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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Aug 19. 2018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다

tbs 교통방송 심야라디오 프로그램 '황진하의 달콤한 밤'의 책 소개 코너 '소설 마시는 시간'입니다.

매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넘어가는 자정에 95.1MHz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8월 19일 마흔한 번째 방송은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조명한 <폭염 사회>라는 책을 소개했다.


↓소설 마시는 시간 멘트↓


ann 책 속에 담긴 인생의 지혜를 음미해 보는 <소설 마시는 시간> 오늘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 나눠볼까요?

올여름 유난히 더웠잖아요. 정말 밖에 나서기만 해도 푹푹 찌는 더위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단순한 여름 더위 수준이 아니라 정말 참기 힘든 수준의 폭염이었으니까요. 이제 한풀 꺾인 느낌이긴 한데 여전히 만만치가 않잖아요. 오늘은 올여름의 무더위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을 한 권 준비했습니다.


ann 맞아요올여름은 진짜 더웠죠서울 온도가 40도 가까이 오르고 이런 더위는 진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대단한 더위였죠.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올여름을 나면서 확실히 느낀 게 이 정도로 더위가 계속되면 그냥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 사회 전체가 달라질 수 있겠구나. 더위라는 게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정말 적지 않겠구나. 이런 걸 느끼게 된 거죠. 오늘 소개해드릴 책이 바로 이런 더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ann 더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책이라재밌을 것 같은데요어떤 책인가요?

제목부터가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바로 <폭염 사회>라는 책입니다.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라는 학자가 쓴 책인데요. 바로 저번주에 번역본이 한국에 출간됐습니다. 부제가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인데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는 도저히 안 살 수가 없더라고요. 읽어보니 제목 그대로 흥미로운 내용이어서 오늘 가져왔습니다.


ann 어떤 내용의 책인가요     

기본적으로는 사회학 서적이고요. 1995년에 미국 시카고시에서 일주일 동안 엄청난 폭염이 계속된 적이 있었거든요. 일주일 동안 기온이 41도 이상을 계속 유지한 거예요. 체감온도는 50도를 넘었고요. 그런 더위가 일주일이나 지속되다보니까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거죠. 일주일 동안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만 700명이 발생할 정도였다고 하니까 엄청난 더위였던 거죠.

ann 올여름 우리도 40도까지 올라간 적이 있잖아요그런데 그런 더위가 일주일 내내 지속됐다고 생각하면 정말 엄청났겠네요그런데 아무리 덥다고 해도 700명이나 죽었다는 건 좀 믿기지 않는 부분인데요.

그렇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인데요. 그 부분은 뒤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기로 하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폭염이 다양한 기상재해 가운데 우리 사회에 가장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끼치는 기상재해라고 하더라고요.      


ann 우리는 태풍이나 허리케인지진 같은 걸 생각하잖아요.     

그런 기상재해는 눈에 쉽게 볼 수 있잖아요. 피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요. 그런데 폭염은 눈에 띄는 피해가 없는 거예요. 날이 덥다고 가로수가 뽑히고 차가 날아다니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실 폭염으로 인한 연평균 사망자수가 지진이나 토네이도, 홍수 같은 재해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이걸 가리켜서 책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요.

‘폭염은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ann 소리와 형체 없이 다가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올여름 더위를 생각하면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이네요그럼 노래 한 곡 듣고 자세하게 이야기 나눠볼게요.

유희열의 여름날입니다.


M1 유희열 - 여름날

https://youtu.be/gUG5-w6Ce_4


ann 폭염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폭염 사회>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있어요. 1995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 사태를 분석했다고 했잖아요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1995년 7월 12일 수요일에 폭염이 시작됐어요. 시카고시의 기온이 40도 가깝게 오르고 목요일에는 41도까지 오릅니다. 스쿨버스에 탄 아이들이 열사병에 걸리고요.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면서 정전 사태가 벌어져요. 금요일에는 시카고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회사의 변전소에서 고장이 나면서 5만여 가구에 전기 공급이 끊기고요. 사람들이 더위를 이겨보려고 길거리에 있는 소화전을 열고 물을 뿌리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수압이 낮아져서 수도 공급도 끊겨요. 사람들이 쓰러지니까 구급차를 부르는데 평소보다 구급차 요청이 급증하니까 아무리 전화를 해도 구급차는 오지를 않고요. 토요일에 시카고시에서 365명이 사망했는데 평소보다 다섯 배나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거예요. 대부분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였던 거죠. 시체를 검시소에 보내는데 건물 안에는 더 이상 둘 곳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육류포장회사가 냉동트럭을 보내줘서 거기에다 시체를 임시로 보관할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긴 겁니다.


ann 시카고면 미국에서도 큰 도시 중 하나잖아요그런 대도시가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타격을 입은 거네요.

그렇죠. 책을 읽어보면 시카고 시정부나 소방당국, 그리고 언론까지도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와요. 시장이나 소방당국의 책임자는 폭염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휴가를 떠나 있고요. 폭염이 큰 재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거죠. 결국 7월 14일부터 7월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시카고에서 평소보다 739명이 더 사망한 걸로 집계됐는데, 이게 대부분 폭염 피해자였던 겁니다. 시정부나 소방당국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렇게 피해가 커지지는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던 거죠.


ann 그러게요그래도 생각해보면 아무리 더워도 냉방시설이 있는 곳에서 쉬면 될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게 불가능했던 게 피해를 키운 겁니다. 책을 보면 당시에 피해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사는 노인으로 나와요. 시카고시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 지역 10곳 중에 8곳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고, 폭력범죄 발생률이 높은 곳으로 확인됐거든요. 저자가 지역주민들을 인터뷰한 걸 보면, 폭염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들은 노인이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 많았던 거예요. 더위를 피해서 집을 나와서 공공시설 같은 곳에 가야 되는데, 길거리는 노인들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덥더라도 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집 안의 온도와 공기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서 도움을 요청할 새도 없이 쓰러져 버리는 거고요.


ann 단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죽은 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도 숨어 있었던 거네요.     

그렇죠. 이 책의 저자는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는 걸 단순히 기상재해로 보지 말고 사회적인 재해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거든요. 노인들이 더위를 피해서 공공시설에 갈 수 있도록 치안을 제대로 유지했다면 이런 피해가 줄어들었겠죠. 또 폭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꾸준히 연락을 취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도 이런 피해는 줄었을 테고요.

저자는 주위의 이웃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공동체 문화를 폭염에서 우리를 지켜줄 중요한 도구로 보는데요. 시카고 폭염 사태 때도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던 지역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현저하게 적게 발생한 걸로 집계됐거든요. 


ann 공동체 문화가 폭염의 피해를 줄여준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설명을 들으니까 확실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계속 있잖아요. 고독사라고 하죠. 얼마 전에 박원순 시장이 생활 중이던 옥탑방 주변에서 홀로 살던 40대 남성이 고독사했거든요. 그분이 6급 장애인이었고 계속 혼자서만 지냈던 거죠. 더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도 1인 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잖아요. 그럴수록 폭염 같은 기상재해가 닥쳤을 때 생기는 피해도 커지겠죠. 이런 피해를 막으려면 공동체 문화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공동체가 거의 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어제오늘 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선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ann 래 한 곡 듣고 조금 더 이야기해볼게요.

레지나 스펙터의 US입니다.


M2 regina spektor - us

https://youtu.be/fczPlmz-Vug


ann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쓴 <폭염 사회>라는 책 이야기해보고 있는데요. 1995년 시카고에 닥친 폭염 사태를 다루고 있다고 했잖아요그런데 21세기 들어서 더위는 더 심해지고 있지 않나요? 1995년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1999년에도 시카고에 또 한 번 폭염 사태가 닥쳤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한 차례 난리를 겪은 시카고 시정부와 소방당국이 발 빠르게 대처를 합니다. 폭염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정부 차원에서 구축하고,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폭염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도 제공을 합니다. 1995년 폭염 사태 때는 처음에 폭염이 재해라는 걸 시카고 시정부가 부인했는데 1999년에는 굉장한 위기 상황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알렸고요. 시 곳곳의 학교를 개방해서 노인들이 냉방시설을 활용할 수 있게 돕기도 했고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99년 폭염 사태 때도 사망자는 110명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1995년에 비해서는 7분의 1 수준으로 낮춘 거죠.


ann 한 번 위기를 겪고 나서 확실한 대비책을 세운 덕분이네요.

그렇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그러면 폭염 대책이나 매뉴얼이 있나 생각해봤거든요. 그런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더라고요. 폭염이 재해 수준으로 발생하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 하나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는 거죠.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더니 우리 정부 차원에서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한 게 올해더라고요. 그전까지는 폭염에 대해서 우리 정부 차원에서 별 고민을 한 적이 없다는 거죠. 행정안전부에서도 9월까지 폭염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는데, 그때는 이미 올여름이 지난 뒤잖아요. 이런 걸 보면 왜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이 움직일까 하는 아쉬움이 남죠. 


ann 앞으로 계속 갈수록 더 더워질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던 건데 말이죠.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런 폭염이 앞으로는 더 길고 끈질기게 나타날거라고 하거든요.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낸 통계를 보면 2050년에는 폭염 일수가 현재의 3배에서 5배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하고요. 기상청도 2050년까지 한반도 평균 기온이 3.2도 상승하고 폭염 일수도 3배 정도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우리도 폭염에 대비해서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겠죠.     


ann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문장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책의 주제랑도 닿아 있는 문장인데요. 

‘폭염이 대중적인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지 않거나 다른 기상 재난처럼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폭염의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사람 등 대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올여름 우리도 엄청난 폭염에 시달렸잖아요. 올해를 계기로 우리도 폭염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폭염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책임으로 폭염 피해를 떠넘기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래봅니다.          


M3  임슬옹 & 에피톤프로젝트 – 여름, 밤

https://youtu.be/c-FPiMdRREs


ann 올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폭염 사회>라는 책 이야기해봤어요그런데 가뜩이나 더웠는데 책으로도 폭염 이야기를 계속했더니 더 힘든 느낌이네요좀 시원하게 해줄 만한 책으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여름의 막바지를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책을 몇 권 같이 소개해드릴게요. 여름휴가 다녀온 분들도 많을 텐데요. 책으로나마 여름휴가 간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이죠.     


ann 어떤 책들인가요?

먼저 안드레 애치먼이 쓴 <그해 여름 손님>이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얼마 전에 개봉해서 인기를 끌었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가 있거든요.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입니다. 열일곱 소년과 미국인 교수 사이의 짧은 사랑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인데요. 다른 것보다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 해안가의 작은 시골마을 풍경이 묘사만 봐도 시원해지는 게 있어요. 소설을 보고 영화도 찾아보시면 정말 여름휴가를 떠난 기분이 절로 들 겁니다.

ann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포스터도 굉장히 예뻤던 기억이 있어요또 다른 책은 없나요?

일본 소설가인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도 읽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여름 더위를 피해서 건축 설계소의 직원들이 여름별장으로 떠나서 공모전을 준비하는 이야기이거든요.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잔잔한 일상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나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 같은 것들이 정말 인상적인 소설이에요. 늦여름 밤에 조용하게 읽기 좋은 책이죠.          


M4 블루파프리카 긴긴밤

https://youtu.be/urtU7ZJEc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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