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4월 15일 스물세 번째 방송은 다채로운 이색 잡지들을 다뤄봤습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오늘은 책이 아니라 잡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잡지 산업이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 많거든요.
ann 여성중앙이 올해 초에 폐간했죠.
j 그렇죠. 여성중앙이 1970년에 창간해서 한창 잘 나갈 때는 10만부까지 찍었던 잡지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잡지를 안 보니까 결국 버틸 수가 없게 된 거죠. 여성중앙뿐만 아니라 레이디경향도 무기한 휴간을 하고 있고요, 문예지 중에도 문을 닫은 곳이 적지 않고요.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잡지 산업이 어려워지고, 폐간하는 일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ann 뭐가 문제였을까요?
j 잡지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할 일이 없을 때, 심심할 때 시간을 때우는 용도였거든요. 스낵컬처라는 말이 있죠.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를 말하는 건데, 이 스낵컬처의 원조가 사실은 잡지였던 거죠. 그런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이 무거운 잡지보다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한 거죠. 잡지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잡지 매출액이 줄어들기 시작한 게 2012년부터 거든요. 딱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시점인 거죠.
ann 확실히 잡지가 어려운 건 알 것 같아요. 그럼 오늘 소개할 잡지들은 뭔가요?
j 이렇게 잡지 산업 전체가 힘든 건 맞는데, 오히려 새로 만들어지는 잡지도 있거든요. 잡지가 힘들다, 죽었다 이러는데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참신한 잡지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잡지가 온갖 정보와 지식을 다 담은 잡학사전 같은 느낌이었다면 요즘 나오는 새로운 잡지들은 한 분야만 깊이 있게 파는 게 특징이고요. 스마트폰 시대지만 여전히 손으로 종이를 넘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주면서 자신들만의 영토를 튼튼하게 지키고 있는 겁니다.
ann 새로운 잡지의 시대, 먼저 소개해줄 잡지는 어떤 건가요?
j 제가 관심 있게 보는 잡지들이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사진 전문 잡지 <보스토크>를 소개할까 합니다.
ann 사진 전문 잡지는 어딘지 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입니다.
j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있던 사진 전문 잡지들은 실제로 전문가들,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위한 잡지들이었죠. 말 그대로 사진이라는 업계에 있는 종사자들을 위한 잡지였던 겁니다. 그런데 보스토크는 사진을 다루면서도 전문가들보다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읽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내세우지만 현대 문화 전반을 다루고 살피기 때문에 사진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은 겁니다.
그리고 예전이랑 달라진 게 사진이 우리의 일상 안에 들어왔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다들 편하게 사진을 찍고 공유하면서 즐기게 됐고요. 사진이 전문가들의 영역에 있다가 일반인의 영역으로 옮겨온 겁니다. 사진 전문 잡지라고 해서 더 이상 어렵게 느낄 이유가 없게 된 겁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j Feist의 my moon my man입니다.
M1 Feist - my moon my man
ann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색 잡지들 만나보고 있습니다. 먼저 사진 전문 잡지 <보스토크>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진 전문 잡지라고 어렵게 느낄 게 없다는 이야기까지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j 매호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사진 작품과 사진에 대한 에세이들을 담는 형태입니다. 예컨대 올해 1월에 나온 7호를 보면 ‘사랑’을 다루거든요. 사진 작가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에세이들이 나오고요.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저희 방송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미국 철학자 수전 손택에 대한 사진이 나와요. 수전의 오랜 친구인 애니 레보비치라는 사진가가 찍은 사진인데요.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수전 손택의 사진들을 찍은 거죠. 그렇게 사진 속의 손택은 웃고 있는데, 결국 손택은 병으로 죽게 되거든요. 애니 레보비치는 손택이 죽고 난 뒤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사진집을 냈는데요. 보스토크에 실린 에세이에서 이 사진 속에서 애니 레보비치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를 묻거든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간직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한테 던지게 하는 계기가 됐고요.
ann 습관 같은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건요. 그 이유를 고민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진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사랑에 관한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일지 궁금한데요.
j 이승준이라는 사진가의 작업이 재밌어요. 젊은 남자와 여자가 나오는 사진들인데요. 뭔가 서로 불편해보이는 표정들을 짓고 있거든요. 이 남녀가 어떤 관계인지 알게 되면 왜 저런 표정들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 사진들을 찍은 프로젝트의 제목이 ‘애프터 러브’거든요. 헤어진 커플을 과거 데이트했던 장소에 불러서 재회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거죠. 정말 얄궂은 프로젝트죠.
ann 진짜 얄궂네요. 왜 굳이 헤어진 커플을 재회시킨 거죠?
j 여기서 예술의 역할을 한 번 상기해볼 수 있죠.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걸 전복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을 제시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 애프터 러브의 사진들이 그래요. 커플이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사랑을 확인하고 기록하기 위해서잖아요. 깨진 사랑을 기록하기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경우는 거의 없죠. 이 사진 자체가 우리의 관습에 어긋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죠. 사진은 사랑을 담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사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사진에서 어떻게든 사랑을 확인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ann 그렇군요. 이해는 가면서도 뭔가 얄궂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네요. 사진 전문 잡지 보스토크 만나봤고요. 또 어떤 이색 잡지가 있을까요?
j 한 가지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잡지들도 있어요. 제일 많이 알려진 잡지로는 매거진 B가 있죠. 매거진B는 JOH라는 브랜딩 회사가 만드는 잡지인데요. 국내 최초의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를 표방합니다. 매호마다 딱 하나의 브랜드를 정해서 그 브랜드만 집중 분석하는 거죠. 첫 호에서는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인 ‘프라이탁’을 다뤘고요. 화제가 됐던 편을 보면 일본 서점인 ‘츠타야’를 다룬 게 있고, ‘서울’이라는 도시를 집중 분석한 편도 굉장히 화제가 됐었어요.
ann 서울을 다룬 잡지. 서울을 어떻게 다루는 거죠? 뭔가 정부나 시에서 발간하는 서울 홍보 잡지 같은 느낌은 아니겠죠?
j 그렇게 뻔하게 접근하면 화제가 될 수가 없겠죠. 매거진B에서는 서울을 여섯 개의 컬처 씬으로 나눠서 접근을 해요. 서울의 패션씬, 라이프스타일&디자인씬, 스테이 컬쳐, 음악, 음식, 커피로 나눠서 서울만의 매력과 장점을 소개하는 방식이죠.
여기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도 담겨 있고요.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서울이지만 사실 서울에 대해서 또 잘 모르잖아요. 매일 같은 길, 가던 곳만 가게 되니까요. 매거진B 서울편을 읽으면 우리가 몰랐던 서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익숙하게만 여기던 서울을 낯설게 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재미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하나의 브랜드,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파니까 가능한 일일 테고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랄라스윗의 서울의 밤입니다.
M2 랄라스윗 – 서울의 밤
ann 독자를 사로잡는 이색 잡지들 이야기하고 있어요.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깊이 있게 파는 잡지들, 매거진B 먼저 소개해주셨고, 또 어떤 잡지가 있을까요?
j 우리가 영화 잡지도 많이 보잖아요. 씨네21이 제일 유명할 테고요. 그런데 영화 잡지를 볼 때 좀 불만 같은 게 있거든요. 관심 없는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가 너무 많은 거예요. 나는 A라는 영화에 대한 기사나 정보만 보고 싶은데, B나 C에 대한 기사가 너무 많은 거죠. 물론 그렇게 접한 영화 이야기가 좋아서 관심이 갈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거나 불만은 불만이죠.
ann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영화 하나로 잡지를 다 채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j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프리즘 오브>라는 영화 잡지가 있거든요. 젊은 청년들이 만드는 독립 잡지인데 한 편에서 단 하나의 영화만 집중 분석하는 영화 잡지예요. 하나의 영화만을 가지고 그 영화에 대한 칼럼과 인터뷰, 앙케이트, 미술작품 등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거죠.
ann 하나의 영화만 다루는 컨셉은 확실히 재밌네요.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소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j 그렇죠. 지금까지 여덟 편이 나왔는데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프리즘오브에서 다룬 편이 있어서 저도 소장하고 있어요. 아가씨, 다크나이트, 불한당 같은 영화들을 다뤘고요. 특히 불한당은 불한당원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잖아요. 불한당원들은 아마도 불한당을 다룬 프리즘오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겠죠.
ann 불한당은 정말 재밌는 영화였죠. 여러 가지 논란 때문에 영화가 묻힌 느낌이라 아쉬울 따름이죠.
j 맞아요. 사실 영화 자체만 보면 굉장히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해부할 만한 부분이 많거든요. 그런데 감독이 논란을 일으켜서 이런 모든 장점들이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묻혀버렸죠. 그런 아쉬움을 프리즘오브를 읽으면서 좀 해소할 수 있었어요. 천 팀장을 통해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한국 영화계의 문법을 분석한 칼럼도 인상적이었고요. 하나의 영화를 집중 분석하니까 실을 수 있는 칼럼이나 분석들이 돋보였죠.
ann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잡지가 더 있을까요?
j 스리체어스라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바이오그래피>라는 잡지가 있는데요. 이 잡지는 한 명의 인물을 집중 해부하는 게 특징입니다. 160페이지 정도 되는 잡지가 오로지 한 명의 인물만을 다루는 거죠. 이어령, 최재천처럼 학자에서부터 김부겸 같은 정치인, 심재명, 이문열 같은 예술가, 김범수 카카오 의장 같은 기업인까지 다루는 인물의 폭도 굉장히 넓죠.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정말 깊이 있게 파고들어서 기자인 저도 잘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을 정도로 재밌는 잡지예요.
M3 블루파프리카 - 나무
ann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색 잡지들 살펴보고 있어요. 사진전문 잡지인 <보스토크>, 한 가지 주제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매거진B> <프리즘오브> <바이오그래피> 이야기해봤는데요. 또 어떤 잡지가 있을까요?
j 정말 다양한 잡지들이 있지만, 역시나 우리 코너는 소설 마시는 시간이니까요. 문학잡지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ann 문학잡지라고 하면 그런 게 생각나죠. 문학동네나 창작과비평.
j 그런 잡지들이 역시나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 잡지죠. 그런데 서점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문학동네나 창작과비평이 정말 읽기 쉽지 않게 생겼거든요. 두껍고 글씨는 작고 빽빽하고요. 사진이나 그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말 그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데 참 보기 쉽지 않게 생겼죠. 저는 젊은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외면하는데 이런 고리타분한 잡지들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요. 최근에는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출판사들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ann 젊은 감각의 새로운 문학잡지들이라면요?
j 그렇죠. 벽돌 같은 잡지가 아니라 디자인부터 시원시원하고요. 편집도 깔끔하고 주제도 젊은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주제들을 고르는 거죠. 창비에서 ‘문학3’을 만들었고, 민음사는 ‘릿터’, 은행나무는 ‘악스트’라는 문학 잡지를 내고 있는데요. 고리타분한 문학잡지에 거부감을 느끼던 젊은 층도 이런 새로운 문학 잡지에는 기꺼이 곁을 내주고 있어요.
ann 어떤 점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요?
j 디자인이나 칼럼의 타깃팅 여러 가지 면이 있을텐데, 가장 중요한 건 주제 선정 같다. 예컨대 릿터를 보면 청년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잘 잡는다. 9호 주제는 ‘결혼 플롯’이었다. 결혼에 대한 단편 소설과 에세이, 리뷰를 다뤘는데 청년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며느라기’라는 웹툰을 표지에 썼다. 아마도 며느라기를 아는 사람들은 표지만 보고도 잡지를 집어들었을 것. 칼럼의 내용도 이런 주제들에 굉장히 충실한데, 결혼 편에 실린 칼럼 중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도시 전설’ 같은 제목의 칼럼도 있다. 아마도 많은 청년들이 서울에서 살면서 내 집 마련하는 건 도시 전설 정도의 난이도를 가진 일일 것. 릿터는 이렇게 청년들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문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긁어주는 것이다.
ann 한국 문학계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j 문학 잡지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있다. 미스테리아라는 잡지는 미스터리 문학만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런 식으로 문학 잡지도 독자들의 관심사나 요구에 맞춰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문학 잡지가 고루하다고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 주말 동안에 서점을 가서 잡지 코너를 가보시는 걸 추천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학 잡지들이 청취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M4 gavin james – city of st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