 쉬어갈 수 있는 피난처라는 거죠.
ann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공익광고 문구가 생각나네요.
j 저도 그 광고 문구가 기억나는데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적절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되어야 하죠. 집이 단순히 사고팔 수 있는 건물에서 끝난다면,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를 돌봐줄 마지막 피난처까지 잃게 되는 거잖아요. 너무 슬픈 일이죠.
알랭 드 보통이 이런 말도 했어요. “우리는 글을 쓰듯이 집을 짓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집이란 건 그저 가격 곡선에 따라 사고팔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보통의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집에서는 가족 같은 친근함이 묻어나잖아요. 재개발이나 재건축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렇게 집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가치들을 조금 더 높이 쳐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ann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건축을 전공한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건축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쓴 건가요?
j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재주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전공자가 아니니까, 건축업계의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편하고 읽기 쉽게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책에 보면 르 코르뷔지에라는 유명한 건축가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이 건축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빌라 사부아라는 집이에요. 1929년에 지은 집인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이게 지붕을 평평하게 설계했거든요. 이 집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엄청난 명성을 얻었어요. 그런데 이건 예술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잖아요. 지붕을 평평하게 했더니 비가 내릴 때 고스란히 천장으로 물이 스며든 거예요. 구조적으로는 너무 아름다운데 정작 방수가 안 되는 집이었던 거죠. 이런 이야기가 건축을 전공한 사람의 책에서는 건축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딱딱하게 짚으면서 전개됐을 거예요.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는 건축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굉장히 재미있게 짚어주면서 넘어가요. 소설가의 에세이가 가진 강점이랄까요. 그런 게 확실히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짙은의 투썸입니다.
M2 짙은 - twosome
ann 보통의 세계. 알랭 드 보통이 쓴 에세이 만나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볼 책은 뭔가요?
j앞에서 알랭 드 보통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알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두 가지 있다고 했잖아요. 그중 하나가 건축이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뉴스입니다. 이번에는 알랭 드 보통이 뉴스에 대해 쓴 에세이 <뉴스의 시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뉴스는 책밤지기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네요. 읽으면서 어땠나요.
j 그렇죠. 제가 매일, 매주 뉴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좀 더 방어적인 자세로 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보통이 뉴스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이 큰 맥락에서는 거의 다 맞는 말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면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떠오르니까요. 보통이 이야기하는 해법들이 쉽지는 않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하면서 읽은 책이었습니다.
ann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왜 뉴스에 주목하는 거죠? 예술이나 철학 이런 분야가 아니라 소설가가 뉴스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는 건 꽤 특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j 확실히 그렇죠. 그런데 보통의 설명을 들어보면 작가가 뉴스에 주목하는 이유가 수긍이 갑니다. 보통은 뉴스가 우리 시대의 종교라고 이야기를 해요. 뉴스가 과거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뉴스가 전해지는 시간은 과거 교회의 시간 규범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아요. 아침 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대체됐고, 저녁 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대체됐고요. 우리가 과거 종교에서 계시를 얻기를 바라던 것처럼 이제는 뉴스에서 계시를 얻기를 바라는 것도 똑같죠. 뉴스를 보면서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한 지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바라잖아요.
ann 뉴스가 우리 시대의 종교라는 지적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정말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네요. 그만큼 뉴스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죠.
j 그런데 그 중요성에 비해 우리는 뉴스를 제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게 문제죠. 뉴스가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한 삶의 일부가 돼버리니까 누구도 뉴스를 제대로 읽고 보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거죠. 보통의 비유가 재밌는데요. 다들 학교에서 오셀로의 플롯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면서도 뉴욕타임스 1면을 해석하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고 지적해요. 마찬가지로 마티스가 색채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배우면서 데일리 메일의 포토 섹션이 어떻게 꾸며지는지는 아무도 배우려고 하지 않고요.
뉴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만드는 으뜸가는 창조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작 뉴스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끝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나치고 말 것이라는 게 보통의 지적이죠.
ann 그나마 저희는 뉴스에 가까이 있잖아요. 책밤지기는 뉴스를 만들고, 저도 뉴스를 전하는 자리에 있고. 그런데도 잘 모르는 분야의 뉴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뉴스를 어렵게 느낄 것 같아요.
j 이런 지적은 정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덕분에 사람들이 뉴스를 더 가깝고 일상적으로 대하고 접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자주 접한다고 해서 더 잘 아는 건 아니에요.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보통도 작품을 감상하듯 뉴스를 볼 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거든요. 미술관에 가서 미술작품을 본다고 생각해봐요. 그림을 코 앞에서 보면 뭘 그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림에서 최소한 1미터 정도는 떨어진 채 감상해야 그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거죠. 뉴스도 마찬가지거든요. 스마트폰 포털 앱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뉴스를 눌러본다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잘 알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뉴스를 볼 때도 공부가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보통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 같아요.
M3 강이채 - 성냥
ann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만나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뉴스에 대해 다룬 <뉴스의 시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은 어떤 조언을 하나요?
j 세상 일이 항상 그렇듯이 절대적인 비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죠. 알랭 드 보통이라고 해서 한눈에 뭐가 좋은 뉴스인지, 나쁜 뉴스인지 딱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건 아니거든요. 궁예처럼 관심법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대신 뉴스를 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 법칙을 이야기하는데요. 그중에서 저도 이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ann 기자인 책밤지기도 고개를 끄덕인 조언. 어떤 게 있나요?
j 일단, ‘팩트’를 전한다고 소리치는 뉴스 매체의 목소리에 신경을 끌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사실, 팩트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이 18세기, 19세기도 아니고, 사실이나 팩트는 이제 뉴스가 아니어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거든요. 알랭 드 보통은 사실이나 팩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데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렸다는 건 사실이고 팩트죠. 여기서 중요한 건 그래서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파악하는 건데, 대부분의 뉴스, 그리고 뉴스 독자들은 팩트만 확인하고 멈춘다는 거죠. 단순한 사실에서 멈추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보통의 조언이고요. 독자들이 그렇게 변하면 뉴스 매체들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시작할 거고, 그럼 전반적인 뉴스의 퀄리티가 좋아지겠죠.
ann 또 어떤 게 있나요.
j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라는 소설에 보면 오메라는 약사가 나와요. 이 오메는 굉장히 역겨운 캐릭터인데요. 이 캐릭터가 매일 같이 빼먹지 않고 하는 게 신문을 보는 겁니다. 신문을 꼼꼼하게 읽고 저녁마다 시사 문제를 토론하는 곳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요. 그러고는 자기가 보고 들은 걸 자기 지식인 마냥 자랑하고 다니는 겁니다. 자기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어디서 보고 들은 그럴듯한 말을 자기 것인 양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이런 태도는 단순히 천박한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서 더 큰 문제죠. 신문이나 방송사가 절대 선이 아니잖아요. 각자의 이해관계와 이익이 있는데, 독자들이 뉴스를 그대로 믿고 따르다가는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비판적인 뉴스 읽기가 필요하다는 게 보통의 지적이죠.
ann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믿고 따라서는 안 되죠. 사실 관계에 대한 해석은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일 테고요.
j 알랭 드 보통이 책에서 항상 강조하는 건 사람이거든요. 해외 뉴스를 예로 들면, 우리는 아프리카나 중동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잖아요. 오로지 해외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만으로 그곳을 그릴뿐이죠. 그런데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해서는 안 좋은 뉴스뿐이잖아요. 뉴스만으로는 도저히 아프리카의 10대 소년이 매일 학교를 가기는 하는 건지, 그곳 사람들이 결혼식에 참석할 때 죽을 각오라도 하고 가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거죠. 이런 게 결국에는 뉴스에 사람이 빠져 있어서 그런 거라는 게 보통의 지적입니다. 사람이 사라지고 잔인하고 선정적인 사건사고만 담다 보니 우리는 정작 그곳에 누가 사는지 알지도 못한다는 거죠. 이런 지적들은 뉴스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뼈아픈 부분이 있고, 꼭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nn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들 만나봤는데,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네요.
j 여행에 대한 에세이, 종교에 대한 에세이도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하죠.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도 있는데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매일 같이 출근길에 나서는지를 분석한 책인데, 이 책도 추천드립니다.
M4 언니네 이발관 – 가장 보통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