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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l 08. 2018

백석의 러브레터,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퀴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6월 24일 서른세 번째 방송은 시를 더 깊이 있게 읽을 두 가지 방법을 소개했습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요즘에 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서점에 가면 시 코너가 굉장히 작고 외진 곳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문학 코너에서도 굉장히 잘 보이는 자리에 시집들이 있기도 하고요. 


ann 옛날 시집들이 많이 나오는 거 같아요복간본이라고 하죠?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시집이 1940년대에 나왔던 초판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복간본으로 나와서 인기를 끌기도 했죠. 다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나오는 시들인데도, 복간본만의 예스러운 느낌 같은 걸 요즘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ann 오늘은 시집을 소개해주실 건가 보네요.

오늘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시집을 직접 소개해드리는 것보다 시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요즘에는 시를 좀 더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늘었잖아요. 그런데도 시라고 하면 어려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소설처럼 스토리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표현 하나 하나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떻게 읽는 게 좋을지 헷갈리는 게 사실이죠. 그렇다고 매번 국문과 친구를 찾아서 물어볼 수도 없고요. 이런 상황일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ann 먼저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입니다. 시를 재미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시를 쓴 시인의 삶을 공부하는 건데요.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를 알고 나서 시를 보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 백석의 삶을 다룬 백석 평전을 첫 번째 책으로 골라봤습니다.


ann 백석은 요즘에도 굉장히 인기가 많은 시인이죠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사슴 같은 시들이 요즘도 한국인이 정말 사랑하는 시 중에 하나고요.

그렇죠. 아까 이야기했던 인기를 끄는 복간본 시집 중에도 백석의 ‘사슴’이라는 시집이 들어가 있고요. 시 하나 하나가 한국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죠. 그런데 또 막상 백석의 개인적인 삶이나 인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더라고요.      

ann 그건 확실히 그렇죠교과서에서도 백석의 시를 배우지백석의 인생사를 배우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백석의 인생사가 정말 파란만장했거든요.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만주로 건너가요.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는 지금의 북한 땅에 머무르다가 아예 그쪽에 정착하게 되죠. 예전에 교과서에서 백석의 삶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북한에 정착해서 살다가 죽었으니까, 뭔가 학생들한테 가르치기 애매했던 거겠죠? 그런데 북한에서도 백석은 굉장히 많은 탄압을 받았거든요. 이런 인생사가 정말 파란만장했던 시인입니다.


ann 그렇군요그런데 안도현 시인이 백석의 평전을 썼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본인도 굉장히 유명한 시인인데다른 시인의 평전을 직접 쓴 거잖아요.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정말 좋아한다고 해요. 안도현 시인의 시집 중에 ‘모닥불’이나 ‘외롭고 높고 쓸쓸한’ 같은 시집은 아예 백석의 시에서 제목을 빌려온 거고요. 모닥불에 있는 ‘백석 선생의 마을에 가다’라는 시는 아예 백석 시인을 직접 만나러 가는 상황을 가정하고 쓴 시이기도 하거든요. 이 평전을 읽어보면 백석이라는 시인의 삶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이럴 수 있었던 비결은 안도현 시인이 그만큼 백석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역시나 뭐든 좋은 결과물이 나오려면 덕질이 조금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히 이야기해볼게요.

시와의 완벽한 사랑입니다.


M1 시와 – 완벽한 사랑

https://youtu.be/NBiYbIReETk


ann 시를 더 재미있게 읽는 첫 번째 방법시인의 삶을 알아보는 건데요안도현 시인이 쓴 <백석 평전이야기해보고 있어요우리가 잘 모르는 백석의 삶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우리가 잘 모르는 게 일단 백석의 얼굴이거든요. 평전의 뒷부분에 보면 백석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요. 지금 봐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 생긴 얼굴이에요. 평전을 봐도 백석이 경성에서 생활할 때 조선일보 기자를 했거든요. 늘 광화문 사거리를 다닐 때 깔끔한 양복을 차려 입고 다니는 모던보이였다는 설명이 나와요. 설명만 들었을 때 잘 모르겠는데, 사진까지 놓고 보면 정말 모던보이라는 말이 딱이다 싶은 거죠.


ann 백석 시인하면 떠오르는 게 로맨틱한 느낌인데외모의 영향도 있었던 거군요.

그렇죠. 평전을 보면 백석 시인이 당대에도 굉장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여기다가 사랑에 빠지면 앞뒤 가리지 않는 진짜 로맨틱한 면모도 있었고요. 백석이 조선일보에서 기자를 할 때 박경련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돼요. 우연히 모임에서 만나고 사랑에 빠진 거죠. 이 박경련이라는 분이 통영이 고향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서울에서 통영까지 가는 길이 정말 멀었거든요. 거기다가 백석은 고향이 평안도 정주였으니까 통영은 정말 먼 곳인 거죠. 그런데 백석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통영까지 갑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가요. 백석의 시 중에 ‘통영’이나 ‘창원도’ 같은 시들이 이때의 경험을 가지고 만들어진 거죠.


ann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고백하려고 했던 거네요그 사랑이 이뤄지나요?

아쉽게도 여자분이 백석의 마음을 거절해요. 그런데 이게 또 드라마 같은 게, 백석의 절친한 친구가 이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백석으로서는 정말 큰 충격이었겠죠. 평전에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백석의 마음이 많이 안 좋았을 거라는 설명이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백석이 사랑에 실패만 한 건 아니고요. 백석 평생의 연인이라는 여자가 이후에 등장합니다. ‘자야’ 여사라는 분인데요. 원래 이분은 기생이었어요. 그런데 백석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 거죠. ‘자야’라는 이름도 백석 시인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고요. 백석이 함흥에 살 때 만나서 계속 같이 지냈는데,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결혼에는 실패해요. 백석의 부모가 반대를 하니까요. 결국 그 후에 백석이 만주로 떠나면서 헤어지게 되는데, 그전에 백석이 이 자야 여사에게 준 시가 아주 유명한 시입니다.


ann 어떤 시죠?

지금도 백석을 대표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자야 여사에게 선물로 준 거예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는 명문이 자야 여사에 대한 사랑에서 탄생한 거죠.

백석은 만주로 떠나고 북한에 정착했지만, 자야 여사는 계속 한국에 남게 되는데요. 해방 이후에 서울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법정 스님에게 자야 여사가 대원각을 통째로 시주하는데요. 이 대원각이 절이 되면서 지금의 성북동 길상사가 됩니다. 백석의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 길상사를 자주 찾거든요. 길상사에 이런 스토리가 있기 때문인 거죠.


ann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군요그런데 아까 백석 시인이 북한에서 정착을 했다고 했잖아요북한에 정착한 이후의 이야기는 정말 아는 게 없는 것 같아요북한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나요.

해방 직후에는 백석도 작가로서 살았는데요. 처음 백석의 이름이 북한에서 언급된 건 1947년이라고 합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제4차 중앙위원회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거기에 백석이 외국문학 분과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거죠. 백석이 만주에 있는 동안 러시아어를 공부했거든요. 그러니까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활동을 하는 작가 일을 북한에서 하게 된 거죠.


ann 시인의 삶이 아니라 번역가의 삶을 택한 거네요백석 정도면 시인을 택해도 됐을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요?

백석의 시는 기본적으로 서정시거든요. 그런데 북한의 분위기는 서정시가 통하지 않는 거죠. 체제나 이념, 사상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시가 아니면 반동으로 몰리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이후에 백석이 아이들을 위한 동시도 쓰는데요. 이 동시도 사상이나 체제에 대한 충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게 돼요. 처음에는 평양에 있던 백석이 결국에는 백두산 자락인 삼수로 쫓겨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고요. 이후 아직도 북한에서는 백석 시인이 복권되지 않아서 북한 문인들도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ann 오히려 한국에서는 백석 열풍이 부는데백석이 택한 북한에서는 이름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네요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전범선과 양반들의 혼자가 되는 시간입니다.


M2 전범선과 양반들 – 혼자가 되는 시간

https://youtu.be/U7xE5MllLpU


ann 시를 재미있게 읽는 두 가지 방법 이야기하고 있어요먼저 시인의 삶을 돌아보는 책을 봤는데요두 번째 방법은 뭘까요?

시인의 삶을 알면 시를 보는 눈이 더 넓어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는 시가 쓰인 시대 상황을 함께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시대 상황을 감안하고 시를 보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ann 어떤 책인가요?

서경식 교수의 <시의 힘>이라는 책입니다.


ann 이름부터 강렬하네요서경식 교수는 어떤 분인가요?

이 분은 재일교포 신데요. 지금은 도쿄케이자이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기행’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 같은 책이 국내에 번역돼서 꽤 호평을 받기도 했고요. 일본에서 살고 있고 일본어로 책을 쓰지만, 국내에서도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하고 팬이 많은 분입니다.


ann 시의 힘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인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세요.

표지에 부제처럼 붙은 문장이 있는데요.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라는 문장입니다. 책 전체는 보면 사실 꼭 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에요. 그보다는 문학이나 글쓰기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진 일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보면 됩니다.

ann 정말의 시대라는 표현은 왜 붙은 걸까요?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이따가 자세히 설명해드릴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시인들과 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명합니다. 이건 뒤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드릴 거고요. 다른 하나는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야기입니다. 서경식 교수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분이니까 이 사고가 본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을 텐데요. 이 사고에 대한 시들을 소개해주면서 일본인들이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사고를 과거 끔찍했던 학살 사건들과 연결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거죠.     


ann 과거의 사건이라면 어떤 걸까요?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 같은 사건이죠. 홀로코스트는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잖아요. 한 국가가 한 민족을 말살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해서 일어난 사건이었죠. 서경식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과 뒤따른 원전 사고도 단순히 자연재해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의 잘못을 끌어내야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모두 한국과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교훈을 얻으려는 태도는 우리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M3  언니네이발관 – 누구나 아는 비밀

https://youtu.be/eHS8i5k_d_0


ann 시를 재미있게 읽는 두 번째 방법시대상을 함께 봐야 한다좀 예를 들어주세요.

<시의 힘>에 보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나옵니다. 별 헤는 밤은 거의 국민 시 같은 느낌이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시를 보면 이런 시구가 나와요.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여기에 부끄러운 이름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ann 학창시절에는 배웠을 것도 같은 느낌인데..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어떤 뜻인가요?

일제 시대에 쓴 시잖아요.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가거든요. 그런데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일본에 갈 수가 없었어요. 일본 유학을 위해서 윤동주도 ‘히라누마 동주’로 창씨개명을 했거든요.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렸다,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이다, 라는 시구는 바로 이 창씨개명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거죠. 이런 시대상을 모르고 이 시를 읽으면 그냥 아름다운 시, 고향에 남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 정도로 읽히는데, 창씨개명이라는 시대상을 알고 읽으면 전혀 느낌이 달라지는 거죠.


ann 또 다른 시는 없나요?

한용운의 ‘당신을 보았습니다’도 책에 나오는데요. 이 시를 보면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은 겸하며 민적이 없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여기서 민적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전인 1909년에 ‘조선민적령’이라는 걸 발표해요. 일종의 호적 같은 거죠. 조선 사람들에게 민적을 만들도록 해서 식민 지배하에 두려고 한 거죠. 한용운은 대표적인 민족 시인인데, 일본이 강요한 민적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저항하는 시를 썼던 거죠.     


ann 시의 힘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런 걸 염두에 둔 걸까요부당한 사회나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시에 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서경식 교수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시에는 힘이 있을까? 이 질문은 시인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져져 있다. 시에 힘을 부여할지 말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M4 켄드릭 라마 – these walls

https://youtu.be/BTvV9JyNa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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