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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ul 09. 2018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을 즐길까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7월 1일 서른네 번째 방송은 심리학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오늘은 심리학에 대한 책을 두 권 가져왔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심리학을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라고 나오거든요. 말이 어렵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우리 인간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연구하는 과학인 거죠. 가끔 보면 우리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이유를 밝혀주는 과학이 바로 심리학입니다. 


ann 서점에 가보면 무슨무슨 심리학이라고 이름 붙은 책들이 정말 많지 않나요?

그만큼 심리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거겠죠. 그런데 책들을 좀 읽어보면 그렇게 재밌는 책은 또 많지 않더라고요. 심리학이라는 게 과학의 하나인데, 책까지 재미가 없으면 사실 읽는 사람 입장에선 쉽지가 않거든요. 


ann 그럼 오늘은 읽기 쉬운 재미있는 심리학 책을 소개해주시나요?

j  맞습니다. 제가 읽고 재밌었던 두 권의 책을 가져왔는데요.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쌤통의 심리학>이라는 책입니다. 


ann 제목부터 재밌네요쌤통의 심리학어떤 책인가요?

j  미국 켄터키대의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스 H. 스미스가 쓴 책인데요. 이 교수의 주 연구 분야가 ‘샤덴프로이데’라는 겁니다. 뭔지 어렵죠? 이 말은 독일어인데요. 샤덴은 우리말로 피해라는 뜻이고, 프로이데는 환희라는 뜻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의 감정을 샤덴프로이데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면 오히려 좋아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쌤통’이고요. 이 책은 바로 이 쌤통이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왜 나오는 건지 설명한 책입니다.

ann 쌤통이라는 말도 많이 쓰고고소하다는 말도 쓰죠그런데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한테 이득을 주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j  바로 그 지점인데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건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쌤통의 심리는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거죠.     


ann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네요다른 사람의 불행이 왜 우리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준다는 거죠?     

j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다른 인간과 경쟁하도록 설계돼 있잖아요. 생존을 위한 경쟁의 심리가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있는 거죠. 우리 사회가 아무리 잘 조직이 돼 있어도 이런 기본적인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쳐서 그 사람의 지위가 낮아지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그걸 반가워하게끔 설계돼 있다는 거죠. 그 사람의 지위가 낮아진다고 내 지위가 오르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내 밑에 가게 됐다는 생각에 그걸 반사 이익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반사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쌤통의 심리가 작동하는 거죠.


ann 노래 한 곡 듣고 사례들을 들어보면서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j  브라운 심리학과의 투정입니다.     


M1 브라운 심리학과 투정

https://youtu.be/9qrQbLWPCpE


ann 심리학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먼저 <쌤통의 심리학만나보고 있습니다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까요언제 쌤통의 심리학이 발동하는 걸까요?     

가장 대표적인 게 스포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반가워하는 심리가 사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알잖아요. 내 친구가 다치면 그게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죠. 그런데 개인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집단 대 집단의 관계로 가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대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지금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잖아요. 일본 축구대표팀의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일본 축구대표팀 선수가 다치든 말든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득이 없잖아요. 그런데 인터넷 뉴스 댓글창을 보면 ‘잘됐다’ ‘고소하다’ ‘정의구현이다’ 이런 말들이 많거든요. 집단 대 집단의 관계에서는 이렇게 쌤통의 심리가 더 잘 구현되는 거죠.


ann 예로 들어준 일본은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요한국이랑은 역사적으로 악연으로 얽힌 게 많으니까 자업자득이다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그런 걸 이제 ‘자업자득의 불행’이라고 하거든요. 집단 대 집단의 관계에서 쌤통의 심리가 더 적극적으로 표현된다고 이야기했잖아요. 또 쌤통의 심리가 발현되는 경우가 바로 이 자업자득의 불행입니다. 그런 짓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고 말하는 감정이 쌤통의 심리가 생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거죠. 저자가 예를 드면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냐면 ‘성범죄자를 잡아라’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아동 성매매를 시도하는 사람을 현장에서 검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리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아동 성매매를 하러 오는 사람을 카메라로 찍고 경찰과 촬영 팀이 현장을 덮치는 거죠. 경찰과 촬영 팀이 현장을 덮칠 때 아동 성범죄자들이 주춤거리고 변명을 하고 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송되거든요. 이걸 보면서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면서 그 사람들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거죠.


ann 그렇죠자업자득의 불행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싶네요정말 말 그대로 정의 구현이 이뤄진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가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남의 불행을 유도하기까지 한다는 겁니다. 책을 보고 제가 밑줄을 쭉 그은 부분이 있는데요.

‘질투 대상의 불행을 지켜보는 것이 통쾌하긴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상은 웬만해서는 불행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더 좋은 운을 타고났다. 고통받는 쪽은 우리다. 질투가 수면 아래로 숨어버리면, 억울함과 분노가 명백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 질투를 앞지르면서 복수와 그 사악한 전율을 즐기는 행태를 나무랄 게 없이 지당한 행동으로 정당화한다.’


ann 쌤통의 심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요?

책의 저자는 역사적으로 봐서 쌤통의 심리가 심각한 범죄로 이어진 사례가 바로 ‘홀로코스트’라고 지적합니다. 유대인이 독일의 경제, 사회의 주된 계층으로 부상하니까 많은 독일인이 유대인을 질투하고 부러워한 거죠. 히틀러와 나치는 그런 심리를 악용해서 유대인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했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유대인을 문제가 있는 집단처럼 낙인 지었고요. 지금은 누가 봐도 홀로코스트는 끔찍한 학살인데, 당시에 독일 사람들은 그걸 당연한 일, 별 문제없는 일로 여겼거든요. 앞에서 이야기한 집단 대 집단의 관계, 그리고 유대인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의 불행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 이런 것들이 뒤얽혀서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거죠.


ann 그냥 재밌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우리의 심리가 끔찍한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섬뜩하기도 하네요.

그렇죠. 이 쌤통의 심리는 우리의 본성이라서 없애거나 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대신에 잘못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주는데요. 함부로 단정 지어서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해주자는 이야기를 하고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 인상부터 쓸 게 아니라, 혹시 소매치기를 당해서 저러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지겠죠.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ann 래 한 곡 듣고 다음 책 만나볼게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람의 마음입니다.


M2 장기하와 얼굴들 – 사람의 마음

https://youtu.be/z_pqa36VHz8


ann 심리학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 이야기하고 있어요두 번째로 소개해줄 책은 어떤 건가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왜 맛있을까>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ann 이번 책도 제목부터 재밌네요누가 쓴 책이죠?

옥스퍼드대의 심리학자인 찰스 스펜스 교수가 쓴 책인데요. 이 분의 프로필을 보면 미슐랭 셰프들의 정신적인 멘토라고 합니다.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유명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 헤스턴 블루멘탈 같은 이들이 스펜스 교수의 의견을 받아서 신 메뉴 개발에 접목한다고 하고요. 네슬레, 하겐다즈, 스타벅스 같은 세계적인 유통업체들도 스펜스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신 메뉴를 개발한다고 합니다.

이 책의 원제가 가스트로피직스거든요. 미식을 뜻하는 ‘가스트로노미’에 물리학을 뜻하는 ‘피식스’를 합쳐서 만든 말인 거죠. 물리학이라고 하지만 심리학도 깊이 연관이 돼 있고요.


ann 유명한 셰프들이 물리학이나 심리학을 어떻게 활용한다는 걸까요?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경쾌한 음악은 단맛을 더 잘 느끼게 해주고, 신나는 음악은 짠맛을 잘 느끼게 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요리를 낼 때 강조해야 할 맛이 있으면 식당에서 트는 음악도 거기에 맞춰서 바꾸면 맛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죠. 또 재밌는 게 있는데요. 스펜스 교수가 이그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ann 이그노벨상이요그냥 노벨상이 아니라 이그노벨상은 뭔가요?

노벨상은 정말 인류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잖아요. 이그노벨상은 노벨상을 약간 풍자해서 만든 상인데요. 재밌고 기발한 연구를 골라서 주는 상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이상한 연구를 고르는 게 아니라 황당하고 우습긴 한데,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연구에 주는 상인 거죠. 

ann 스펜스 교수는 어떤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받았나요?     

2007년에 이그노벨상을 받았는데요. 이른바 ‘음향 양념’이라는 걸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어요. 이게 어떤 거냐면 간이 적거나 맛이 부족한 음식에 소리를 더하면 맛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요. 감자칩을 먹을 때 ‘바삭’라는 소리가 나죠. 이 소리를 일부러 크게 들려줬더니 소리가 아예 없을 때보다 15% 정도 사람들이 감자칩을 실제로 더 바삭하고 신선하다고 느꼈다는 거죠.      


ann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은데그걸 또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실제 요리에 접목하기까지 한다고 하니까 재밌네요.     

그렇죠.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과학적인 개념을 요리에 접목해서 우리가 음식을 맛있거나 맛없다고 느끼는 건 왜인지를 설명해줍니다. 우리가 그냥 직관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적인 원리를 알게 되는 것들이 많거든요. 한 번 읽어보면 정말 재밌는 책입니다.


M3  장미여관 – 마성의 치킨

https://youtu.be/tDCeuGWkMY4


ann 심리학을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두 번째로 <왜 맛있을까이야기하고 있어요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나요?

이번에는 음식을 맛없게 느끼는 이유를 한 가지 이야기해드릴게요. 맛없는 음식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기내식’이잖아요. 항공사들이 저마다 유명한 셰프를 영입해서 좋은 재료로 만든다고 하는데 사실 기내식을 먹고 ‘맛있다’고 느낀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스펜스 교수는 이것도 과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ann 기내식이 맛없는 이유왜인가요?

기내식이 맛없는 건 높은 고도에서 음식을 먹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10km 정도 높은 상공에서는 습도가 낮고 기압은 높거든요. 이렇게 되면 음식의 맛과 풍미가 30% 정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내식이 맛이 없는 이유인 거죠.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도 10km 높이로 올라가기만 하면 맛이 30%는 없어진다는 거니까요. 이걸 보완하려고 기내식에 간을 일부러 세게 하기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바꿔서 생각해보면 소금이나 설탕을 더 하면 건강에는 또 나빠지겠죠. 이러나저러나 기내식은 좋을 수가 없다는 게 스펜스 교수의 결론이고요.


ann 기내식이 맛없는 이유를 확실히 알았네요또 재밌는 이야기는 없나요?

맛만큼이나 중요한 게 음식의 이름, 재료의 이름이라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었어요. 우리가 이자카야 같은데 가면 많이 먹는 요리 중에 메로구이가 있잖아요. 이 메로의 이름이 정식으로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에요. 메로가 굉장히 맛있는 생선이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많이 쓰거든요. 그런데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라는 이름으로 메뉴에 올라와 있으니까 아무리 맛있어도 사람들이 먹지를 않는 거죠. 그래서 대신 쓰게 된 이름이 ‘칠레산 농어’ ‘메로’ 같은 이름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판매량이 열배 이상 늘었다고 하고요. 스펜스 교수는 이걸 가리켜서 사람들의 뇌는 음식이 자신에게 해로울지 아닐지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라는 이름은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려서 꺼리게 된다고 설명을 합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할 때 이런 부분도 신경 써야겠죠.     


ann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과학과 심리학도 공부를 해야되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안 될까요?     

물론이죠. 우리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됩니다. 대신에 같은 돈을 내고 먹는 음식도 조금만 더 알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심리학이나 과학을 공부할 순 없으니까요. 전문가들이 정리해놓은 내용을 이렇게 재밌게 써놓은 책으로 접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M4 태연 - circus

https://youtu.be/IjAl0SM3F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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