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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n 04. 2018

뭉크를 절규하게 만든 죽음 이야기

미술관 관람을 도와줄 책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6월 3일 서른 번째 방송은 미술관 관람을 도와줄 두 권의 책을 주제로 했습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책으로 떠나는 미술관 관람이라는 주제로 책을 골라봤습니다.


ann 미술관 가기 좋은 계절이죠요즘에는 미술관에서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얼마 전에 ‘뮤지엄 위크’라는 행사가 있었거든요. 5월 18일이 세계 박물관이 날인데요. 이 날을 기념해서 열흘간 전국 120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 거죠. 저도 주말에 잠깐 시간 내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왔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미술관을 찾았더라고요. 이제는 나들이 문화의 하나로 미술관이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ann 그런데 뮤지엄 위크는 이미 끝났잖아요너무 늦게 소개해주신 거 아닌가요? 

뮤지엄 위크는 끝났지만 국립현대미술관만 해도 입장료가 4000원에 불과하거든요. 한번 들어가면 여러 전시를 한꺼번에 볼 수 있고요. 4000원치고는 가성비가 정말 좋은 편이니까 주말에 나들이 한 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ann 그럼 먼저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양정무 교수가 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라는 책을 가져왔습니다.

ann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줄이면 난처한 미술이야기가 되는 건가요?

그렇죠. 양정무 교수는 한예종 미술이론과 교수인데요. 미술관이나 미술작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양정무 교수의 책은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기 쉬운 미술관이나 미술을 쉽고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여러 매체에 미술 관련 칼럼도 쓰고 있고요. 미술관과 친해지고 싶다면 양정무 교수의 책으로 시작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골라봤습니다.


ann 책이 여러 권이 있더라고요.

모두 네 권이 나와 있는데요. 첫 번째 책은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을 다루고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그리스 로마 문명과 초기 기독교 문명을 다룹니다. 오늘은 네 번째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우리가 제일 익숙한 중세 문명 속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ann 중세라고 하면 역시 유럽의 미술에 대한 이야기겠네요.     

맞습니다. 중세 유럽은 종교적인 열정이 가득하던 시기였거든요. 유럽 여행 가면 볼 수 있는 대성당이 도시마다 지어지던 시절인 거죠. 그 대성당이나 교회를 가득 채운 미술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는 거죠. 로마네스크가 고딕 미술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용어는 익숙하게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막상 어떤 특징이 있는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용어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존 레전드의 스타트 어 파이어입니다.


M1 John Legend – start a fire

https://youtu.be/M6Vfj1TjMvU


ann 미술관 관람을 도와줄 책먼저 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만나보고 있어요중세 유럽의 미술어떤 특징이 있는 건가요?

이 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에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모습이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찾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게 있거든요. 바로 그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가 이 대성당이거든요. 책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요. 첫 번째 장인 ‘로마네스크 미술’은 바로 이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ann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에서도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죠순례길과 미술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거죠?

이름부터 살펴봐야 되는데요. 산티아고는 야고보 성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거든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죠. 그리고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야고보 성인의 별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의미인 거죠. 스페인 북서부 지역에 이 대성당이 있는데요. 800년 경에 이곳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견이 됩니다. 예술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의 유해가 발견됐으니 당연히 기독교의 유명한 성지가 된 거죠. 프랑스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보존된 이 대성당까지 오는 길이 자연스럽게 순례길이 된 거고요.


ann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곳곳에 정말 큰 성당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재밌는 부분인데요. 순례자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해외여행객이잖아요. 엄청난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이니까 가는 곳마다 숙소며 음식이며 돈을 많이 쓰겠죠. 그러니까 순례길 근처에 있는 중세 유럽의 도시들에서 경쟁이 벌어진 거예요. 순례자를 유치하려고 순례길 근처에 더 눈에 잘 띄게 대성당을 지어서 올리고 한 거죠. 그렇게 해서 유명해진 도시들이 프랑스의 르퓌, 무아삭, 툴루즈, 베즐레, 리모주 같은 도시들이거든요. 프랑스 남부의 도시들인데 지금도 이 도시들에는 저마다 크고 아름다운 대성당들이 여행객을 끌어모으고 있거든요. 


ann 지금 유럽의 도시를 대표하는 대성당의 풍경이 순례자들에서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이런 식으로 미술이라는 건 사회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죠. 노르만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는데요. 노르만 족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바로 ‘바이킹 족’을 이야기하거든요.


ann 바이킹 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약간 야만인 같이 묘사되지 않나요바이킹 족의 미술이라고 하면 어떤 게 있을까요?

원래 바이킹 족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민족인데 8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유럽 역사에 등장합니다.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바이킹 족이 유럽 곳곳을 침략하면서 유럽의 혼란에 일조했죠. 그러다 바이킹 족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하면서 기존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자신들의 전통적인 미술 양식이 섞인 노르만 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거죠. 노르만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프랑스의 몽생미셸 수도원입니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고도 하죠. 


ann 몽생미셸 수도원이 노르만 미술이었군요몽생미셸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 중 하나라고 하잖아요그렇게 보면 노르만 족의 미술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거네요.

그뿐 아니죠. 노르만 족은 도버 해협을 건너서 영국으로 향했거든요. 정복왕 윌리엄 1세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노르만 족이 영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사실 영국은 유럽의 중심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때부터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두 축 중 하나를 맡게 된 거죠. 지금 우리가 런던이나 영국을 여행하면서 볼 수 있는 대성당들이 거의가 노르만 미술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점령하고 처음 지은 성이 바로 ‘런던탑’이거든요. 지금도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데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가면 또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겠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길구봉구의 이 별입니다.


M2 길구봉구 - 이 별

https://youtu.be/kgspMLLZosE


ann 책으로 만나는 미술관 이야기이번에는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이번에는 진중권 교수의 <춤추는 죽음>이라는 책입니다. 


ann 진중권 교수는 정치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사실 본업은 미술 쪽인 거죠.

맞습니다. 본업이라는 게 따로 있겠냐 싶지만은, 진중권 교수는 정치평론뿐 아니라 미학 쪽에서도 여러 성과를 남겼죠. 미학 오디세이 같은 책은 거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고요. 여러 권의 미학 관련 책을 썼는데, 오늘 소개해드릴 <춤추는 죽음>도 그중 하나입니다.


ann 일단 제목이 눈길을 끄네요춤추는 죽음어떤 뜻인가요?

부제가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의 미학’입니다. 제목이 조금 섬뜩하죠. 서양 미술 작품을 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그린 작품들이 꽤나 많거든요. 죽음이라는 게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터부시되는 주제잖아요. 그런데 서양 미술에는 왜 죽음이라는 소제가 이렇게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걸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ann 예전에 다른 책을 소개해줄 때 죽음이 부정적으로만 보기보다 삶의 친구로 볼 때 우리의 삶이 더 의미 있어질 수 있다고 한 게 생각나네요.

그 말과 같은 맥락이죠. 죽음을 그저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여긴다고 해서 죽음이 우리를 피해가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죽음을 삶의 친구로 옆에 두면 그 안에서 우리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거죠. 서양 미술 속에서 죽음은 굉장히 아름다운 것으로 그려지는 게 많거든요. 서양 사람들은 미술을 통해서 죽음과 화해하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ann 미술을 통해서 죽음과 화해하려는 시도대표적인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존 에버릿 밀레라는 화가가 1852년에 그린 ‘오필리아’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가 죽어가는 순간을 그린 작품인데요. 오필리아는 연인이던 햄릿의 손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자 실성하는 캐릭터죠. 그러다 물에 빠져서 죽게 됐는데 사실상 자살이라는 설명이 많고요. 사실 생각해보면 물에 빠져서 죽은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그런데 이 그림 속의 오필리아는 천사라도 되는 것 마냥 아름답게 묘사가 되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입을 살짝 벌리고 있고, 아름다운 드레스는 물속에서 꽃잎처럼 퍼져있고요. 그 주변을 온갖 종류의 꽃들이 뒤덮고 있고요. 진중권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서 “사랑과 연결되면 죽음은 갑자기 아름다운 것이 되기 시작한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M3  eric clapton – tears in heaven

https://youtu.be/JxPj3GAYYZ0


ann 책으로 접하는 미술 이야기진중권 교수의 <춤추는 죽음이야기해보고 있어요먼저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다룬 작품 이야기했는데요. 또 어떤 작품이 등장하나요?

죽음과 미술을 결합했을 때 아마 가장 유명한 화가가 뭉크가 아닐까 싶어요.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는 미술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다들 알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뭉크의 절규가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 같더라고요.


ann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 건가요?

뭉크가 어릴 때 두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고 하는데요. 먼저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거든요. 뭉크가 절규를 그리기 5년 전에 그린 ‘죽은 어머니와 어린이’라는 그림이 있는데요. 그 그림을 보면 침대 위에 죽은 어머니가 누워 있고, 한 어린아이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표정이 바로 절규에 나오는 그 표정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거든요. 결국 절규에 표현된 공포감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거라고 볼 수 있는 거죠.


ann 두 사람의 죽음이라고 했는데또 누구의 죽음이 있었나요?

뭉크의 누이인 소피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죽었거든요. 뭉크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고요. 예술가로서 뭉크가 처음 그린 것도 바로 누이인 소피의 병상이라고 하고요. 어머니에 이어서 누이까지 어린 나이에 떠나보내면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평생 뭉크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셈이죠.


ann 뭉크의 절규에 이런 뒷이야기들이 있었군요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을까요?

이 책은 서양 미술에 나타난 죽음을 다룬 거잖아요. 당연히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특이하게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딱 한 부분 나옵니다.     


ann 서양 미술에그것도 죽음의 이미지를 그린 작품에 한국이 등장한다고요어떤 작품이죠?     

현대의 묵시록이라는 장에서 전쟁 속에 죽음을 그린 작품들을 소개하는데요. 그중에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하나 나옵니다. 제목은 <한국에서 일어난 학살>인데요. 한국전쟁 당시에 양민학살의 현장을 그린 거라고 하는데 정확히 누가 어디에서 학살을 저지른 걸 그렸는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합니다. 다만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린 건 스페인 공산당의 위탁을 받아서라고 하거든요. 이런 배경에서 추측할 수는 있긴 하죠.

어쨌거나 이 그림은 강철을 두른 학살자들과 공포에 떨고 있는 희생자를 대립해서 보여주거든요. 이런 구도의 그림이 서양 미술에 적지 않아요.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언의 죽음’이나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거든요. 그만큼 전쟁의 참상, 공포가 인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M4 심규선 - 오필리아

https://youtu.be/Ze6x3JUbL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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