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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04. 2018

모든 꽃은 한 순간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

야생화와 가드닝에 대한 책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5월 20일 스물여덟 번째 방송은 꽃과 들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주는 책을 주제로 했습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j 5월은 계절의 여왕이잖아요. 어디를 가도 푸르고 꽃향기가 가득하고, 산이든 들이든 야외 활동하기에 정말 좋은 시기죠. 그래서 오늘은 꽃과 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두 권 준비해봤습니다.


ann 책밤지기는 여행도 좋아하잖아요. 5월에 가본 여행지 중에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예요?

j 5월엔 어디를 가도 다 좋죠. 그래도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라산입니다. 한라산이 크게 두 가지 코스가 있거든요. 백록담을 볼 수 있는 코스가 있고, 백록담은 못 가지만 경치가 아름다운 영실코스가 있는데, 5월에는 고민할 것 없이 영실로 가요. 한라산에 피어있는 산철쭉이 정말 장관이거든요. 5월의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최고의 절경이죠.


ann 한라산의 산철쭉! 그냥 철쭉도 예쁜데, 한라산 정상에 피어있는 철쭉은 정말 색다르겠네요. 오늘 소개해주실 책에도 한라산 산철쭉 같은 꽃들이 잔뜩 나오는 건가요?

j 물론입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소로의 야생화 일기>라는 책입니다.


ann 소로는 <월든>으로 잘 알려진 그 소로를 말하는 건가요?

j 맞습니다. <월든>은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의 삶을 기록한 책이잖아요. 물질문명에서 벗어난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사유, 철학 같은 것들을 깊이 있게 다뤄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책이죠.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고요. 그런데 월든을 제외하고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많은 글을 썼거든요. 우리가 잘 모를 뿐이죠. 이 책도 소로의 다양한 작업 중 하나입니다.

ann 그런데 소로는 작가잖아요. 작가가 야생화를 관찰하고 글을 쓰는 게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j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소로가 아마추어 식물학자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반적인 학자들과 달리 소로는 고향 마을을 떠나지 않아요. 고향 마을인 콩코드 주변을 다니면서 자기 눈에 보이는 풀과 꽃, 나무들에 대해서만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 거죠. 식물학 전체로 보면 아마추어겠지만, 고향 마을에서만큼은 소로를 따라올 사람이 없는 거죠.


ann 그야말로 콩코드 최고의 식물학자였던 셈이네요.

j 그렇죠. 그리고 중요한 게 소로는 단순히 야생화를 관찰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서 글을 쓰고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켰거든요. 예컨대 소로의 야생화 일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여기서 40여년 동안 들판의 언어를 배웠고, 이 언어로 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최근에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거든요. 제 생각에 월든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소로의 야생화 일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j 바버렛츠의 봄, 곰입니다.


M1 바버렛츠 – 봄, 곰

https://youtu.be/J2QNi4mnDyk


ann 5월에 읽는 꽃에 대한 책. 먼저 <소로의 야생화 일기>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월든의 작가인 소로의 눈을 어떤 꽃들이 사로잡은 건가요? 

j 이 책은 1850년부터 1860년까지 10년에 걸쳐서 쓴 소로의 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거든요. 10년 동안 쓴 일기에서 야생화에 대한 부분만 따로 발췌해서 ‘야생화 일기’라는 제목으로 따로 책을 엮은 거죠. 소로의 일기를 바탕으로 날짜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장으로 나눠서 야생화에 대한 소로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ann 10년에 걸친 기록이면 분량도 적지 않겠네요.

j 그렇죠. 책만 해도 450페이지에 달하니까 분량이 적지는 않죠.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식물의 종류만 500여 종에 달한다고 하거든요. 수련이나 물망초, 민들레, 접시꽃 같은 친숙한 꽃들도 있지만, 정말 이름부터 생소한 꽃들도 적지가 않아요. 예를 들면 폰테데리아 코르다타, 호우스토니아 카에루레나 같은 야생화는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정체를 짐작도 할 수가 없죠.


ann 이름만 들어서는 진짜 알 수가 없겠네요. 이런 책은 읽는 것보다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j 그래서 미국의 유명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배리 모저가 이 책 작업에 참여를 했거든요. 책에 등장하는 식물 가운데 200여 종의 삽화를 배리 모저가 직접 그려서 책에 넣은 거죠. 저는 소로가 남긴 일기 속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배리 모저의 야생화 삽화를 보는 것도 못지않게 즐겁더라고요.

우리가 매일 걷는 길에도 사실 정말 많은 꽃과 풀, 식물이 피어 있잖아요. 그런데 걸음을 멈추고 그런 꽃과 풀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산책을 할 때면 늘 한 박자 천천히 걷는 습관이 생겼어요. 혹시라도 이름 모를 꽃이나 풀을 보면 멈춰서 관찰하는 재미를 붙인 거죠.


ann 뭔가 꽃이나 풀에 관심이 커지면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들 하잖아요. 책밤지기도 그럴 나이가 된 게 아닐까요?

j 확실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죠. 예전에는 휴가를 가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를 찾아다니고 했는데, 요즘에는 휴가를 계획할 때 제일 먼저 살피는 게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는 곳을 찾거든요. 숙소 창으로 숲이나 바다가 보이는 곳을 찾게 되고요.


ann 책에 나온 소로의 일화 중에 인상 깊었던 게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j 특정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책 중간중간 자연을 관찰하던 소로가 거기에서 인생의 지혜를 이끌어내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 중에 특별히 좋았던 몇몇 문장을 소개해드릴게요.

먼저 1860년 4월 6일의 일기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소로가 이렇게 적어요.

“식물은 꾸준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나아간다. 어떤 꽃은 오늘처럼 따뜻하다면 내일 필 테지만 날씨가 추우면 일주일 이상 멈출 것이다. 봄은 그렇게 앞으로 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꾸준히 나아가면서도 봄의 추는 좌우로 흔들거린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너무 좋았거든요. 어떤 위로의 메시지로 읽히는 거죠. 우리가 매일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잖아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똑똑해지고, 돈도 더 벌어야 하고... 그런데 소로가 관찰한 자연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거죠. 날씨에 맞춰서 이따금 제자리에 멈춰 서기도 하고, 뒤로 물러날 때도 있고요. 그렇게 멈추거나 뒤로 물러나는 것도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거죠. 꼭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위로의 말처럼 들려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ann 또 어떤 말이 있나요? 

j 1852년 9월 13일의 일기에 나오는 말도 인상 깊었는데요.

“모든 꽃은 살아 있는 한 정직하고 빠르게 자기 몫을 다한다. 자연은 단 하루, 한순간도 헛되이 하지 않는다. 식물은 1년 내내 기다리다가 스스로 준비를 갖추고 대지가 준비를 끝낸 순간 지체 없이 꽃을 피운다. 순식간에 일이 벌어진다.”

대자연 속에서 게으름을 부리는 존재, 변명을 찾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거든요. 꽃은 적당한 때가 되면 변명을 하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지체 없이 꽃망울을 터뜨리죠. 가야 할 때가 되면 머뭇거리지 않고 스스로 지는 길을 택하고요.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게도 되고요.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j 벨앤세바스찬의 더 세임 스타입니다.


M2 belle&sebastian – the same star

https://youtu.be/XH0urI7Gf2w


ann 5월을 맞아 꽃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고 있어요. 두 번째로 이야기할 책은 어떤 건가요? 

j 이번에는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책을 준비했습니다.


ann 게릴라 가드닝? 처음 듣는 말 같은데요. 어떤 뜻인가요?

j 게릴라는 작은 전쟁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인데요. 정식 군인이 아닌 비정규군이 소규모 인원으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전투를 하는 걸 의미합니다. 가드닝은 요즘 많은 분들이 관심 있는 분야잖아요. 꽃을 기르거나 나만의 정원을 만드는 활동을 가드닝이라고 하죠.


ann 전쟁을 뜻하는 게릴라라는 말이랑 꽃을 기르는 가드닝이라는 말을 하나로 묶은 거잖아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말을 하나로 묶은 이유가 있을 텐데요. 

j 요즘 가드닝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홈가드닝 같은 말들도 나오고요. 게릴라 가드닝이 다른 가드닝과 가장 다른 건 바로 장소입니다. 가드닝을 하는 장소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납니다. 게릴라 가드닝은 자기 땅이 아닌 다른 사람의 땅, 혹은 공공장소에 꽃을 심고 기르는 행위를 말하거든요.

ann 남의 땅이나 공공장소에 허락 없이 꽃을 심는 건 불법 아닌가요? 

j 그렇죠. 당연히 불법인데요. 이 책은 불법일지라도 게릴라 가드닝이 결국에서 사회 전체나 커뮤니티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우리 주변에서 아무런 하릴없이 방치된 땅들이 적지 않잖아요. 예컨대 재개발을 하려고 도심에 있는 건물을 철거했는데 사업이 지연되면서 큰 공터에 잡초랑 쓰레기만 쌓이는 경우가 있죠. 이런 곳은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서 게토처럼 변하기 마련이죠.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고요.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이런 공간에 꽃을 심으면 범죄율도 줄어들고 마을 사람들이 공원처럼 이용하게 되면서 사회 전체의 효용이 높아진다는 거죠.


ann 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라에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부분을 게릴라 가드닝이 해결해주는 걸로 볼 수도 있겠네요.

j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정부나 시에서 공원을 하나 만드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잖아요. 공원 하나 만들려고 해도 예산을 따야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러다 보면 계절이 바뀌고 꽃을 심을 수 없어서 다음 해로 넘어가기도 일쑤고요. 그런데 게릴라 가드닝은 그런 과정을 확 단축해버리니까 훨씬 효과적인 거죠. 물론 불법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게릴라 가드닝을 한 뒤에 정부가 그 효과를 인정해서 합법적으로 바뀐 사례도 책에 나오고요. 여러 가지로 가드닝의 원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M3  마틴 스미스 – 봄 그리고 너

https://youtu.be/npU-ZlTPNtA


ann 5월에 만나는 꽃과 가드닝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책으로 <게릴라 가드닝> 이야기하고 있어요. 게릴라 가드닝의 성공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어떻게 이뤄지는 건지 궁금하네요. 

j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1973년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던 화가 리즈 크리스티거든요. 리즈는 자신이 살던 동네의 빈 땅에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토마토가 자라는 걸 보고 게릴라 가드닝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쓰레기 속에 섞여 있던 토마토에서 신선한 토마토가 자랐다면, 관리만 제대로 해주면 쓰레기로 뒤덮인 땅을 정원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리즈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 근처의 빈 땅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치우고 거기에 씨앗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ann 그런데 게릴라 가드닝은 불법이라고 했잖아요. 빈 땅이라고 해도 정부든 시든 소유권이 있을 테고요. 최초의 게릴라 가드닝의 운명은 어떻게 됐나요?

j 다행히 리즈의 게릴라 가든은 지역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시정부에서 연간 1달러의 임대료만 받고 가든의 소유권을 게릴라 가드너들에게 인정해준 거죠. 처음 게릴라 가드닝이 이뤄지고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 정원은 아름답게 잘 보존돼 있다고 하고요. 처음 씨앗을 뿌린 리즈의 이름을 따서 리즈 크리스티 가든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ann 한국에도 게릴라 가드닝이 있을까요?

j 포털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쳐보면 한국에서도 꽤나 많은 활동이 있는 걸로 보이거든요. 다만 한국에선 게릴라 가드닝의 원래 뜻인 불법보다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협력을 받아서 지역 주민들이 직접 공공용지의 정원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게릴라 가드닝의 저자인 리처드 레이놀즈는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게릴라 가드닝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꼭 그렇게 한정지어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내가 사는 지역에 내가 원하는 꽃을 심고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거든요.


ann 꽃을 심고 관리하는 행위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거니까요.

j 이 책뿐만 아니라 가드닝이나 정원에 대한 좋은 책들이 정말 많거든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영미권에서는 가드닝을 취미로 가진 사람이 정말 많아요. 세계적인 삽화가인 타샤 투더 같은 경우는 30만 평의 대지에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걸로도 유명하고요. 영국의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정원 가꾸기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이라고 했고요. 2차 세계대전을 이끈 윈스턴 처칠도 “전쟁과 꽃밭 가꾸는 일은 남자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도 했거든요. 이렇게 좋은 계절에 여러분도 꽃과 가드닝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M4 레이첼 야마가타 - I WANT YOU

https://youtu.be/CCprImgGv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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